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복권··· 진짜 대박은 정부?

2011. 7. 10. 10:28이슈 뉴스스크랩

'저항없는 세금?' 연금복권 광풍 들춰보니

1·2회 모두 매진, 없어서 못사는 연금복권··· 진짜 대박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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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인생역전'을 슬로건으로 내건 로또복권 판매가 시작됐다.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당첨금에 열광했고 '일확천금'을 꿈꾸며 로또로 몰려들었다. 로또 광풍은 2003년 4월 407억 원의 1등 당첨금이 터지며 절정에 달했다. 이후 정부가 판매가격을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낮추고 이월횟수를 2회로 제한하면서 열기는 사그러 들었지만 로또는 지금도 매년 2조원 넘게 팔리는 최고 인기복권이다.

# 8일, 새로 나온 연금복권을 사러 판매점에 들렀던 회사원 박모씨(45세)는 깜짝 놀랐다. 오는 13일 추첨예정인 2회차 복권은 벌써 매진됐고, 20일 발표할 3회차 복권을 사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로또복권이 처음 나왔을 때 생각이 난다"며 고개를 저었다.

'연금복권520'이 10년 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로또광풍'의 뒤를 이을 기세다. 1회차 630만장이 발매 4일 만인 지난 4일 매진된데 이어 2회차 분도 전자판매 사이트에서는 이미 완판 됐고, 가판에서도 매진돼 찾아보기 힘들다.

◇인기폭발 연금복권 비결은=연금복권은 로또복권처럼 당첨금을 일시에 지급하는 대신 1등 당첨금(12억 원)을 매월 500만 원씩 20년 동안 지급한다. 당첨자가 사망하면 가족에게 상속도 된다.

1등 당첨확률도 로또복권의 814만분의 1보다 높은 315만분의 1이고, 세금(22%)도 로또(33%)보다 적게 뗀다. 매달 내야하는 22% 세금을 빼면 월 실수령액은 390만원 가량이다. 단, 인플레이션에 따른 가치 손실을 보전해주지 않아 1등 당첨금의 실질가치를 현재가격으로 따져보면 7~8억 원 수준이다.

연금복권의 높은 인기는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시기에 대중의 안정에 대한 갈망을 절묘하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서울 도봉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며, 연금복권도 팔고 있는 이모씨(46)는 "1등에 당첨돼도 매달 정액 지급되니 돈 빌려달라는 사람도 없을 거고, 크게 사업을 벌여 망할 가능성도 적어 연금복권을 찾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편의점 운영해서 언제 노후대비 하겠냐. 사실 나도 지난주에 5장 샀고 이번 주에도 5장을 구매했다"며 웃었다.

복권판매 업자들이 밝힌 주 구매층은 40대 남성. 편의점 업주 최모씨는 "연금 복권이 20년간 지급되니까 40, 50대 중년 남성들이 노후 대비용으로 가장 많이 사간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 연금복권을 사러 왔다는 강모씨(39)는 "로또 1등의 저주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연금처럼 매달 돈이 나오면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며 "당첨되면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안정성"이라며 "로또와 달리 당첨되더라도 내 삶 자체가 크게 달라질 필요가 없고 심리적으로 안정성을 가질 수 있어 연금복권이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고통 없는 세금' 복권=정부는 연금복권 판매열기가 놀랍다는 반응이다. 연금복권은 회당 630만장이 발매된다. 전량 매진될 경우 회당 매출은 63억원이며, 1년 발행액은 3276억 원이다.

연금복권은 판매액의 59%가 당첨금, 11%가 수수료 및 발행비용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30%는 정부 기금으로 쌓인다. 지난해 로또를 포함한 전체복권 판매액은 2조5255억 원. 이중 당첨금은 1조2754억원, 정부수입은 1조285억 원에 달했다. 당첨금에도 세금이 부과되는 만큼 실질적으로는 복권발행액의 절반가량이 정부 공공사업(복지)을 위한 기금(수익)으로 잡히는 셈이다.

정부는 이 기금을 저소득취약계층, 서민주거안정, 문화예술진흥, 국가유공자, 재해재난 등 5대 공익사업에 지원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관계자는 "연금복권이 새로운 형태라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이처럼 매진사례가 이어질지는 몰랐다"면서 "복권이 많이 판매되면 저소득계층에 대한 공익사업이 활발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금복권 발행을 두고 국민의 노후 불안감을 노린 또 하나의 간접세 신설이란 비판도 있다. 실제로 복권은 정부가 국민에게서 돈을 거두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정부가 담배·술 등에 붙이는 세금을 인상하거나, 환경세 등 세금을 신설할 경우 혹은 고소득층 세율을 올릴 경우 강한 조세저항에 직면한다. 이에 비해 복권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심리를 교묘하게 활용, 저항이 없어 '고통 없는 세금(Painless tax)'으로도 불린다.

'복권의 역설'도 이 때문에 발생한다. 복권을 구매하는 대다수는 저소득층이나 중산층이다. 결국 부유층이 더 내야 할 세금을 저소득층·중산층에게서 충당하게 돼 조세정의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부가 손쉽게 세수를 충당할 목적으로 저소득층에게 도박을 권유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복권의 역사' 저자인 데이비드 니버트 미국 위튼버그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로 복권을 정의했다. "복권의 역사는 가난한 이들의 꿈에 세금을 매긴 수탈의 역사다. 큰돈을 번다는 공허한 꿈을 심어줘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의 불행과 무의미한 삶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려놓기 때문에 사회통제 수단으로도 이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