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사면초가’

2011. 12. 22. 09:23이슈 뉴스스크랩

<한국경제 ‘사면초가’>문닫는 공장 늘어 중고기계 산더미 “경기? 완전히 죽었어”
불황속 신음하는 영등포 기계상가 르포
문화일보|
민병기기자|
입력 2011.12.19 14:21

 

국내외 악재가 쏟아지면서 한국경제가 돳사면초가돴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유럽발 재정위기 등의 여파로 수출과 내수경기가 동반 급락하는 가운데 기업 투자심리는 꽁꽁 얼어붙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파행으로 경제계가 학수고대하고 있는 각종 경제활력과 민생안정 법안은 표류하면서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위기 속의 한국경제 현장을 집중 분석해본다."저기 비닐에 덮인 기계들이 다 안팔리고 있는 것들이여. 요즘엔 찾는 사람도 없는데 공장이 문을 닫았다며 매물이 계속 나와. 그래도 더 둘 곳이 없어 우리가 사지를 못하고 있어."

눈으로 확인한 실물 경기는 동장군만큼이나 매서울 정도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영등포기계상가. 공장 휴·폐업으로 매물로 전락했지만 새 주인을 찾지 못한 기계들이 가득했다. 주말이라 상당수 입점업체들이 쉬는 가운데 출근한 몇몇 직원들만 담배를 피우며 언 손을 녹이고 있었다.

↑ 갈 곳 잃은 중고기계 : 18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영등포기계상가에 공장 휴·폐업 등으로 쏟아져나온 중고 기계들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비닐에 쌓여 있다. 정하종기자 maloo@munhwa.com

김모(55)씨는 "최근 새로 중고 기계를 사가는 사람을 거의 찾기 힘들다"며 "휴·폐업한 공장에서 기계는 계속 들어오는데 다시 되팔지를 못하니 우리도 죽을 맛"이라고 토로했다.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공장에서 기계가 나온 후 다시 이 기계를 구입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인근에서 장사를 하는 최모(여·47)씨는 "최근 영등포 기계상가는 완전히 죽은 모습"이라며 "찾는 사람이 없으니 주변 상권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정말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경기 포천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던 이모(56)씨는 "내수 경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는데 돈은 구하기 힘들고 공장을 굴릴수록 손해만 보고 있어 그만두고 싶은 생각에 기계값이나 좀 받을까 해서 나와봤다"며 "매출이 상반기(1∼6월)에 비해 반토막 나 더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면서 고개를 떨궜다.

급랭한 실물 경기는 지표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의 '10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9.5%로 지난달에 비해 1.8%포인트 하락하며 지난해 1월(79.3%) 이후 2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제조업 가동률 지수도 전월 대비 2.3% 줄었다. 판매가 줄면서 재고율은 109.5%로 전월과 견줘 5.4%포인트 높아졌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400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표한 12월 중소기업 경기전망지수는 전월(92.4) 대비 4.9포인트 하락한 87.5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8월(85.6) 이후 2년 4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보였다. 이 수치가 100 이상이면 다음달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전망한 업체가 더 많다는 뜻이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기업 규모, 기업 유형, 업종을 불문하고 전체적으로 모든 수치가 하락했다. 생산·내수·수출도 모두 하락했으나 기업에 부담이 되는 생산 설비와 제품 재고 수준은 기준치(100)를 넘었다. 중소제조업체에는 이중고(二重苦)인 셈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발표한 9월 국가산업단지 산업 동향의 경우 산업 단지 가동률이 전년 동월 대비 0.4%포인트 상승한 84.8%를 기록했지만 가동률이 매우 높은 편인 석유화학이 주력인 여수·온산·울산 단지를 빼면 82.6%로 뚝 떨어진다.

민병기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