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의 역습…대책이 안먹힌다

2011. 7. 6. 09:24이슈 뉴스스크랩

물가의 역습…대책이 안먹힌다
1분기 실질임금 18개월만에 마이너스
외식비 폭등에 중산층·서민 민생 위협
기사입력 2011.07.05 17:42:59 | 최종수정 2011.07.06 07:59:23

#1 `알뜰족`을 자부하는 30대 초반 직장인 서미선 씨(가명)는 외식비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서씨는 "최근 전세금을 대폭 올려준 뒤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는데도 지난달 외식비가 작년보다 6만원이나 늘었다"며 "점심 먹기도 무섭다"고 말했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40대 초반 직장인 김민수 씨(가명)는 지난달 외식비로 39만원을 썼다. 놀란 김씨가 아내와 함께 1년 전 지출액을 따져본 결과 1년 새 외식비가 2배 이상 뛰었다.

#2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 불안의 근원인 `식당물가` 잡기에 나섰다. 특히 프랜차이즈 형태 외식업체들의 가격 인상에 주목하는 한편 24시간 편의점 업계의 가격담합 조사에도 착수했다. 하지만 시중 분위기는 딴판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예전엔 서울시 등과 함께 점검만 나가도 분위기가 잡혔는데 요즘엔 감시와 단속이 잘 먹히지 않는 것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고분고분하던 물가가 역습을 시작했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던 시절은 어느덧 옛날이 됐다.

요즘 식당 음식값은 한 번 오르면 내리지 않고 한 곳에서 올리면 연쇄적으로 올라간다. 이미 시중에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독버섯처럼 퍼졌다. 원자재 가격이 떨어졌다고 가격을 내리지 않는다.

물가 폭등에 서민들은 허리가 휠 지경이다. 월수입이 크게 늘지 않아도 물가가 안정됐을 때에는 먹고사는 걱정을 안 했는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올 1분기 실질임금 증감률이 1년6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더욱 큰일은 과거와 달리 물가당국의 영향력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 이상을 `골디락스`(고성장ㆍ저물가) 상황에 안주해온 탓도 크다. 당국조차 물가의 공포를 잊었는지도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외 개방으로 수입물가를 낮추고 성장을 계속하면 물가에는 염려가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정책당국까지 퍼져 지난 10년간 물가관리에 대한 시스템만 망가졌다는 것이다.

경제 안정과 물가에 만전을 기하던 시절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현장물가 합동단속 등 적극 협조하는 분위기도 강했으나 이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지자체별로 여야가 갈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무엇보다 물가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진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물가를 책임질 최고당국이 어디인지도 요즘엔 헷갈릴 정도다.

공정위가 나서고 있는 모습도 부자연스럽지만 그렇다고 과거 경제기획원이나 재정경제부처럼 지금의 기획재정부가 나서는 것도 마땅치 않다. 한은의 독립성이 강조되면서 형식적으로 물가관리의 책임은 중앙은행에 있는 것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물가를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은 정책 운용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물가 폭등은 정책 부재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숱하게 나왔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중에 돈을 많이 풀어놓고도 성장과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정부 정책이 사태를 그르쳤다는 지적이다.

거시경제는 성장 쪽에 맞춰놓고 미시적인 수단으로 물가를 단속하다 보니 `기업들 팔 비틀기`식 방식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원유와 국제 원자재 가격이 비용 쪽에서, 시중에 풀린 돈은 수요 쪽에서 동시에 물가를 밀어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은 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심각한 가계부채와 내년 선거까지 앞두고 있어 더더욱 금리를 올리거나 재정지출을 줄이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은 예견된 상황"이라며 "정부 물가정책이 최소한 6개월~1년 정도 앞서 조치가 취해졌다면 최소 0.5%포인트 정도는 물가를 낮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양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물가 상승 기대심리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생산자는 제품 가격을 올려받고 있고 근로자는 임금을 올려달라고 노사협상을 시작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꺾지 못하면 공공요금 인상 억제, 농산물 관세 인하, 공정위를 동원한 담합 단속 등 정부의 미시적 정책은 `백약이 무효`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고다.

[전병득 기자 / 김병호 기자 / 유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