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보다 주먹 먼저… 토론이 불가능한 사회

2012. 2. 25. 08:56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주장보다 주먹 먼저… 토론이 불가능한 사회

공청회 22건, 이익집단 점거·불참으로 파행… 韓·中 FTA 공청회도 난장판 조선일보 | 최형석 기자 | 입력 2012.02.25 03:20 | 수정 2012.02.25 05:32

 

각계각층의 다양한 정책 의견을 듣는 절차인 공청회가 이해 집단들의 횡포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층인 농민, 근로자뿐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 지식인 계층도 자기 이익에 반하는 정책과 관련된 공청회라면 여지없이 몰려와 폭력으로 공청회를 결딴내는 일이 다반사다.

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공청회는 농민들의 방해로 반쪽짜리 공청회가 돼버렸다. 농민들의 단상 점거로 파행을 겪다 오후에 속개됐지만, 마지막 토론 시간엔 사전에 질문을 신청했던 방청객 20여명 중 농업인 두 명만 질문을 했다. 나머지는 이미 돌아갔거나, 살벌한 분위기에 입도 벙긋 못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김모씨는 "공청회라고 해서 왔더니 관심사는 하나도 들을 수 없었고, 욕설과 몸싸움만 난무했다. 이게 무슨 공청회냐"며 혀를 찼다.

본지가 2006년 이후 주요 정책 추진과 관련한 공청회 22건을 분석한 결과, 18건이 이익집단의 시위와 조직적 방해로 파행을 겪었다. 나머지 4건은 반대 진영의 불참으로 반쪽짜리 공청회로 진행됐다. 작년 11월 열린 공공 공사 최저가 낙찰제 확대 정책 관련 공청회는 지방 각지에서 몰려든 중소 건설업체 임직원 1300여명의 방해로 무산됐고, 정책 시행은 2014년까지 유예됐다. 작년 10월 세 차례 열린 서울대 법인화 공청회에선 교직원, 대학생들이 단상을 점거해 세 차례 파행을 겪었다. 작년 7월 약국 밖에서 의약품을 판매하는 제도 도입과 관련한 공청회에선 약사회 측 토론자가 퇴장해버려 공청회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윤인진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공청회 파행을 막으려면 공익에 대한 의식 재정립, 갈등을 조절할 수 있는 중립적 시민단체 육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