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 앞세운 日 금융회사 국외 승부수 통할까

2010. 11. 21. 11:18지구촌 소식

[특파원 리포트] 엔고 앞세운 日 금융회사 국외 승부수 통할까

매경이코노미 | 입력 2010.11.20 20:15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일본 금융회사들이 최근 국외시장에서 잇따라 공격적인 행보를 선보이고 나섰다.

파생상품 등 리스크 자산투자에 주력했던 미국·유럽계 금융회사들이 월가발 금융위기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데 비해 버블 붕괴 이후 조용히 내실을 다졌던 일본 금융회사들이 그 빈자리를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나선 셈이다. 15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엔화 값도 일본 금융회사들의 국외 진출에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은 영국의 로얄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프로젝트금융부문을 인수하기 위해 영국 정부와 최종 협상을 전개 중이다. 매수 금액이 약 5000억엔(한화 약 6조원)에 달할 정도로 메가딜(Megadeal)이다. 소매·기업금융 위주로 안전운행을 해왔던 미쓰비시UFJ파이낸셜이 유럽의 프로젝트금융을 겨냥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시도다. 투자 대상이 된 RBS는 월가발 위기로 거액의 손실을 입은 뒤 지난 2008년 영국 정부에서 공적자금을 투입받았고 현재는 국유화 상태로 운영 중인 곳이다.

일본 내 빅3 은행 중 하나인 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도 11월 1일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일본 은행의 미국 증시 상장은 2006년 11월 미즈호은행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 스미토모미쓰이는 미국 증시 상장을 계기로 달러화 기준 자금조달은 물론이고 인수합병(M & A) 중개에도 적극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측은 "미국 금융당국으로부터 금융지주회사로 공식 인가를 받은 뒤 투자은행 업무를 본격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 내수시장이 포화상태에 직면한 보험업계도 국외 진출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업계 1위인 도쿄해상홀딩스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책은행인 알인마은행과 공동으로 자본금 50억엔 규모의 손해보험회사(가칭 도쿄해상사우디)를 설립해 내년 상반기부터 영업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신설 보험회사는 중동에 진출한 자국 내 기업뿐 아니라 무슬림 고객들을 대상으로 현지 전용 보험상품도 판매할 예정이다. 스미토모생명보험은 베트남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 회사와 제휴관계를 체결했다. 업계 재편이 한창 진행 중인 한국 보험시장에도 일본 회사들이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금융청도 금융산업 활성화를 위해 보험 자회사의 국외 부동산 및 투자 규제를 대폭 완화해줄 방침이다. 현재 일본 보험회사들은 본사 및 그 자회사가 100% 출자한 회사에 한해서만 국외 부동산 투자를 허용해 왔다.

이번에 일본 정부가 검토 중인 규제완화 방안에는 보험회사가 100% 출자한 자회사가 아니라도 국외 투자를 허용해주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리먼브라더스의 아시아·중동부문을 인수하며 국외 진출에 첫 신호탄을 올린 노무라증권도 최근 1년간 북미 지점을 8개로 늘렸고 현지시장 채용인력도 1900명까지 확대하는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구사 중이다. 북미시장 채용규모는 리먼 인수 직전의 650명 인력체제와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일본 금융회사들의 국외 승부수에 대해 "결과를 속단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수적인 경영이 체질화돼 있기 때문에 고수익-고위험 패턴이 중시되는 투자은행 분야에서 구미계 경쟁사들보다 경쟁력이 한참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보험시장의 경우도 AIG나 푸르덴셜 등 구미계 보험사들이 자리를 잡은 신흥시장에서 일본 보험사들의 뒤늦은 진출이 얼마나 통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노무라증권의 경우 지난 80년대 초반에도 월가 진출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리먼 인수 이후에도 거액의 투자 부담을 극복하지 못하고 고전했지만 올해 상반기 월가의 채권부문 평가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7위를 기록하는 등 투자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시장에만 안주했던 일본 금융회사들의 국외시장 성공 여부는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의 국외 진출 가능성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채수환 매일경제 도쿄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82호(10.11.24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