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양에…각국은 지금 `무제한 돈 살포` 도박 중

2012. 2. 20. 09:02지구촌 소식

경기 부양에…각국은 지금 `무제한 돈 살포` 도박 중

매일경제 | 입력 2012.02.19 18:37 | 수정 2012.02.19 21:17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무차별적으로 돈을 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돈이 넘쳐나고 있다. 유동성 확대로 은행 대출 역량이 강화되고 풀린 돈이 실물경제로 원활하게 흘러 들어가면 경기 회복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풀려난 과잉유동성은 투기적인 머니게임을 조장하면서 자산 거품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투기 자금화된 과잉유동성이 급격하게 유ㆍ출입하면서 통화가치를 더 심하게 왜곡시킬 것이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두 달간 최대 2500조원 풀린다 현재 글로벌 유동성 확대를 주도하고 있는 곳은 유럽중앙은행(ECB)이다. ECB는 지난해 말 유로존 523개 은행에 4890억유로(약 737조원)를 한꺼번에 빌려줬다. 금리가 단 1%에 불과한 사상 최대 유동성 지원이었다. 그런데 이 기록이 또 깨질 것으로 보인다.

29일 ECB는 또 한번 무제한적으로 돈을 뿌린다. ECB가 최대 1조유로(1477조원)의 유동성 도박을 벌일 것이라는 진단이다. 중국 인민은행지급준비율을 24일부터 0.5%포인트 인하한다고 18일 밝혔다. 4000억위안(72조원)의 유동성 증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영란은행(BOE)은 지난주 500억파운드(88조원)를 시장에 더 풀기로 했고 일본 중앙은행도 14일 10조엔(약 150조원)의 추가 양적완화를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제로금리를 2014년까지 1년 더 연장하는 등 통화팽창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경기가 둔화되면 언제든지 QE3(양적완화) 카드를 사용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 공조로 이달 말까지 두 달여간 최대 2524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유동성이 추가적으로 풀리게 된다. 2010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ㆍ1172조원)의 2배를 넘는 돈이다.

◆ 돈의 힘…머니게임 진행 중유동성이 풀리면서 돈의 힘으로 주가가 오르는 유동성 장세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가 등 원자재 가격도 꿈틀거리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주 말 전일보다 93센트(0.9%) 오른 배럴당 103.2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9개월 만의 최고치다. 이란 등 지정학적 요인도 있지만 유동성 과잉에 따른 영향이 크다는 진단이다. 유동성에 편승한 투기 수요로 유가가 추가 상승할 경우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돈의 힘으로 전 세계 주가도 급등하고 있다. ECB, 일본은행(BOJ), BOE, FRB 등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통화 유동성 확장 정책 공조로 지난해 말 대비 MSCI 전 세계 지수가 9% 가까이 급등했다. 유동성 장세가 실적 장세로 연결되면 장기적인 주가 상승 사이클로 접어들 수 있다. 그러나 시장 펀더멘털이 받쳐주지 않는 급격한 주가 상승은 유동성 공급이 끊기면 언제든지 곤두박질칠 수 있다. 한국 등 신흥시장은 더 크게 출렁거릴 수 있다. 수천조 원대의 유동자금 중 상당액이 단기 고수익을 좇아 한국 등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16일 현재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9조1329억원, 채권을 5조4117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연초 두 달여간 외국인 순매입 규모로는 사상 최대다. 코스피는 올해 들어 10.83% 급등했다. 지난해 주가 급락으로 큰 손해를 봤던 투자자 입장에서 주가 상승은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러나 올해 유입된 대다수 해외자금이 캐리트레이드 자금이라는 점이 부담이다.

◆ 과잉유동성 폭탄 될라 단기적이고 투기적인 캐리트레이드 성격의 자금이 뭉치로 움직이면 자본 유ㆍ출입 변동성을 키울 수밖에 없다. 또 자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가 빠져나가는 상황이 반복되면 자산ㆍ통화 시장가치와 펀더멘털 간 괴리 폭이 커진다. 이때 거품이 끼고 붕괴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금융시장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

민성기 한국은행 금융시장국장은 "달러ㆍ유로화 약세, 선진국 저금리 상황에서 국내로 유입된 캐리트레이성 투기자금은 상황이 역전되면 언제든지 돌변해 손을 털고 나갈 수 있는 돈"이라며 "서든 리버설(sudden reversalㆍ갑작스런 역전)을 경계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남우 토러스투자증권 영업총괄대표도 "최근 헤지펀드들까지 머니게임에 편승하면서 그동안 전혀 거래가 안 됐던 건설ㆍ캐피털 채권까지 없어서 못 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펀더멘털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잉유동성으로 자산 가격이 고평가되면 항상 후유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유동성 확대가 착시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돈의 힘으로 실물경제를 6개월 선행한다는 주가가 상승하면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유동성 확대로 주가가 상승하고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으면 경기가 회복되는 것으로 착각해 후유증이 심각해진다"며 "유동성 확대책이 글로벌 경기 회복을 가져오는 펀더멘털한 대책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봉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