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중산층의 붕괴 막자 - 성장의 과실 대기업에 몰려 근로자의 몫은 계속 감소
괜찮은 일자리 크게 늘리고 젊었을 때 최대한 지출 줄여 노후 대비할 수 있게 해야
대기업 건설사에 다니던 김모(58·경북 경주)씨는 1998년 구조조정 여파로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당시 연봉 3000만원의 중산층이던 김씨는 현재 한 달에 150만원 남짓을 받으며 철구조물 제작 회사에 다니고 있다. 부인(55)은 자동차 부품 하도급업체에 다니면서 월 100만원을 받는다.
김씨는 "아내와 둘이 합쳐 버는 돈이 10년 전에 혼자 벌던 연봉과 같다"며 "20년 전만 해도 번듯한 중산층이었는데, 이제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고 말했다. 반면 김씨가 다니던 회사는 1998년 매출 1조원에서 현재 매출 6조원이 넘는 회사로 컸다.
지난 1999년 공무원을 퇴직한 정모(55)씨 가족은 현재 서울 성북동에서 보증금 1000만원, 월세 30만원에 다가구주택에서 살고 있다. 정씨도 퇴직 전엔 월 350만원 정도 받던 중산층이었고 시가 2억원짜리 아파트도 있었다. 정씨는 퇴직 후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렸지만, 2년 만에 5억원을 빚지고 사업을 정리했다. 그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현재 정씨는 유통 회사에 다니면서 월 100만원 남짓을 받는다. 정씨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도 밑천이 없고, 삶의 희망도 없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2.0' 시대는 중산층의 꿈이 무르익던 시절이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이후, 국내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구조조정을 했다. '자본주의 3.0(시장 주도 신자유주의)' 시대에 중산층이 오히려 줄어드는 퇴행 현상을 보이고 있다. '승자 독식'의 자본주의 3.0 시대가 펼쳐지면서 시장 장악력이 큰 수출 대기업이 성장의 과실을 중산층과 중소기업까지 내려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평균 임금 이상을 받는 '괜찮은 일자리'는 1995년 529만개에서 작년 581만개로 늘었지만, 전문대졸 이상의 인력은 474만명에서 965만명으로 급증했다. 결국 중산층으로 가는 고속도로와 마찬가지였던 괜찮은 일자리 공급이 수요보다 부족해지면서 중산층 비중은 1990년대에 100가구 중 75가구꼴에서 최근 100가구 중 66~67가구로 줄었다.
◆경제는 성장해도 과실은 기업으로
작년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8년 만에 최고치(6.2%)를 기록했다. 그러나 일한 만큼 얼마나 잘 소득이 분배됐는지를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6년 만에 최저치(59.2%)로 내려앉았다. 노동소득분배율이 높으면 성장 과실 중에서 근로자가 가져가는 몫이 커진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소득분배율은 2006년 61.3%를 기록한 이후 4년 연속 하락하고 있다.
성장의 과실은 기업 중에서도 수출 대기업에만 머무르고 있다. 작년 대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6.8%로 중소기업(4.9%)보다 1.9%포인트 높았다. 수출 제조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은 7.8%에 달했다.
중산층이 두꺼워질 수 있는 지름길은 '든든한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지난 10년간 월급쟁이들의 희생으로 대기업과 나라가 살찐 셈이다"며 "이 사실을 모두가 공유하면서 '자본주의 4.0'을 통해 동반 성장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합의가 있어야만 중산층 붕괴를 막을 실마리가 마련된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건강한 중산층이 성장해야 소비도 늘고,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해 줄 수 있다는 걸 기업들도 인식하고 일자리 만들기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기업 1~2개만 가지고는 중산층을 육성할 수 없다"며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강소기업) 1000여 개가 중산층을 받쳐주는 독일처럼, 우리도 강소기업을 1000개 정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히든 챔피언은 독일의 저명한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주창한 개념으로, 일반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 1~3위의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는 '작지만 강한' 기업을 말한다. 연 매출 40억달러 이하 규모로, 종업원 수가 평균 2037명이다. 지몬은 전세계에 2000개 정도 히든 챔피언이 있고, 그중 절반이 독일에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도 강소기업 1000개를 키우면 약 200만명의 '괜찮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자본주의 4.0
20세기 초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 시대(자본주의 1.0)를 지나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케인스가 내세운 수정자본주의(자본주의 2.0), 1970년대 자유시장자본주의(신자유주의·자본주의 3.0)에 이어 등장한 새 자본주의를 뜻한다. '다 같이 행복한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4.0 시대엔 기업과 국가의 일방적인 성장을 위해서 중산층만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경제의 중추적인 허리 역할을 하는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질 걱정을 하지 않고 일을 하면서 경제에 소비 여력을 제공하고,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해 주어야만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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