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19. 09:33ㆍ건축 정보 자료실
[J 스페셜 - 화요칸중궈(看中國)] 장제스 군대도 못 뚫은 ‘땅 위의 UFO’
유광종의 중국 뒤집어보기
중국인의 집 ② 또 다른 요새 … 푸젠성 원형주택 ‘투러우’
중앙일보 | 유광종 | 입력 2011.10.18 00:49 | 수정 2011.10.18 09:49
4층으로 이뤄진 투러우의 내부. 각 층은 대부분 개방형 통로로 만들어져 있어 유사시에 탄약과 물자를 공급하기 좋다. 1층 중앙에는 조상을 모신 사당이 들어서 있다. [이매진차이나 제공]
중국인 마음속의 바람과 비, 풍우(風雨)는 곧 위기다. 그런 위기는 대개 전란과 재난으로부터 닥친다. 바람과 비가 몰고 오는 위기에서 중국인이 버텨야 할 근간은 '집'이었다. 광둥성 토치카식 주택에서 다시 전란과 재난의 비바람 속을 걸어온 객가(客家) 사람들의 집을 찾았다. 그들의 집 또한 적을 겨누는 총안(銃眼)이 돋보이는 방어형 주택이다.
'중국이 핵 시설을 대량으로 지은 흔적이 발견됐다' '큰 규모의 원형(圓形) 또는 방형(方形) 시설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 비밀 군사 시설임에 틀림없다'-. 인공위성으로 내려다보는 관측 방법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할 무렵인 1950년대 말, 중국을 지켜보던 미국의 군사위성 운영자들은 한때 이런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중국 동남부에 자리를 잡은 '이상한 흔적'들을 인공위성으로 지켜보던 미국인들은 아주 당황했을 것이다.
미확인비행물체(UFO)를 연상시키는 시설들이 곳곳에 들어차 있는 곳은 중국 동남부 푸젠(福建)·광둥(廣東)·장시(江西) 등 3개 성(省)의 접경지역이다. 이곳에는 2만 채를 넘는 이상한 주택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이른바 투러우(土樓)라 불리는 집단 거주 형태의 가옥이다.
전편에서 소개한 광둥의 토치카식 주택이 적의 공격에서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중국인 특유의 근대식 방어형 가옥이라면, 이 투러우는 그보다 연원(淵源)이나 규모 등에서 훨씬 앞선다.
중국 푸젠성 서남부 지역 산골에 집중적으로 지어졌던 투러우들의 모습이다. [이매진차이나 제공]
광둥의 토치카식 주택 중 가장 오래 된 것이 기껏 청(淸)나라 때인 17세기에 지어진 데 비해, 투러우의 연원은 1200년 전인 당(唐)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광둥의 토치카형 주택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1833채인 데 비해, 투러우는 2만3000여 채에 달한다.
1층에서 본 투러우. 1~2층은 대개 부엌과 창고로 쓰였고, 거주 공간은 그 위에 마련했다. [이매진차이나 제공] 대부분의 벽은 흙으로 다져서 만들었다. 가옥을 부르는 명칭에 '흙 토(土)'가 들어 있는 이유다. 보통 2~3년 걸려 짓는데, 볏짚이나 대나무를 넣은 흙을 다지고 또 다져서 만든다. 그래서 아주 견고하다. 보통 벽의 두께가 1.8~2m에 달하고, 아랫부분인 기층(基層)은 화강암이나 냇가의 조약돌 등으로 만들었다.
화살이나 총탄은 이 투러우의 벽을 뚫을 수 없다. 1934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군대가 이곳에 숨어든 반군(叛軍)을 공격할 때 야포(野砲)로 공격을 가했지만 투러우의 외벽에 조그만 구멍을 낸 정도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성벽 아래를 뚫는 일도 거의 어렵다. 흙을 다진 외벽 밑에는 화강암이나 잘게 부순 돌들로 만든 2m 깊이의 기층 하단부가 있기 때문이다. 전체 투러우의 출입구는 단 한 군데다. 견고한 나무 등으로 만든 이 대문도 공격하기가 만만찮다.
대문 자체가 튼튼할 뿐만 아니라, 그 위에는 물을 담는 수조(水槽)가 만들어져 있다. 불을 앞세우는 화공(火攻)이 벌어지면 수조에서 문에 새긴 틈으로 물을 흘려보내 막아낼 수 있도록 했다.
높게는 4층, 낮게는 2~3층으로 만든 투러우의 안쪽은 시설 중앙에서 외부 적들의 동향을 지켜보며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지휘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각 층은 긴 복도로 연결돼 있어 각 층의 방에 탄약이나 화살 등을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구조다. 외벽의 1~2층에는 밖으로 난 창문 등이 없다. 대신 3~4층에 총이나 화살을 쏠 수 있는 총안을 마련했다. 역시 밖은 좁고, 안으로는 넓어지는 형태다. 1~2층의 평소 용도는 부엌이나 창고다. 이곳에는 유사시에 대비해 식량과 탄약 등을 쌓아둔다.
성채와 다름없는 이런 집을 지었던 주체는 객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북방으로부터 푸젠성 장저우((?州) 등 인근 지역으로 옮겨 온 이주민 그룹이다. 물 설고 낯선 지역으로 주거지를 옮겨 온 사람들에게 닥치는 현지인들의 끊임없는 도전(挑戰)에 대응하기 위해 이런 집들이 지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들에게 지킬 것이 많아졌다는 점도 투러우가 명(明)대 이후 집단으로 지어진 이유다. 이들은 뒤늦게 정착한 이주민이다. 따라서 문전옥답(門前沃畓)의 꿈은 사치다. 대부분 산속이나 깊은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척박한 농토를 가꿔 심은 것은 담뱃잎이었다.
명대 들어 발달한 담배 농사는 전국적인 히트 상품이 됐다. 이곳의 담뱃잎 품질이 워낙 뛰어나 청나라 건륭제(乾隆帝)는 푸젠성 객가인들이 만든 제품에 '담배 중의 으뜸'이라는 뜻의 '연괴(煙魁)'라는 칭호를 붙여 줄 정도였다. 그런 중국 최고의 담배를 생산한 덕분에 이들은 부를 축적했고, 그런 재부(財富)를 바탕으로 높고 견고한 투러우를 쌓았다는 설명이다. 크게는 직경이 100m에 이르는 건축도 있다. 큰 규모의 투러우에는 600~800명의 인원이 모여 살면서 공동생활을 영위했다. 당연히 이들은 같은 성(姓)을 지닌 씨족(氏族) 집단이었다. 따라서 투러우는 대부분 내부 중앙 마당에 조상을 모시는 씨족 사당(祠堂)이 만들어져 있는 게 특징이다.
길게는 1000여 년, 짧게는 400~500여 년을 거쳐 온 이들 투러우 주민들의 역사에는 도전과 응전, 공격과 방어, 죽느냐 사느냐의 험난한 싸움과 투쟁의 기억이 담겨 있다. 자신보다 먼저 정착한 현지 주민들과 땅 또는 관개용 물을 두고 벌이는 싸움, 관군(官軍)의 수탈에 대응하기 위한 전쟁, 바다를 넘어 들어오는 왜구(倭寇)나 토착 도적 세력들과의 험악한 전투 등이다.
투러우의 주민들이 깊고 두꺼운 벽 속에 몸을 숨기고 밖을 내다보는 창(窓) 또한 적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총안이다. 낯선 사람, 타자(他者)와의 만남은 그들에게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산을 은밀히 감싸는 밤의 안개처럼 어느덧 투러우 앞에 다가선 낯선 이는 우선 경계의 대상이다. 그들은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을 전제로 한 채 총안 밖의 세상을 내다봐야 했을 것이다.
중국 북부의 중원(中原)에서 수없이 많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새로 도착한 동남부의 산골, 그곳에 높고 견고한 투러우를 짓고 살아야 했던 객가 사람들만이 그랬을까. 광둥의 카이핑이라는 곳에 만든 토치카식 주택의 주민들도 마찬가지 다.
객가 사람들이 쫓겨 온 북부의 중원 지역도 사정은 같았다. 수많은 싸움이 벌어졌고, 그에 못지않은 흉년과 수탈이 뒤를 쫓았을 것이다. 낯선 이가 경계를 넘어와 싸움을 벌이면 그에 대항할 수 없는 사람들은 고향을 내주고 남부여대(男負女戴)의 긴 행렬에 몸을 실어야 했다.
전쟁과 피란(避亂), 그리고 끝 모를 이동(移動), 정착한 곳에서 서로 살아남기 위해 다시 벌이는 처절한 다툼…. 중국 역사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개념들이다. 객가 사람들의 투러우는 그것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단면(斷面)이다. 그러나 하나의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유광종 선임기자 < kjyoojoongang.co.kr >
덩샤오핑·예젠잉·리콴유 객가 출신 설
성실함·교육열 유명한 객가
중국 동남부에 집단적으로 거주했던 사람들을 일컫는다. 독특한 생활양식으로 지금까지 매우 특이한 언어 및 생활 전통 등을 가꿔온 사람들이다. 현재도 푸젠과 광둥, 대만 등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전란을 피해 중원에서 이주한 한족(漢族)의 정통이라는 설과 함께 중원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남방의 이족(異族)과 혼인관계를 맺으며 독특하게 발전한 집단이라는 설이 있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 싱가포르를 이끌었던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 중국 인민해방군 10대 원수의 한 사람인 예젠잉(葉劍英) 등이 모두 객가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후기 정착민으로서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생존을 꾀해야 했던 이들은 부지런함과 높은 교육열 등으로 이름이 나 있다.
▶유광종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ykj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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