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000만원씩 미친듯이 '돈'이 벌려서…
2011. 7. 29. 20:08ㆍ분야별 성공 스토리
[매경이 만난 사람] 글로벌 경영 나서는 김홍국 하림 회장 40년전 병아리 10마리가 키운 꿈…이젠 美서 펼칩니다 | |
기사입력 2011.07.29 17:01:43 | 최종수정 2011.07.29 17:21:32 |
57년 닭띠생. 닭으로 일가(一家) 를 이룬 그에겐 태생부터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새벽닭이 울 때 일어나 회사에 가장 일찍 출근한다는 그에겐 닭을 닮은 부지런함과 열정이 빛난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40여 년 전 여름. 솜털이 보송보송한 노란 병아리와의 만남이 운명처럼 그를 찾아왔다. 여름방학을 맞아 충남 논산군 연산면 신흥리에 위치한 외가에 놀러갔던 어느 날. 외할머니는 손자에게 병아리 10마리를 건넸다.
삐악대는 병아리가 귀여웠던 꼬마는 개구리를 잡아주고 둑새풀을 뜯어가며 공들여 열 마리를 키웠다. 병아리는 쑥쑥 자라 어느덧 닭이 됐다. 시장에 가보니, 마리당 병아리는 7원, 닭은 250원씩 쳐줬다. 그 돈으로 다시 병아리 100마리를 샀다. 같은 방법으로 닭을 키워 팔아 이번에는 돼지를 샀다. 동물을 키우는 게 좋았고, 돈을 버는 재미도 알게 됐다. 이참에 그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농고를 가기로 결심했다.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는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어엿한 `사장`이 됐고 자본금 4000만원으로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에 농장을 차렸다. 바로 3조5000억원(지난해 매출 기준)의 하림그룹을 이끄는 수장 김홍국 회장(54)의 얘기다. 기습 폭우로 서울이 물난리를 겪은 다음날인 28일 오후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하림그룹 사옥을 찾았다.
마침 이날 김 회장은 오전 10시(한국시간) 미국 델라웨어 파산법원으로부터 미국 닭고기 회사 `앨런패밀리푸즈` 최종 인수 승인을 받았다. 병아리 10마리에서 출발한 소년의 꿈이 글로벌 종합 축산회사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8층 회장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자신에 찬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오랫동안 김 회장이 그려오던 `글로벌 경영`의 본체가 새로 닻을 올렸기 때문이다. 탄탄대로를 달려온 것 같지만, 김 회장의 경영 인생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김 회장은 "세 차례 위기를 겪었다"고 했다. 위기를 맞닥뜨렸던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위기가 오히려 호기가 됐다"고 했다.
▶ 세계 농식품산업 심장부에 뛰어들다
지난달 김 회장은 투자자문회사인 JKL파트너스로부터 미국 닭고기 회사를 인수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델라웨어 메릴랜드 버지니아주 등 동부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 19위의 앨런패밀리푸즈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미국은 김 회장이 수년 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던 시장이었다.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김 회장은 판단했다. 그가 직접 나서 인수전을 진두지휘했다. 올해 초 미국의 또 다른 닭고기 업체인 타운센즈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고배를 마셨던 탓에 더욱 철저히 준비에 매달렸다. 김 회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창출하려면 미국 본토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누차 강조해 왔다.
인수과정에 우여곡절도 겪었다. 당초 입찰에 참여하기로 했던 우크라이나 옴트론은 빠지고, 미국 내 경쟁사인 마운테어(Mountaire Farm)가 최종 인수전에서 맞붙었다. 인수는 파산업체 자산을 특정 조건에 사들이기로 사전 합의하는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 방식으로 진행됐다. 앨런 측은 사전에 경쟁사 마운테어와 3000만달러에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하림은 마운테어 측에서 폐쇄하기로 한 하버슨 공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조건으로 1000만달러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해 최우선 매수권자로 선정됐다. 마운테어 측이 `불공정거래`라고 주장하며 강력 항의하는 소동도 일었다.
삐악대는 병아리가 귀여웠던 꼬마는 개구리를 잡아주고 둑새풀을 뜯어가며 공들여 열 마리를 키웠다. 병아리는 쑥쑥 자라 어느덧 닭이 됐다. 시장에 가보니, 마리당 병아리는 7원, 닭은 250원씩 쳐줬다. 그 돈으로 다시 병아리 100마리를 샀다. 같은 방법으로 닭을 키워 팔아 이번에는 돼지를 샀다. 동물을 키우는 게 좋았고, 돈을 버는 재미도 알게 됐다. 이참에 그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농고를 가기로 결심했다.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는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어엿한 `사장`이 됐고 자본금 4000만원으로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에 농장을 차렸다. 바로 3조5000억원(지난해 매출 기준)의 하림그룹을 이끄는 수장 김홍국 회장(54)의 얘기다. 기습 폭우로 서울이 물난리를 겪은 다음날인 28일 오후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하림그룹 사옥을 찾았다.
마침 이날 김 회장은 오전 10시(한국시간) 미국 델라웨어 파산법원으로부터 미국 닭고기 회사 `앨런패밀리푸즈` 최종 인수 승인을 받았다. 병아리 10마리에서 출발한 소년의 꿈이 글로벌 종합 축산회사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8층 회장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자신에 찬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오랫동안 김 회장이 그려오던 `글로벌 경영`의 본체가 새로 닻을 올렸기 때문이다. 탄탄대로를 달려온 것 같지만, 김 회장의 경영 인생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김 회장은 "세 차례 위기를 겪었다"고 했다. 위기를 맞닥뜨렸던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위기가 오히려 호기가 됐다"고 했다.
▶ 세계 농식품산업 심장부에 뛰어들다
지난달 김 회장은 투자자문회사인 JKL파트너스로부터 미국 닭고기 회사를 인수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델라웨어 메릴랜드 버지니아주 등 동부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 19위의 앨런패밀리푸즈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미국은 김 회장이 수년 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던 시장이었다.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김 회장은 판단했다. 그가 직접 나서 인수전을 진두지휘했다. 올해 초 미국의 또 다른 닭고기 업체인 타운센즈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고배를 마셨던 탓에 더욱 철저히 준비에 매달렸다. 김 회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창출하려면 미국 본토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누차 강조해 왔다.
인수과정에 우여곡절도 겪었다. 당초 입찰에 참여하기로 했던 우크라이나 옴트론은 빠지고, 미국 내 경쟁사인 마운테어(Mountaire Farm)가 최종 인수전에서 맞붙었다. 인수는 파산업체 자산을 특정 조건에 사들이기로 사전 합의하는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 방식으로 진행됐다. 앨런 측은 사전에 경쟁사 마운테어와 3000만달러에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하림은 마운테어 측에서 폐쇄하기로 한 하버슨 공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조건으로 1000만달러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해 최우선 매수권자로 선정됐다. 마운테어 측이 `불공정거래`라고 주장하며 강력 항의하는 소동도 일었다.
김 회장은 앨런 측 자산 인수액 4800만달러를 포함해 추가 설비투자 등에 총 1억2000만달러를 투자키로 했다.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했던 마운테어 대신 지역 민심도 하림에 쏠렸다. 김 회장은 이렇게 연간 생산량 22만t 규모의 미국 회사를 품에 안았다. 국내 축산기업 미국 투자액으로는 사상 최고다. 김 회장은 "미국에 이만한 규모의 공장과 시설을 새로 지으려면 4000억~5000억원 이상 들어갈 것"이라며 "이것을 자산인수 비용 500억원에 산 것이니 이것만으로도 남는 투자"라고 말했다.
김 회장에게 미국 시장 진출의 의미를 묻자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미국은 세계 농식품산업의 센터, 심장입니다. 규모가 크고, 기술력도 높은 데다 정보도 빠르게 유통되죠. 글로벌 경영을 하려면 미국 본류에 들어가야 합니다. 앨런패밀리푸즈 인수도 이 같은 차원에서 공을 들였습니다. 미국 회사를 인수하면 미국 주정부, 농무부 등과 직접적인 대화 채널이 생기게 됩니다. 미국 주류 사회로 시야도 넓힐 수 있죠. 국내 산업 생산성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김 회장은 30일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앨런패밀리푸즈를 방문해 현지 경영진을 만나 구체적인 경영 계획을 세울 계획이다. 김 회장은 "하림, 앨런 두 브랜드를 같이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조만간 2차 가공육인 삼계탕을 미국 시장에 내다 팔 계획"이라고 말했다.
▶ 축복으로 돌아온 세 번의 위기
30년 가까이 축산 경영자로 살아온 김 회장에게는 잊을 수 없는 세 번의 위기가 있었다. 첫 위기는 김 회장이 스물다섯되던 82년에 찾아왔다. 18세에 자본금 4000만원으로 설립한 황등농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당시 또래에 비해 이른 성공에 취해 있던 때였다. 현금이 늘 두둑하다보니 사람들과 곧잘 어울려 다녔다. 하지만 전국 축산농가에 들이닥친 닭값 폭락의 여파에 그가 일군 성취는 한순간 물거품이 돼 버렸다. 그는 "엄청난 불황에 시달렸다"고 회상했다.
사람들에게 들킬까 밤에는 돼지 막사에서 쪽잠을 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축산업에 뛰어든 게 뼈저리게 후회가 됐다. 밤에 눈을 붙일 때면 좌절과 후회가 밀려왔다. 아침에는 희망을 붙잡아보려 안간힘을 썼다. "후회와 희망이 반복되는 나날이었어요. 괜히 사업을 했나 싶더군요. 부모님 말씀이나 듣고 공부나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도 처음으로 해 봤어요."
식품회사에 입사해 영업부장으로 샐러리맨 생활도 했다. 남는 시간에는 잠을 아껴가며 닭에 관한 책은 모조리 사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에 들렀는데 김 회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돼지 값은 폭락해 있는데, 가공식품인 소시지 값은 예전 가격 그대로였던 것이었다. 그는 무릎을 쳤다. "아, 가공사업을 하면 되겠구나. 돼지나 닭 값이 폭락해도 가공식품은 값이 안 떨어지는구나."
이때 경험이 바로 현재 하림그룹이 강조하는 `3장 통합경영`의 모체가 됐다. 3장 통합경영이란 농장-공장-시장을 기반으로 사육-가공-유통을 수직계열화한다는 것이다. 농장에서 닭을 사육하고, 공장에서는 사료가공 식품생산을 담당하며, 시장에서는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식품을 유통시킨다는 경영 전략이다.
뼈를 깎는 노력 덕에 김 회장은 재기에 성공했고 결국 1986년에는 하림을 설립했다. 이때는 행운이 찾아왔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면서 양념 치킨 체인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닭고기 수요도 이와 맞물려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림도 덩달아 급성장을 이뤘다. 김 회장은 "당시 하루에 2000만원, 3000만원씩 벌었던 것 같다"며 "하도 돈이 잘 벌려 하루는 문을 닫아놓고 팔을 꼬집어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위기는 1997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외환위기 때 찾아왔다. 420억원을 들여 대지 1만8000여 평 규모의 육가공 공장을 증축한 것이 1997년 8월이었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이자가 27%까지 뛰었다. 초현대식 공장을 제대로 가동해 보지도 못한 채 금방이라도 문을 닫을 판이었다. 금방이라도 부도가 날 것 같았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에 투자 유치 신청을 했다. 두 달 가까운 조사를 받은 끝에 IFC는 2000만달러 투자 승인을 확정했다. IFC는 하림의 경영 구조를 높이 평가했다. IFC 투자 유치 국내 1호 기업이 됐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환율도 도왔다. 2000만달러를 투자받을 당시 1400원대로 뛰었던 환율이 원금 상환 기간에는 안정세를 되찾았다.
잘나가던 회사는 2003년 다시 세 번째 위기를 맞았다. 이번에는 화재로 공장이 전소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류인플루엔자까지 전국을 강타했다. 닭고기 소비는 급격히 줄었다. 주위 사람들은 회사가 곧 망할 거라 했다.
김 회장은 당시 여기저기 투자해 벌여 놓은 사업이 많았다. 무리한 투자에 대한 반성도 됐다. 김 회장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돈을 빌리러 찾아간 은행에 "화재가 오히려 더 좋은 기회"라고 역설했다. " `공장을 아예 새로 지어서 품질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겠다, 브랜드 파워를 더 높이겠다`고 했죠. 은행도 고심 끝에 흔쾌히 받아들이더군요. 이를 계기로 오히려 품질과 브랜드 파워를 업그레이드했죠. 위기가 축복이 됐어요."
▶ 지금도 세상에는 엄청난 기회가 열려 있다
김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긍정론자다. 직원들에게 "위기를 견디면 기회가 된다"고 강조한다. "위기를 온전히 극복해 내는 것은 `40년짜리 인생 대학`을 나와 성숙함을 터득하는 것"이라는 지론도 펼친다. 그는 "지금도 세상에는 엄청난 기회가 열려 있다"고 말한다.
"긍정적이 된다는 것은 모든 기회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해 보기도 전에 기회를 포기해요. 어려워 보여도 한번 해보면 길이 보이거든요. `나는 못 한다`는 마음이 기회를 거부하는 것이죠. 앨런패밀리푸즈를 인수한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사람들도 있겠죠. 미국에 더 큰 불황이 닥쳐 돈을 떼이면 다 망한다고 해요. 하지만 매사를 이렇게 접근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저는 항상 기회를 잡으려고 해요."
이야기를 하던 중 김 회장은 갑자기 집무실 책상으로 발걸음을 옮겨 푸른색 표지의 성경책을 한 권 가져왔다. 그리고 믿음에 대한 구절을 펼쳤다. 페이지마다 초록색 형광펜으로 표시해 흔적이 빼곡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김 회장은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모태신앙인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전북 익산에 내려가 동네 교회에서 23년째 주일 예배를 드린다. 월요일에 익산 공장을 둘러보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가장 즐겨 읽는 책으로 주저없이 성경을 꼽는다.
"성경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는 것, 미래에 대한 믿음 이야기가 나와요. 후배들에게도 해 주고 싶은 얘기죠. 지금은 모든 사람이 눈에 보이는 성공만 좇고 있어요. 의사, 변호사, 공무원처럼요. 제가 만약 부모님 말씀대로 공부만 했다면, 지금의 하림은 없었을 거예요. 형제들(4남2녀) 모두 공무원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상상도 못했던 기회가 여기저기에서 쏟아진다는 걸 후배들이 알았으면 해요."
네 살 터울로 네 자녀를 둔 김 회장은 자녀 교육에도 이 같은 원칙을 철저히 세웠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대한 지원해 주되, 조언자로서 부모의 역할에도 충실했다. 늦어도 저녁 10시 전에는 귀가해 가족들과 짧은 대화라도 늘 나눈다. 첫딸은 에모리 비즈니스 스쿨을 나와 현재 IBM에서 근무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누나의 뒤를 이어 올가을 에모리 비즈니스 스쿨에 입학한다.
"초등학교 도덕책에 나온 내용만 잘 실천해도 `A급 경영자`가 됩니다. 경영자의 자질 중 성품만큼 중요한 것은 없어요. 지식이 모자라도 열정, 도전정신, 긍정적 성품이 있다면 성공할 수 있어요."
인터뷰 말미. 그는 다시 한번 꿈을 이야기했다. "동북아는 식량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곳입니다. 3년 안에 미국 서부를 개척할 겁니다. 서부 지역 미국 회사를 인수해 신선육도 전 세계로 수출하고, 농산물 자원도 가져올 겁니다. 네덜란드가 모델이 될 수 있겠죠. 곡물 자급률이 25%로 우리와 비슷한데, 남미에서 오렌지를 싸게 들여와 유럽 전역에 공급(유럽 시장 점유율 60%)하는 나라죠. 농업무역 흑자가 300억달러가 넘습니다. 우리도 글로벌 농업이라는 개념을 속히 적용해야 합니다."
김 회장은 "10년 후에는 하림의 글로벌 매출과 국내 매출 비중이 6대 4로 역전될 것"이라며 "이번에 인수한 앨런패밀리푸즈도 3~4년 후에는 10억달러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정비하는 등 글로벌 농식품 기업이 되기 위해 당장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고 했다. 병아리 10마리로 3조5000억원의 축산그룹을 일군 김 회장,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 He is…
1957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났다. 익산농림고(현 익산대학)를 졸업하기 전에 사업에 뛰어들어 1986년 하림식품을 설립했다. 1998년 호원대를 나와 2000년 전북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에는 원광대 명예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하림그룹 회장으로 하림, 천하제일, 팜스코, 선진, 농수산홈쇼핑 등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1993년 신한국인, 1999년 신지식인에 선정됐으며 2006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대통령인사자문 위원 등을 거쳐 현재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민간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주연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김 회장에게 미국 시장 진출의 의미를 묻자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미국은 세계 농식품산업의 센터, 심장입니다. 규모가 크고, 기술력도 높은 데다 정보도 빠르게 유통되죠. 글로벌 경영을 하려면 미국 본류에 들어가야 합니다. 앨런패밀리푸즈 인수도 이 같은 차원에서 공을 들였습니다. 미국 회사를 인수하면 미국 주정부, 농무부 등과 직접적인 대화 채널이 생기게 됩니다. 미국 주류 사회로 시야도 넓힐 수 있죠. 국내 산업 생산성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김 회장은 30일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앨런패밀리푸즈를 방문해 현지 경영진을 만나 구체적인 경영 계획을 세울 계획이다. 김 회장은 "하림, 앨런 두 브랜드를 같이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조만간 2차 가공육인 삼계탕을 미국 시장에 내다 팔 계획"이라고 말했다.
▶ 축복으로 돌아온 세 번의 위기
30년 가까이 축산 경영자로 살아온 김 회장에게는 잊을 수 없는 세 번의 위기가 있었다. 첫 위기는 김 회장이 스물다섯되던 82년에 찾아왔다. 18세에 자본금 4000만원으로 설립한 황등농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당시 또래에 비해 이른 성공에 취해 있던 때였다. 현금이 늘 두둑하다보니 사람들과 곧잘 어울려 다녔다. 하지만 전국 축산농가에 들이닥친 닭값 폭락의 여파에 그가 일군 성취는 한순간 물거품이 돼 버렸다. 그는 "엄청난 불황에 시달렸다"고 회상했다.
사람들에게 들킬까 밤에는 돼지 막사에서 쪽잠을 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축산업에 뛰어든 게 뼈저리게 후회가 됐다. 밤에 눈을 붙일 때면 좌절과 후회가 밀려왔다. 아침에는 희망을 붙잡아보려 안간힘을 썼다. "후회와 희망이 반복되는 나날이었어요. 괜히 사업을 했나 싶더군요. 부모님 말씀이나 듣고 공부나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도 처음으로 해 봤어요."
식품회사에 입사해 영업부장으로 샐러리맨 생활도 했다. 남는 시간에는 잠을 아껴가며 닭에 관한 책은 모조리 사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에 들렀는데 김 회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돼지 값은 폭락해 있는데, 가공식품인 소시지 값은 예전 가격 그대로였던 것이었다. 그는 무릎을 쳤다. "아, 가공사업을 하면 되겠구나. 돼지나 닭 값이 폭락해도 가공식품은 값이 안 떨어지는구나."
이때 경험이 바로 현재 하림그룹이 강조하는 `3장 통합경영`의 모체가 됐다. 3장 통합경영이란 농장-공장-시장을 기반으로 사육-가공-유통을 수직계열화한다는 것이다. 농장에서 닭을 사육하고, 공장에서는 사료가공 식품생산을 담당하며, 시장에서는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식품을 유통시킨다는 경영 전략이다.
뼈를 깎는 노력 덕에 김 회장은 재기에 성공했고 결국 1986년에는 하림을 설립했다. 이때는 행운이 찾아왔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면서 양념 치킨 체인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닭고기 수요도 이와 맞물려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림도 덩달아 급성장을 이뤘다. 김 회장은 "당시 하루에 2000만원, 3000만원씩 벌었던 것 같다"며 "하도 돈이 잘 벌려 하루는 문을 닫아놓고 팔을 꼬집어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위기는 1997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외환위기 때 찾아왔다. 420억원을 들여 대지 1만8000여 평 규모의 육가공 공장을 증축한 것이 1997년 8월이었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이자가 27%까지 뛰었다. 초현대식 공장을 제대로 가동해 보지도 못한 채 금방이라도 문을 닫을 판이었다. 금방이라도 부도가 날 것 같았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에 투자 유치 신청을 했다. 두 달 가까운 조사를 받은 끝에 IFC는 2000만달러 투자 승인을 확정했다. IFC는 하림의 경영 구조를 높이 평가했다. IFC 투자 유치 국내 1호 기업이 됐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환율도 도왔다. 2000만달러를 투자받을 당시 1400원대로 뛰었던 환율이 원금 상환 기간에는 안정세를 되찾았다.
잘나가던 회사는 2003년 다시 세 번째 위기를 맞았다. 이번에는 화재로 공장이 전소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류인플루엔자까지 전국을 강타했다. 닭고기 소비는 급격히 줄었다. 주위 사람들은 회사가 곧 망할 거라 했다.
김 회장은 당시 여기저기 투자해 벌여 놓은 사업이 많았다. 무리한 투자에 대한 반성도 됐다. 김 회장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돈을 빌리러 찾아간 은행에 "화재가 오히려 더 좋은 기회"라고 역설했다. " `공장을 아예 새로 지어서 품질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겠다, 브랜드 파워를 더 높이겠다`고 했죠. 은행도 고심 끝에 흔쾌히 받아들이더군요. 이를 계기로 오히려 품질과 브랜드 파워를 업그레이드했죠. 위기가 축복이 됐어요."
▶ 지금도 세상에는 엄청난 기회가 열려 있다
김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긍정론자다. 직원들에게 "위기를 견디면 기회가 된다"고 강조한다. "위기를 온전히 극복해 내는 것은 `40년짜리 인생 대학`을 나와 성숙함을 터득하는 것"이라는 지론도 펼친다. 그는 "지금도 세상에는 엄청난 기회가 열려 있다"고 말한다.
"긍정적이 된다는 것은 모든 기회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해 보기도 전에 기회를 포기해요. 어려워 보여도 한번 해보면 길이 보이거든요. `나는 못 한다`는 마음이 기회를 거부하는 것이죠. 앨런패밀리푸즈를 인수한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사람들도 있겠죠. 미국에 더 큰 불황이 닥쳐 돈을 떼이면 다 망한다고 해요. 하지만 매사를 이렇게 접근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저는 항상 기회를 잡으려고 해요."
이야기를 하던 중 김 회장은 갑자기 집무실 책상으로 발걸음을 옮겨 푸른색 표지의 성경책을 한 권 가져왔다. 그리고 믿음에 대한 구절을 펼쳤다. 페이지마다 초록색 형광펜으로 표시해 흔적이 빼곡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김 회장은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모태신앙인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전북 익산에 내려가 동네 교회에서 23년째 주일 예배를 드린다. 월요일에 익산 공장을 둘러보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가장 즐겨 읽는 책으로 주저없이 성경을 꼽는다.
"성경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는 것, 미래에 대한 믿음 이야기가 나와요. 후배들에게도 해 주고 싶은 얘기죠. 지금은 모든 사람이 눈에 보이는 성공만 좇고 있어요. 의사, 변호사, 공무원처럼요. 제가 만약 부모님 말씀대로 공부만 했다면, 지금의 하림은 없었을 거예요. 형제들(4남2녀) 모두 공무원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상상도 못했던 기회가 여기저기에서 쏟아진다는 걸 후배들이 알았으면 해요."
네 살 터울로 네 자녀를 둔 김 회장은 자녀 교육에도 이 같은 원칙을 철저히 세웠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대한 지원해 주되, 조언자로서 부모의 역할에도 충실했다. 늦어도 저녁 10시 전에는 귀가해 가족들과 짧은 대화라도 늘 나눈다. 첫딸은 에모리 비즈니스 스쿨을 나와 현재 IBM에서 근무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누나의 뒤를 이어 올가을 에모리 비즈니스 스쿨에 입학한다.
"초등학교 도덕책에 나온 내용만 잘 실천해도 `A급 경영자`가 됩니다. 경영자의 자질 중 성품만큼 중요한 것은 없어요. 지식이 모자라도 열정, 도전정신, 긍정적 성품이 있다면 성공할 수 있어요."
인터뷰 말미. 그는 다시 한번 꿈을 이야기했다. "동북아는 식량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곳입니다. 3년 안에 미국 서부를 개척할 겁니다. 서부 지역 미국 회사를 인수해 신선육도 전 세계로 수출하고, 농산물 자원도 가져올 겁니다. 네덜란드가 모델이 될 수 있겠죠. 곡물 자급률이 25%로 우리와 비슷한데, 남미에서 오렌지를 싸게 들여와 유럽 전역에 공급(유럽 시장 점유율 60%)하는 나라죠. 농업무역 흑자가 300억달러가 넘습니다. 우리도 글로벌 농업이라는 개념을 속히 적용해야 합니다."
김 회장은 "10년 후에는 하림의 글로벌 매출과 국내 매출 비중이 6대 4로 역전될 것"이라며 "이번에 인수한 앨런패밀리푸즈도 3~4년 후에는 10억달러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정비하는 등 글로벌 농식품 기업이 되기 위해 당장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고 했다. 병아리 10마리로 3조5000억원의 축산그룹을 일군 김 회장,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 He is…
1957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났다. 익산농림고(현 익산대학)를 졸업하기 전에 사업에 뛰어들어 1986년 하림식품을 설립했다. 1998년 호원대를 나와 2000년 전북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에는 원광대 명예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하림그룹 회장으로 하림, 천하제일, 팜스코, 선진, 농수산홈쇼핑 등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1993년 신한국인, 1999년 신지식인에 선정됐으며 2006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대통령인사자문 위원 등을 거쳐 현재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민간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주연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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