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진 지갑 걱정했지만 자선냄비 온정 펄펄 끓었다

2011. 12. 23. 09:07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가벼워진 지갑 걱정했지만 자선냄비 온정 펄펄 끓었다
매일경제|
입력 2011.12.22 17:17
|수정 2011.12.23 07:51

 

조진형 기자, 칼바람 명동거리에서 9시간 꼬박 구세군 체험

2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1가 명동예술극장 앞. 칼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드는 날씨지만 초ㆍ중ㆍ고등학교 학생부터 머리가 희끗한 노인까지 빨간색 자선냄비 앞에서 너도나도 지갑을 열었다.

이설아 양(세화여중 2)은 "같은 반 친구들과 다섯이서 1000원씩 기부해 5000원이면 불우 이웃 한 분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드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기부 온정(溫情)이 되살아났다. 지난해 '사랑의 열매'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성금 유용 비리가 터지면서 거리 인심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올해 모금 열기는 추운 겨울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 맹추위가 기승을 부린 22일 서울 명동에서 본지 조진형 기자(오른쪽)가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름 약 30㎝, 높이 25㎝ 크기의 냄비는 펄펄 끓었다.

이날 냄비는 1000원짜리 한 장, 100원짜리 동전으로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찼다. 1만원짜리 돈 뭉치와 흰색 종이봉투도 눈에 띄었다.

오후 6시께 퇴근하는 직장인 등 명동을 찾는 시민들이 늘어나며 냄비에 지폐가 빠르게 쌓여갔다.

직장인 김 모씨(45)는 "작년보다 살림살이가 어려운 이웃이 많아진 것 같아 '콩 한 쪽이라도 나눠 먹는다'는 심정으로 기부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모금활동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도 신이 났다. 자원봉사자 숫자는 올해 4만5000명으로 작년(4만명)보다 늘어났다.

손대기 씨(명지전문대 행정학 1)는 "작년에 '뭘 믿고 기부하겠느냐'며 항의하는 사람이 많아 올해는 괜찮을지 걱정을 했지만 기우였다"며 "기부하는 시민들 표정이 밝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힘든 줄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오후 9시. 평일인데도 손길에서 나온 온정이 냄비의 70%를 채웠다.

구세군 관계자는 "작년 이맘때엔 절반을 못 넘겼다"며 "1000원 지폐 기준으로 냄비가 꽉 차면 100만원 정도 모이는데 최소 70만~80만원은 모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구세군에 따르면 이날 현재 전체 모금액은 36억16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0% 늘었다. 작년엔 42억원을 목표로 모금활동을 펼쳤지만 33억5600만여 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외환위기에도 끄떡 없었던 자선냄비가 현금 모금액 기준으로 82년 만에 처음으로 목표액 달성에 실패했다. 올해 목표액은 45억원.

구세군 관계자는 "거리 모금이 늘어나 올해 목표액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경제 상황이 작년보다 더 나빠지면서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더 많아졌고, 올해 화두가 공정사회, 나눔 등이다 보니 '나도 어렵지만 남을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커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조진형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