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타임 대디' 시대

2011. 5. 30. 08:39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풀타임 대디' 시대

주말만 놀아주는 아빠 싫어, 회사 어린이집에 아이 맡기고 점심때 놀아주고 함께 퇴근

조선일보 | 한상혁 기자 | 입력 2011.05.30 03:19 |

 

지난 26일 오전 8시쯤 서울 중구 GS건설 3층 어린이집. 임모(41) 차장이 딸 수민(3)이를 안고 들어섰다. 교사 이은지(27)씨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았다. 그는 "선생님, 요새 수민이가 밤에 늦게 자요. 낮잠 시간을 좀 줄여주세요"라고 말한 뒤, 수민이에게 "이따 점심때 아빠하고 놀자"라고 약속하고 바쁜 걸음으로 18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임씨는 지난 3월부터 이 어린이집에 수민이를 맡겼다 오후 7시에 함께 퇴근한다.

외근을 나갔다 오면 잠깐이라도 어린이집에 들러 딸을 만난다. 그는 "맞벌이라 아이를 어딘가 맡겨야 하는 데다 주말에만 놀아주는 '주말 아빠'가 되기 싫어 내가 수민이를 데리고 다닌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맡기고 찾아가는 역할은 엄마의 몫인 경우가 많지만, 최근 아이를 데리고 출퇴근하는 아빠들이 드물지 않게 됐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엄마 회사의 어린이집 대신 아빠 회사의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기업체 사내(社內) 어린이집 등에서는 이런 아빠들을 '풀타임 대디(full-time daddy)'라 부른다. 주말에만 아이와 놀아주는 아빠를 뜻하는 '파트타임 대디(part-time daddy)'의 반대말이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고 보육에 대한 아빠의 역할이 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서울의 직장 보육시설 수는 2006년 75곳에서 작년 109곳으로 늘어났다.

풀타임 대디들에게도 고민은 많다. 아이와 같이 퇴근해야 하기 때문에 직장 안팎의 사람들과 저녁 약속이 불가능하다. CJ제일제당 박종원(43)씨는 "작년 3월부터 저녁 회식자리를 모두 뿌리쳤더니 이제 나를 부르지도 않는다"며 "다섯살 아이가 다 크면 친구나 회사 사람들에게 못 마신 술을 한꺼번에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대기업에 다니는 정모(37)씨도 "2년 전부터 회사 어린이집에 딸(5)을 맡겨놓고 짬이 날 때 함께 놀아주곤 했는데 상사로부터 '지금 어디 있느냐'는 질책을 받고 급히 사무실로 돌아간 적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