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를 빛낸 대한민국 7인의 영웅들

2010. 11. 28. 11:32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광저우를 빛낸 대한민국 7인의 영웅들

[오마이뉴스] 2010년 11월 28일(일) 오전 09:26
[오마이뉴스 양형석 기자]

42억 아시아인의 심장을 뜨겁게 했던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개최국 중국이 199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은 가운데 한국은 76개의 금메달을 포함해 총 232개의 메달을 목에 걸며 지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4회 연속 종합 2위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특히 각 종목마다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광저우에서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대활약으로 팬들을 기쁘게 했다.


[박태환] 2회 연속 메달 7개 독식한 '마린보이'


박태환은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 최고 스타 중 한명이다.
ⓒ MBC 화면캡처



광저우가 낳은 최고의 스타는 역시 수영의 박태환이다. 박태환은 자유형 100m, 200m, 400m를 모두 석권하며 도하 아시안게임에 이어 두 대회 연속 3관왕의 기염을 토했다.


200m에서는 아시아 신기록을 작성했고, 장린에게 아시아기록을 빼앗겼던 400m에서는 올해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에서만 14개의 메달을 쓸어 담은 박태환은 한국 선수의 역대 최다 금메달(6개)과 타이를 기록했고, 역대 수영 종목 최다 메달 기록을 갈아 치웠다.


1500m 금메달리스트이자 200m와 400m에서 박태환과 경쟁했던 중국의 쑨양도 "박태환과의 엄청난 실력 차를 깨달았다"며 라이벌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박태환 역시 1500m가 끝난 후 "쑨양은 1500m 세계 최강이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비록 광저우 아시안게임 MVP는 중국의 배드민턴 남자 단식과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린단에게 돌아 갔지만, 박태환은 아오티 아쿠아틱센터를 지배하며 아시아 수영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추신수] 그릇의 크기가 달랐던 '셀프 병역브로커'


야구 대표팀에서 추신수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 한국야구위원회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어스의 간판 타자 추신수는 이번 아시안게임이 절실했다. 병역 혜택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신수는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까지 자신의 병역 문제를 먼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나라의 부름과 한국야구의 자존심을 최우선으로 이야기했고, 그라운드에서 행동으로 그것을 증명했다.


추신수는 예선부터 결승까지 5경기를 모두 선발 출장해 타율 .571, 3홈런 11타점 8득점 3도루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으로 한국의 금메달을 이끌었다.


특히 대만과의 예선 첫 경기에서는 연타석 홈런을 때려냈고, 중국과의 준결승에서도 몸쪽으로 낮게 떨어지는 공을 그림같이 걷어 올려 담장을 넘기는 차원이 다른 펀치력을 과시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추신수가 중국이나 대만뿐 아니라 홍콩이나 파키스탄 같은 약팀을 상대로도 진지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는 점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병역문제를 해결한 추신수는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 클리블랜드 구단과 연봉 협상을 하게 된다. 연봉 조정 신청 자격을 얻은 추신수는 이미 '연봉대박'을 예약해 놓은 상태다.


[김재범] 굴곡 많은 '풍운아', 속죄의 한판승


'풍운아' 김재범은 아시안게임에서 속죄의 한판승을 따냈다.
ⓒ 광저우 아시안게임 홈페이지



김재범은 한국유도의 풍운아다. 73kg 이하급에서 이원희, 왕기춘과 경쟁을 벌이던 김재범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81kg 이하급으로 체급을 올려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2009년 1월 대낮에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불구속 입건되면서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달 17일 예능 프로그램 출연분이 전파를 타고 말았다.


제작진은 음주 물의를 일으키기 전에 녹화된 분량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그러나 김재범은 물의를 일으킨 운동선수가 명예를 회복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바로 피나는 노력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것. 김재범은 2009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갈비뼈 부상에도 동메달을 따냈고, 지난 10월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결승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무미노프를 한판으로 제압하면서 81kg 이하급의 최강자임을 또 한 번 증명했다.


한국 유도는 6개의 금메달을 따는 선전 속에서도 최민호(60kg이하급), 왕기춘(73kg이하급) 같은 간판스타들의 금사냥 실패로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풍운아' 김재범은 아시안게임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그랜드슬램을 노릴 수 있게 됐다.


[지소연] 아시안게임 득점왕에 빛나는 '지메시'


이번대회에서 지소연보다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없다.
ⓒ MBC 화면캡처



처음 여자축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예선 2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중국과 북한에게 15골을 헌납하고 말았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빠르게 진화한 한국 여자 축구는 북한과 연장까지 가는 대접전을 벌이고 중국에게 2연승을 거둘 만큼 급성장하며 아시안게임 사상 첫 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한국을 3위로 이끌며 실버부트(득점 2위)와 실버볼(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던 '지메시' 지소연이 있었다.


1991년생으로 아직 만 20세도 채 되지 않은 지소연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총 5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올랐다. 비록 아시안게임 득점왕을 정식으로 시상하진 않지만, 대표팀의  막내격인 지소연이 전체 선수 중 가장 많은 골을 넣은 것은 그만큼 지소연의 활약이 돋보였다는 뜻이다.


지소연과 여자 축구가 목에 건 동메달은 한국 대표팀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따낸 91개의 동메달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한국 여자 축구의 황금기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값진 메달이었다.


[장미란]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목에 건 '역도 여제'


장미란은 역도 선수로서의 마지막 목표를 이뤄냈다.
ⓒ MBC 화면캡처



'역도 여제' 장미란에게 아시안게임은 마지막 남은 목표이자 아픈 기억이다.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 선수권대회 4연패의 빛나는 업적 속에서도 유독 아시안게임과는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미란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각각 중국의 탄공홍과 무솽솽에 밀려 광저우 대회 전까지 아시안게임에선 은메달 2개가 전부였다.


이번에도 중국의 신예 멍수핑과 맞대결을 펼친 장미란은 인상에서의 5kg 열세를 용상에서 뒤집으며 아시안게임에서의 첫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장미란과 멍수핑은 합계 311kg으로 동률을 이뤘지만, 몸무게에서 장미란이 멍수핑에 비해 780g이 가벼워 두 선수의 희비가 엇갈리고 말았다.


특히 경기가 끝난 후 장미란의 아버지 장호철씨가 한국 응원단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장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한국뿐 아니라 중국의 네티즌들까지 감동시켰다.



[윤경신] 아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핸드볼 스타


윤경신은 아시안게임에서만 5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김귀현



윤경신이 아시안게임에서 이룬 업적은 한국 핸드볼의 역사와 다름없다. 1990년 만 17세의 나이로 북경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윤경신은 2002년 부산 대회까지 한국 남자 핸드볼의 아시안게임 4연패를 이끌었다.


그러나 지난 2006년 도하 대회에서 중동 심판의 비상식적인 편파판정으로 노메달에 그치며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던 한국 핸드볼에 큰 상처를 입었다.


어느덧 만 37세의 노장 선수가 된 윤경신은 2010년 광저우에서 통산 6번째 아시안게임에 도전했다. 6번의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선수는 사격의 박병택과 윤경신 뿐이다.


윤경신은 7번이나 독일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던 전성기 시절의 폭발력은 다소 무뎌졌지만, 한층 노련해진 플레이로 후배들을 이끌며 4년 전에 빼앗겼던 금메달을 되찾아 왔다.


윤경신이 4년 후에도 계속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아시안게임에서만 5번째 금메달을 목에 건 윤경신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가 배출한 최고의 핸드볼 스타로 기억될 것이다.


[지영준] 마지막 금메달의 주인공은 윤호 아버지


한국 선수단 마지막 금메달의 주인공 지영준은 한살배기 아들을 둔 아버지다.
ⓒ KBS 화면캡처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건 황영조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월계관의 주인공 이봉주가 차례로 은퇴하면서 한국 마라톤은 침체에 빠졌다.


이제 한국 마라톤은 국제 대회 메달을 기대하는 전략 종목에서 국민들의 건강증진에 도움을 주는 생활스포츠로 변해 가는 듯했다.


폐막날인 27일에 열린 남자 마라톤에서도 한국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30세의 윤호 아버지 지영준이 2시간 11분 11초로 가장 먼저 결승테이프를 끊어 8년 만에 다시 마라톤 금메달을 되찾아 왔다.


레이스 도중 케냐 출신의 샤미(카타르)가 지영준의 등을 때리며 신경전을 펼쳤지만, 지영준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레이스를 펼쳐 나갔다. 도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샤미는 3위에 머물렀다.


마라톤보다 늦게 시작한 여자 배구 결승에서 한국이 중국에게 안타깝게 역전패를 당하면서 지영준의 금메달은 한국 선수단의 광저우 아시안게임 마지막 금메달로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