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양가 어머니와 신부)'의 대화가 허례허식 없앤다

2012. 3. 27. 08:27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세 여자(양가 어머니와 신부)'의 대화가 허례허식 없앤다

신부 아버지가 거제市長, 연고 없는 진주서 결혼식 합의
어머니들 "예물·예단 없애자" 세세한 부분까지 의견 교환해… 결혼비용도 신랑신부 돈으로
조선일보 | 김효정 기자 | 입력 2012.03.27 03:22

 

주부 박세정(54)씨는 거제도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고향에 산다. 하지만 지난 2월 맏딸 권혜림(30·교사)씨 를 결혼시킬 때, 아무 연고 없는 진주에 식장을 잡았다. 사돈도 거제도에 사는데 왜 객지에 갔을까? 박씨는 "거제도에서 하면 아무리 조용히 치러도 다 알려지니까 아무도 내 남편이 누군지 모르는데 가서 딱 50여명만 모시고 식을 올렸다"고 했다.

박씨의 남편은 권민호 (58) 거제시장이다. 어부 아들로 어렵게 공부해 교사로 일하다 시장(市長)이 됐다. 사위(31)는 목수 아버지·전업주부 어머니 밑에서 자란 회사원이다.

예식 비용부터 신혼여행까지 총 1000만원 들었고, 예비부부가 직접 해결했다. 박씨는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부모에 기대지 말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라고, 엄마·아빠도 그렇게 살았다고 가르쳤다"고 했다. 딸이 남자친구 고를 때 돈이나 직업보다 사람을 보는 걸 보고 '부모 뜻을 따르겠구나' 믿음을 얻었다.

박씨는 "신랑 어머니·신부·신부 어머니 등 두집안의 세 여자가 달라져야 결혼식이 달라진다"고 했다. 처음엔 서로를 모르니 단숨에 합의하기는 힘들다. 박씨는 예비사위가 처음 인사하러 오던 날부터, 일주일에도 몇 차례씩 예비 안사돈과 통화하며 세세한 부분까지 의견을 묻고 답했다. 박씨가 먼저 "간소하게 하면 좋겠다"고 하자, 안사돈이 "그럼 예단은 생략하자"고 화답했다. 박씨가 "아예 생략하는 건 죄송스럽다"고 하자 안사돈이 "그럼 그 돈을 쓸데없이 낭비하지 말고, 아이들 집 사는 데 보태자"고 했다. 신부 의견도 계속 물었다. 박씨는 "하나를 결정해도 꼭 세 명이 얘기했다"고 했다. 그 결과 ①청첩장 안 돌리고 ②예물·예단 생략하고 ③화환·축의금도 사양하는 '빅딜'에 도달했다.

"가끔 주위에서 '신랑 어머니가 샤넬·루이비통 같은 명품 백을 바란다' '신부 어머니가 사위에게 집 해오라고 닦달한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신랑 어머니가 '무조건 흙침대 해오라'고 한 경우도 들었습니다. 며느리가 가서 보니 시골집이라 문이 좁더래요. '흙침대가 못 들어갈 것 같다'고 했더니 신랑 어머니가 문을 뜯어고치더랍니다. 제 귀엔 참 이상하게 들립니다. 흙침대에서 안 자면 어떻습니까? 거제도에서 언제 입으려고 모피 찾고, 어디 가려고 루이비통 백 찾습니까?"

딸 혜림씨는 "내가 뭘 특별히 잘했다는 생각이 없다"고 했다. "대학 갈 때 자기가 수능 보잖아요. 결혼식도 마찬가지죠. 제 친구가 결혼식 와서 '야, 시장 딸이 와 이래 조그맣게 하노?' 하길래 '머 어때서? 내는 내 힘으로 간다' 했어요. 시어머니 뜻도 똑같으니까, 저는 시집 잘 간 거지요."

박씨는 아들(25) 장가보낼 때도 예단 받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너도 누나처럼 네 힘으로 가라"고 진작 말했다. 박씨는 "사위에게나, 앞으로 볼 며느리에게나 평생을 함께 가며 진득하게 보여줄 정(情)을 바라지, 그깟 물건 바라지 않는다"면서 "명품 백 없어도 평생 어디 갈 때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 박씨와 안사돈이 요즘 메고 다니는 가방은 각각 5만원짜리 거제도 특산품 누빔 천가방으로, 혜림씨가 선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