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엄두 못내는 한강의 괴물…“그 속에 시민은 없다”

2011. 3. 4. 17:48철거종합 NEWS

<혈세먹는 잠실운동장>리모델링 엄두 못내는 한강의 괴물…“그 속에 시민은 없다”

헤럴드경제 | 입력 2011.03.04 11:02

 

7만여 좌석 시커멓게 때끼고

콘크리트 바닥은 지진난듯…



"철거도 재활용도 당장 난관"
서울시 무대책으로 일관
"한강예술섬등 새 사업보다
시민공간 활용 검토를"


땅값만 16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지닌 잠실종합운동장이 매년 120억원씩, 10여년 동안 1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보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하면서 재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급하게 착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정경원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장은 "방치된 채 시민들의 혈세가 계속 투입되는 잠실종합운동장의 재활용 방안을 본격적으로 고민할 시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





땅값만 16조원에 달하는 잠실종합운동장이 매년 120억원씩, 2002 한ㆍ일 월드컵 이후 10년 동안 1000억원 이상 혈세를 낭비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좌석이 떨어져 나가고, 콘크리트 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등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지만 서울시는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m.com

▶흉물로 전락한 88올림픽의 메카

=올해로 완공 28년째를 맞는 잠실종합운동장은 여전히 한강변의 랜드마크로 위용을 자랑한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낡을 대로 낡아 더는 어떤 행사도 유치하기 어려워 보인다. 6만9950개의 좌석 여기저기는 시커멓게 때가 낀 채 무상한 세월을 증언한다. 한쪽이 아예 떨어져 나간 좌석도 부지기수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 콘크리트 바닥은 군데군데 쩍쩍 갈라져 있고, 떨어져 나간 파편이 나뒹군다.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국가대표ㆍ프로축구 경기가 옮겨가면서 오랫동안 대한민국 스포츠의 메카로 군림했던 올림픽주경기장은 거리 응원 정도의 기능만 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시의 입장도 난감하다. 상암월드컵경기장이 모든 경기를 소화하고 있어 경기장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워낙 커 한두 푼의 예산으로는 시설 보수 등 리모델링은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올림픽주경기장 면적(7만5469㎡)의 10분의 1 크기인 실내체육관(7098㎡)의 좌석 교체와 도색 작업에만 12억원을 들였다. 웬만큼 예산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표도 안 난다는 것이다.

반면 올림픽 때 사용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이나 역도경기장은 민간부문과 접목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운영을 맡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콘서트, 뮤지컬 공연을 올릴 수 있는 문화예술시설로 이 경기장을 활용하고 있다. 체조경기장은 이미 다수의 국내외 유명 가수가 이용해 콘서트 명소로 자리 잡았다. 북한의 김정철이 관람해 주목받은 에릭 클랩턴의 콘서트도 이곳에서 열렸다. 역도경기장은 민간 자본의 투자를 받아 2009년 뮤지컬 공연이 가능한 1300석 규모의 공연장(우리금융아트홀)으로 거듭났다.


▶강남의 마지막 금싸라기, 재활용 신중한 접근


=종합운동장 일대 부지는 30여년의 세월과 함께 금싸라기 땅으로 변모했다. P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잠실 아파트 158㎡가 16억~17억원대에 거래되므로 3.3㎡당 3000만~4000만원을 호가하는 수준"이라며 "이 아파트의 실제 지분을 감안하면 땅값은 3.3㎡당 1억원 이상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54만㎡에 달하는 잠실종합운동장 부지의 전체 땅값이 16조원을 훨씬 상회한다는 것이다.

잠재적인 부가가치는 엄청나지만,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는 험난하다. 운동장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동대문운동장은 일제 때 건설됐다는 역사적 명분에도, 2007년 철거할 때 엄청난 사회적 논란이 있었다. 정경원 본부장은 "동대문운동장은 일본 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 민족정신 말살을 위해 일본 왕세자의 생일선물로 훈련도감터에 지은 경기장이라 철거할 명분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잠실종합운동장은 대한민국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계기가 된 88서울올림픽의 상징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 역시 "올림픽의 메카인 잠실종합운동장을 재활용하자는 말을 했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각오해야 한다"면서 "체육계의 동의가 없으면 논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체육계의 입장은 서울시와 좀 다르다. 논의조차 제의하지 않고 화살을 체육계로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원승재 대한체육회 경영전략팀장은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 손댄다고 해서 누가 무조건 비난하겠느냐"며 "계획이 정말 체육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수립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는 대가로 체육계에 난지한강시민공원 등에 간이 야구장 4개를 건설해줬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서울시가 한강예술섬 등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잠실종합운동장을 진정 시민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어야 했다"면서 "돈만 먹는 하마를 방치해둔 채 결과적으로 비슷한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것은 이중으로 혈세는 낭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수한 기자 soohan@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