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먼데이] 점심 먹고 오니 1800선…

2011. 8. 9. 08:43이슈 뉴스스크랩

[블랙 먼데이] 점심 먹고 오니 1800선… 개미들 3시간(12~15시)새 6000억 투매

[한국 증시, 공포의 점심시간]
개인 4일간 1조 넘게 매수하다 급락장세 못 참고 팔자로
빚 내서 투자한 투자자들, 반대매매가 주가 폭락 뇌관
최근 하락장세 이끌었던 외국인들은 매도 주춤

8일 오후 정보통신회사에 근무하는 이모(39)씨는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와 주가를 살펴보다 화들짝 놀랐다. 점심 식사를 하러 가기 전만 해도 1900대였던 코스피지수가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오후 1시쯤엔 100포인트 넘게 하락해 1800까지 밀렸기 때문이다. 불안해진 이씨는 지난주 2000만원어치 샀던 주식을 20% 손해 본 채 팔아치웠다.

8일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뒤 처음 열린 한국 증시가 폭락했다. 코스피지수가 전거래일보다 74.3포인트(3.82%) 내려간 1869.45로 마감한 가운데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에서 한 직원이 고개를 숙인 채 통화를 하고 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8일 우리나라 증시는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란 악재가 발생한 후 열리는 아시아 첫 증시여서 '블랙 먼데이' 우려가 현실화될지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렸다. 오전에는 다행스럽게도 코스피지수가 1900선을 지켜내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장 초반 차분했던 주식시장 분위기는 점심시간 이후 180도 돌변했다. 오후 1시 10분 개인들이 무차별적 투매(投賣)에 나서면서 코스닥 지수는 장중 10% 이상 떨어져 역대 다섯 번째로 서킷 브레이커(20분 자동 거래중단)가 발동됐다. 오후 1시 23분엔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200 선물지수가 5% 넘게 빠져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 호가 5분 효력 정지)가 발동됐다. 점심시간을 전후해 증시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점심시간 이후 개인들 집중 투매

이날 주식시장은 오전 11시 26분 1900선이 붕괴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주저앉았다. 2%에 머물던 낙폭은 3%, 4%까지 커졌고 오후 1시 9분에는 1850선이 무너졌다. 이후 20여분 뒤에 코스피는 7.4% 폭락하며 1800을 찍었다.

개인들은 지난 2~5일 시가총액이 128조원 이상 날아간 기간에도 주식을 1조3000억원어치 사들였다. 하지만 8일 개인들이 투매 행렬에 뛰어들면서 팔아치운 주식이 사들인 주식보다 7333억원 많았다. 특히 이날 오후에 집중적으로 주식을 팔아 정오 이후 3시간 동안의 개인 순매도(매도액에서 매수액을 뺀 것) 금액이 6000억원을 넘었다. 점심시간 이후 개인 매도세가 확대된 것과 관련, 증권가에선 오전 11시 이후 흘러나온 각종 괴담이 투자자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고 분석한다. 이날 오전 여의도 증권가에선 '8월 증시 폭락설'이나 '프랑스 신용등급도 강등된다'는 등 투자자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괴담이 메신저를 타고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일과 중에는 주가 체크를 하지 못하다가 점심 식사 도중에 메신저 등을 통해 불안한 소식을 접한 개인 투자자들이 공포감에 휩싸여 주식을 내던졌다"고 말했다.

차갑게 식은 투자 심리

이날 증시 하락은 자문사들이 주도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팀장은 "점심시간 전까지는 1000억원대였던 개인 순매도 금액이 갑자기 점심시간 이후 3시간 만에 6000억원이나 늘었다"며 "이런 대규모 매도는 일반 개인이라기보다는 자문사 자금이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받아 운용되는 자문형 랩(맞춤형 주식관리 계좌)은 10여개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데, 투자자 구분상으로는 개인 자금으로 잡힌다.

점심시간 이후 빚을 내서 투자한 투자자들의 반대매매가 많이 일어난 것도 주가 폭락을 부채질했다. 최창호 신한금융투자 부장은 "개인들이 대출을 받기 위해 담보로 제공했던 주식들이 가치가 떨어지자 금융회사들이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반대매매에 나서면서 주가가 흔들렸다"고 분석했다.

묻지마 투매 확산되나

이날 각 증권사 지점에는 '주식을 팔아야 하느냐'는 전화가 빗발쳐 업무가 마비되다시피 했다. 김종석 우리투자증권 부장은 "한 거액 자산가는 앞으로 더 힘든 상황이 오지 않겠느냐며 주식 15억원어치를 전량 손절매하기도 했다"면서 "지난 2008년 리먼 사태의 학습 효과로 지난주에 저가 매수에 나섰던 투자자가 많았지만 주말에 나온 미국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