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재해 때 더 강해져 … 외환위기 때 한국처럼”

2011. 3. 25. 08:14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일본인, 재해 때 더 강해져 … 외환위기 때 한국처럼”

 

경제관료 출신의 경제학자인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아오야마가쿠인 교수(오른쪽)가 22일 도쿄 아카사카의 개인 사무소에서 본지 박태욱 경제담당 대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카키바라 교수는 “한국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것같이 일본 경제도 내년부터 큰 폭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榊原英資·70)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 교수를 만났다. 대담은 3월 22일 오전 도쿄 아카사카(赤坂)에 있는 사카키바라 교수 개인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엔화나 증시 상황은 상당히 안정된 모습인데요.

 “원전 상태가 조금 안정적으로 보인 덕이겠지요. 지진과 쓰나미 피해는 아주 컸지만 일단 더 나빠지는 일은 없다고 보면 문제는 결국 원전 문제가 더 악화되느냐 여부입니다.”

-인명피해 수습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적 영향을 따지기엔 좀 이른 느낌도 있습니다만, 큰 대목에서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도호쿠(東北) 지역 피해는 아주 크고 인명피해만 2만 명 이상에 달하지만 그곳은 공업 중심이 아니라 일본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주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부품·소재 공업이 발달한 곳이라 큰 영향은 있겠지요. 문제는 원전이 일단 수습돼도 전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상당한 절전이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이게 일본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계획정전’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절전 정책, 또 시민들의 대응 자세는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정전은 계획만큼 진행되고 있진 않습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절전이 그런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상황이 계속될 걸로 봅니다. 일본에선 그동안 에너지를 너무 낭비해온 게 아닌가 하는 의식도 있어 이번 일을 계기로 에너지 절약이 더 강하게 일어날 것으로 봅니다.”

-에너지 절약에 일가견 있는 일본에도 여전히 줄일 여지가 있다고 보시는군요.

 “원래 그런 노하우와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에너지 절약에 대한 인식이 더욱 높아지고,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전 이후 과제는 복구입니다. 복구 진행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잡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우선 대량의 국채를 발행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을 전체를 재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복구작업은 상당히 큰 규모로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 상황도 문제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핵심은 재원입니다. 지금 국채 발행을 말씀하셨는데, 민주당 공약 이행용 예산을 돌려 쓰자거나 소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올리자는 등의 의견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당분간 증세는 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일본 경제가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증세는 이를 악화시킬 겁니다. 4~5년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나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일부에선 국민적 동참이란 의미에서 재해 지역은 특례로 하고 증세를 하자는 의견도 내던데요.

 “그런 의식도 있겠지만 당분간 해서는 안 됩니다. 국채를 사는 것도 결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발행시장 상황이 괜찮다고 하셨는데, 대규모 국채 발행을 할 경우 금리를 인상시켜 다시 경제에 부담을 주는 요인이 될 우려는 없나요.

 “저는 20조~25조 엔(약 277조2000억~346조50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봅니다만, 그 정도론 금리가 크게 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1.1%입니다. 아주 낮은 수준인 데다 지금 금융은 대단히 완화된 상태입니다. 올라도 1.5%를 넘기지는 않을 겁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이번 대지진이 거시적 차원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확산·수습될 것으로 보십니까.

 “우선 일본 경제는 국채 발행과 복구 수요로 국내총생산(GDP)이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세계적으로 보면 리스크 회피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고, 이건 마이너스입니다. 미국 경제도 유럽 경제도 나아지고 있지만 리스크 관리 의식이 퍼지면서 세계경제에 어느 정도 영향은 있을 걸로 봅니다.”

-큰 흐름에서 보아 일본 경제는 대지진 이전 조금씩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번 대지진의 영향에서 벗어나 다시 정상 회복궤도를 되찾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까.

 “올해는 내려가겠지만 2012년엔 상당히 크게 회복될 것입니다. 이번 지진이 단기적으로 마이너스인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플러스적인 면은 일본인의 마음을 일치시켰다는 겁니다. 일치해서 복귀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여러 곳에서 보입니다. 그게 플러스입니다. 한국이 90년대 말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것 같이 이러한 현상이 내년 이후 일본에서도 나타날 겁니다.”

-정상적 회복 흐름을 보다 확실히, 또 빨리 되찾기 위해 정책적으로는 어떤 대응이 필요한 겁니까.

 “누차 말씀드린 대규모 국채 발행입니다. 가능한 한 빨리 해야지요.”

-말씀하신 20조~25조 엔이란 규모에 대해 관료들도 대체로 동의합니까.

 “이번 지진 이후 관료들과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그런 방향으로 갈 것으로는 생각합니다.”

-국민 단결을 위해선 확고한 리더십이 필요하단 얘기가 많이 들립니다.

 “지금은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복구에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빠른 시기에 동북부뿐 아니라 일본 전체의 부흥, 또는 재건을 위한 프로그램을 내야만 합니다.”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도 적잖은 것 같습니다.

 “ 정치시스템을 크게 바꾸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앞으로 1~2년간 일본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를 단계별로 본다면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우선 원전 문제를 확실히 처리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도호쿠 지역을 재해로부터 구하는 일, 앞서 말씀드린 대형 프로젝트의 진행입니다. 그 다음 방재시설을 확충해야 합니다.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은 이후의 방재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대지진이 일본 전체를 다시 일으킬 기회가 될 수 있다 는 분도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본인들은 이런 상태에서 강합니다. 재해가 있을 때 단결합니다. 나는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일어나길 바랍니다.”

◆사카키바라=1995년 대장성 국제금융국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엔화 환율이 달러당 79엔까지 하락(엔화 가치 상승)하자 외환시장에 개입해 국제금융시장을 쥐락펴락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미스터 엔’이다. 직업 관료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 자리인 재무관(차관급)을 끝으로 99년 대장성을 떠나 대학교수로 변신했다. 현 민주당 정권의 경제교사 역할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