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이라고 이자 더 받고, 5일 연체해도 신용등급 깎고

2012. 7. 24. 08:48이슈 뉴스스크랩

고졸이라고 이자 더 받고, 5일 연체해도 신용등급 깎고

[금융권 무분별 영업 실태] 학력 차별 대출 - 고졸 13점, 석·박사 54점 신용평가 점수 다르게 매겨 "가방끈 짧다" 1만건 대출 거절 5일 연체해도 금리 올려 - 한달내 갚아도 年3.2%p 인상 카드사는 죽은사람에 카드 발급 - 2000년 이후 1932명에게 조선비즈 | 손진석 기자 | 입력 2012.07.24 03:17 | 수정 2012.07.24 05:56

 

지난 한 해 동안 국내 은행들은 39조3000억원의 이자 이익을 올렸다. 다른 사업의 이익을 모두 합쳐도 8조3000억원에 그칠 정도로 은행들은 이자 장사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냈다.

이렇게 은행들이 많은 이익을 낸 이유의 하나가 대출금리에 바가지를 씌웠기 때문인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본점에서 소액 대출이라고 금리를 더 붙이고, 만기 연장한다고 이자를 더 올리는 식으로 가산금리를 덧붙여 최근 3년간 20조4000억원의 이자를 더 받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은 16조6000억원, 가계는 3조8000억원을 더 부담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시중 은행들은 금융 위기 이전(2003년 1월~2008년 9월)에는 가계대출에 대해 평균 1.73%의 가산금리를 부과했는데, 금융위기 이후(2008년 10월~2011년 12월)에는 2.57%로 가산금리를 높였다. 이밖에 은행 지점장들이 재량으로 더하는 전결금리로 3년간 1조550억원을 더 걷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하지만 이를 감독해야 할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은행들은 감사원의 지적에 대해 "금융 위기 이후 부도 위험이 높아진 것과 같은 각종 위험비용을 계산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과대 계산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시중 은행 고위 관계자는 "가산금리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리스크 프리미엄과 유동성 프리미엄"이라며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부도 위험이 높아지고 장·단기 금리 차에 따른 비용이 반영돼 가산금리가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고졸 이하는 대출 금리 더 내야

감사원은 은행이 금리를 정하는 관행 중 시대에 뒤떨어진 것들을 지적, 시정을 요구했다. 감사원에 적발된 A은행은 학력에 가장 많은 배점(54점)을 두는 자체적인 신용 평가 모형을 갖고 있다. 석·박사 학위자는 54점 만점이었고, 고졸 이하는 13점만 받을 수 있다. 학력이 낮으면 소득 수준이나 자산 규모와 무관하게 대출이 거절되거나 높은 이자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은행은 최근 4년 동안 신용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모두 4만4368건의 신용대출 신청을 거부했는데, 그중 학력 요인으로 거절된 경우가 32%인 1만4138건에 대출 신청액이 1241억원에 달했다.

또 최근 4년간 이 은행의 전체 신용대출 15만1648건 중 절반에 가까운 7만3796건이 '가방끈'이 짧다는 이유로 이자를 더 부담한 경우였으며, 대출받은 사람들은 학력 요인으로만 모두 17억원의 이자를 더 냈다. 감사원은 은행의 대출 평가 기준 중 직업이나 급여 항목에 학력이 간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는데도 다시 학력만을 떼내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소액을 5일만 연체해도 금리 올려

감사원은 개인이 소액 대출금을 5일만 연체하더라도 신용등급을 떨어뜨리는 개인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 기준에도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미한 연체를 이유로 고객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은행들이 이를 빌미 삼아 대출금리를 올린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2010년 한 해 동안 5일 이상 연체된 신용 거래 1149만건을 분류해보니 90일 이상 연체된 경우는 9%에 불과했다. 76%는 한 달 안에 갚았다.

그런데 한 달 안에 연체금을 갚은 고객에 대해서도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평균 1.3등급 떨어뜨리는 바람에 최고 연 3.2%까지 대출금리가 올랐다고 감사원은 분석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실수로 소액을 연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은행들이 악용하지만 금융 감독 당국이 방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죽은 사람에게도 신용카드 발급한 카드사들

카드회사들은 이미 숨진 사람 명의로도 신용카드를 발급해 주는 등 카드를 남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2000년부터 2011년 6월까지 사망자 1932명에게 신용카드를 신규·갱신 발급했고,2008년 이후 사망자 1391명에게 119억원의 신용카드 대출을 해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사망한 지 6개월이 지난 사람에게도 카드가 발급된 사실이 드러났다.

카드업계에서는 "신용카드 발급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신청자가 숨진 경우 등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하지만, 신용카드 남발로 겪었던 2003년 카드대란의 교훈을 잊은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카드회사들이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게을리하고 무분별하게 발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