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킹 푸어'와 유럽의 복지모델
수십만명의 유럽인들이 집을 구할 돈이 없어 캠프장이나 자동차에서 생활한다. 프랑스에서만 약 12만명이 캠프장에서 지낸다. 친척 집에 얹혀 사는 사람도 수백만명이다. 경기침체 여파로 실업자가 급증하고, 새로 생긴 일자리도 대부분 비정규직뿐인 유럽의 현재 모습이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유로존)의 2월 실업률은 10.8%로 유로화 도입 이후 사상 최고치다. 스페인이 23.6%로 가장 높은 것을 비롯 그리스(21%), 포르투갈(15%), 아일랜드(14.7%), 프랑스(10%), 이탈리아(9.3%) 등도 높은 실업률을 나타냈다. 16~24세의 청년 실업률은 스페인과 그리스가 50%에 육박하고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등도 30%에 달한다. 총 실업자 수는 1713만명으로 한 달 만에 148만명이 늘었다.
직장이 있는 사람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가 집을 가졌지만 과도한 대출에 따른 빚부담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이라면 ‘워킹 푸어(working poor)’는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을 뜻한다. 워킹 푸어 급증 현상은 그리스 스페인 등 재정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국가들에서 프랑스 독일 등지로 확산되는 추세다. EU 통계청에 따르면 유로존 근로자들 가운데 연간 생계비가 빈곤선인 1만240유로(1500만원)에 못 미치는 비중이 2006년에는 7.3%였으나 2010년에는 8.2%로 높아졌다. 스페인과 그리스에서는 비중이 두 배로 높다.
왜 일을 해도 가난한 것일까? 일한 만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EU에서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의 절반이 비정규직이었다. 경제위기로 소비와 투자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리 없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가 너무 오랫동안 ‘국가는 자애롭고 시장은 냉혹하다’며 시장에 간섭하고 지출을 늘려온 데 있다. 그리스나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나라경제의 성장잠재력과 경쟁력을 키우는 데 힘쓰기보다는 복지지출에 많은 세금을 퍼부었다. 기업을 키우기보다는 공무원과 공공부문을 확대해 정부가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월급을 주어왔다. 연금과 무상 의료혜택, 주택보조금 등 유럽형 복지모델은 나라를 부도 직전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정부가 해마다 세수 이상으로 쓰고, 경상수지 적자도 눈덩이처럼 쌓인 결과 국민들이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오는 22일 대선 1차 투표가 예정된 프랑스에선 요즘 후보간 설전이 치열하다. 재선을 노리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일자리를 위협하는 이민자 단속에 나서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정부 돈으로 교사 일자리 6만개를 만들고 부자들에겐 최고 75%의 소득세를 물리겠다고 공언한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주간 경제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최신호(3월31일자)에서 “프랑스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공공지출 비율이 56%로 유로존 최고 수준”이라며 “정치인들이 ‘불편한 진실’을 감추려는 건 흔한 일이지만 개혁을 단행하지 않는다면 프랑스가 다음 유로존 위기의 중심에 서게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정치 위기가 경제 위기를 더 오래 지속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퍼주기식 복지가 춤을 추는 한국으로서도 남 얘기가 아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속담처럼 실업과 워킹 푸어 문제를 풀려면 무엇보다 민간 기업을 키워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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