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정몽구 `새벽출근`엔 `극한의 긴장` 메시지 담겼다

2012. 4. 23. 08:39C.E.O 경영 자료

입력: 2012-04-22 18:12 / 수정: 2012-04-23 03:56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C로그로 보내기

[財界인사이드] 총수들의 출ㆍ퇴근 스타일

'모범생' 구본무·허창수 회장, 정시 출·퇴근…책임·원칙 중시
'달밤파' 김승연·이웅열 회장, 퇴근길 운동·늦게까지 업무도
'아점반' 최태원 회장, '보고를 위한 보고' 낭비 차단
'얼리어답터' 박용만 회장, IT기기 들고…형식보단 실질

지난 19일 오전 6시15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서울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 모습을 보였다. 작년 4월 정례 출근을 시작한 뒤 가장 이른 시간이었다. 이달 초에 비해 20분 이상, 작년 하반기보다 1시간 가까이 빨라졌다. 삼성 내부에선 경영진에게 긴장을 불어넣으려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왔다. ‘새벽 출근’으로 삼성을 비롯 대기업을 둘러싼 국내외 경영 환경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내비치고 있다는 얘기다.

그룹 총수들의 출퇴근 시간대는 사실 정해진 게 없다. 중요 현안은 언제 어디서든 늘 보고받기 때문에 총수들은 ‘24시간 근무 체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더라도 총수가 사무실에 나오면 경영진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총수의 출퇴근 스타일에 경영 키워드가 담겨 있다는 말이 재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새벽반에 자유반도…

‘조출족’의 대표 주자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다. 정 회장은 2000년 현대·기아차그룹 출범 이후 13년째 매일 아침 6시30분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부친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주요 경영진은 6시30분 이전에 서울 양재동 본사로 나온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회장이 출근하자마자 임원들을 부르는 일도 있어 항상 먼저 나와 준비해야 한다”며 “회장과 경영진의 몸에 밴 극한의 긴장이 지금의 현대·기아차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새벽반’에 속한다. 정 회장은 매일 출근 전 회사 인근에서 1시간 운동을 하고 오전 8시 이전 대치동 포스코타워로 나온다. 조 회장은 오전 7시30분 출근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조출족’에 이름을 올렸어도 이건희 삼성 회장은 원래 ‘자유반’이었다. 작년 4월 이전까지만 해도 사무실에 거의 나오지 않고 삼성 영빈관인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 머물며 업무를 봤다. 작년 4월 매주 두 차례 정도 서초 사옥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출근 시간은 오전 8시30분이었다. 8시 전후에 출근하는 임직원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였다는 게 삼성 관계자의 설명이다.

작년 6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전이 본격 시작되고 계절적으로 해가 짧아져 출근을 당길 때는 8시대를 피해 7시30분 전후에 도착했다. 매주 화·목요일에 출근하다 작년 6월 이후엔 종종 월요일과 금요일에 서초 사옥에 나온다. 출근길에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태로 각종 현안에 대한 의견을 서슴지 않고 밝히는 일도 종종 볼 수 있다. 서초 사옥에 있는 사내식당에서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임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현안을 점검한 뒤 오후 2시 전후에 퇴근한다. 삼성 관계자는 “출근 시간을 조절하면서 경영진은 긴장하도록 하고 직원들은 배려해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전반과 달밤파도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오전 8시면 집무실에 도착한다. 두 회장 모두 해외 출장을 제외하고는 늘 이 시간에 출근하는 ‘모범생’ 스타일이다. 예외적인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오후 6시 정시에 퇴근한다. 원칙을 중시하는 ‘범 LG가’의 전통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허 회장은 출근 전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1시간 동안 운동하는 자기와의 약속을 항상 지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오전 8시와 9시 사이 여의도 63빌딩이나 장교동 한화 본사로 나오는 오전반이다. 퇴근길엔 서울 소공동 더프라자호텔 인근에서 2시간씩 운동하는 ‘달밤파’다.

한화 관계자는 “직원 출근 시간이 몰리는 오전 9시 이전에 사무실로 나오는데 여의도와 장교동 중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어 늘 긴장된다”고 했다.

이웅열 코오롱 회장은 오전 8시30분 전후로 일정하게 출근하지만 퇴근 시간은 ‘고무줄’이다. 저녁 약속이 있으면 오후 6시 이전에 회사를 나서고 사안이 생기면 새벽까지 사무실을 지키는 ‘올빼미족’으로 변신한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거의 매일 출근하지만 시간은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점반’과 얼리어답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주로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서울 서린동 SK본사로 나오는 ‘아점반’이다. 점심 때쯤 사무실에 나오던 부친 고 최종현 전 SK 회장의 출근 스타일을 물려받았다. SK 관계자는 “경영진이 회장에게 ‘보고를 위한 보고’를 위해 직원들의 아침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하려는 생각”이라며 “퇴근은 오후 8~9시를 넘길 때가 많고 저녁 약속도 그 이후에 주로 잡는다”고 말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소문난 ‘얼리어답터’답게 출근길도 모바일 기기와 함께 한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태블릿PC도 삼성 갤럭시탭, 애플 아이패드를 모두 갖고 다닌다. 요즘엔 뉴 아이패드를 들고 출근한다. 결재서류 대신 이메일로 승인하는 일이 적지 않다. 형식보다 실질을 중시하는 성격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룹 회장에 오른 뒤에도 방을 바꾸지 않고 명패도 만들지 않았다. 수행 비서는 당연히 두지 않았다.

정인설/서욱진/윤정현/최진석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