美가 기침해도 아시아는 독감 안 걸려

2010. 11. 21. 10:49C.E.O 경영 자료

[Weekly BIZ] [칼럼 inside] 美가 기침해도 아시아는 독감 안 걸려

신관호 고려대 교수

美 경제 아직도 불안하지만 中은 10% 성장하며 건재
아시아국가의 對中 수출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 웃돌아

 미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 최근 6000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2차 양적완화 정책이 발표됐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현재의 침체는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 등 케인스 식의 총수요정책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견해도 상당하다. 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시카고대학의 라잔 교수는 이러한 견해를 대표하는 학자이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까지 주택 구입에 열중하는 과정에서 미국 경제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누적됐다. 일례로 주택 가격 거품이 심화되면서 주택 건설업, 주택 관련 금융 산업 등이 비정상적으로 발전했다. 주택 가격이 오를 때는 이런 부분에서 큰 수익이 창출되므로 이런 산업의 비중이 계속 커질 수 있었다. 또한 소득이 충분치 않은 가구들도 주택 가격이 상승하자 부자가 된 듯한 느낌에 부채를 크게 늘리며 소비에 열중하였다.

이러한 소비 열풍은 미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겪은 경상수지 적자의 핵심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주택 가격의 거품이 꺼진 지금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주택을 처분해도 다 갚지 못할 수준의 빚더미에 앉아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미국 경제는 당장 소비를 줄여야 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주택 가격 상승에 의존하여 번창하던 산업이 축소되고, 이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새로운 산업으로 이동하는 구조적 변화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회복 국면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현재 10%에 육박하는 실업률을 위기 이전의 5~6%대로 낮출 수 있도록 고용을 대대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산업이 태동하려면 그런 산업에 적합한 인력을 양성하는 인적 투자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세계 경제는 그다지 비관적이지 않다.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지역은 아직도 회복 가능성이 보이지 않지만, 그 밖의 지역들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IMF에 따르면 남미나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는 5% 이상 성장이 기대되는 국가들이 상당수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뒤덮으며 모든 지역들이 동반 침체하던 상황과는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상태가 지속될 수 있을까? 즉 세계의 여타 지역 국가들이 미국이나 일부 유럽 국가들로부터 탈(脫) 동조화(de-coupling) 되어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선전(善戰)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경제에 크게 고무적이다. 물론 여기엔 중국의 역할이 단연코 중요하다.

구매력 평가지수로 평가한 2009년 중국의 1인당 GDP 규모는 6700달러로 미국의 4만6000달러에 비해 6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의 GDP는 9조달러로 미국의 14조달러에 비하면 3분의 2 수준에 이른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0%와 12.5%에 달한다. 중국은 빠른 성장 잠재력과 거대한 인구를 가진 덕분에 미국과 견줄 만한 경제 규모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대두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성장에 대한 기여도를 비교하면 중국이 단연 미국을 능가한다. 미국이 2% 성장할 때 중국은 3%만 성장해도 글로벌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정도가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도 10%에 육박하는 성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는 중국이 미국의 3배 이상이다.

사실 중국이 이렇게 규모에 걸맞지 않게 과소평가되었던 이유는 글로벌 경제에서 미국이 궁극적인 최종 소비자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은 주변 국가로부터 높은 기술이 요구되는 부품을 수입한 뒤 단순 조립을 통해 최종재로 변환하고, 이를 미국에 수출해 왔다. 따라서 미국이 침체에 빠지는 경우 중국이 생산한 최종재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게 되고, 이는 중국 경제를 침체시킬 뿐 아니라 중국에 부품을 수출하는 주변 국가들의 경제도 동반침체하게 만든다고 믿어졌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아시아는 독감을 앓는다"라는 속설이 그래서 생겨났다.

하지만 최근 무역 패턴은 이러한 예측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중국의 대미(對美) 수출은 여전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아시아 주변 국가들의 대중국 수출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중국이 드디어 글로벌 경제에서 적어도 주변 국가들에게는 최종 수요자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특히 중국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프라 투자를 비롯한 정부 지출을 늘리고, 내수경제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서 그 효과가 주변국에 대한 수요 창출로 파급된 것이다.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 경제에 대한 전망이 여전히 불확실한 가운데,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답은 중국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글로벌 경제의 최종 수요자로서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해 나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