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청소년 20만명… 가출팸(함께 모여 지내는 가출 청소년 집단), 범죄 온상으로

2012. 7. 25. 08:24이슈 뉴스스크랩

가출 청소년 20만명… 가출팸(함께 모여 지내는 가출 청소년 집단), 범죄 온상으로

가출한 423명 인터뷰 해보니 "돈 훔치고 빼앗았다" 36%… "성폭행하거나 폭력" 18% 조선일보 | 유마디 기자 | 입력 2012.07.25 03:37

 

지난 23일 오후 11시 30분, 서울 신림역의 한 패스트푸드점으로 배낭을 멘 여자 청소년 4명이 들어왔다. 가출 93일째인 윤성희(가명·17)양, 그리고 윤양과 함께 지내는 '가출팸(가출 패밀리란 뜻으로, 가출 청소년들이 모여 지내며 숙식을 해결하는 집단)'이다. 윤양 등은 이달 초 관악구 대학동 4평짜리 고시촌에서 만나 함께 지내고 있다. 이날은 덥고 좁은 고시원을 피해 24시간 운영하는 이곳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다고 했다. 패스트푸드점에는 이들 말고도 10대 청소년 여럿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 [조선일보]23일 오후 11시 30분쯤 인천 부평역 근처에서 가출 청소년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들은 밤이 되면 역사(驛舍)·공원·패스트푸드점 등을 찾거나 서너명이 모여 ‘가출팸(가출 패밀리)’을 만든 뒤 고시원이나 원룸 등에서 함께 잔다. /김정환 인턴기자, 양지혜 기자

"여기가 아지트예요. 24시간 영업하고, 에어컨도 쐬고요"라고 윤양은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평균 95점을 웃돌았던 성적이 80점대로 내려가자 어머니의 꾸지람이 무서워 뛰쳐나온 게 첫 경험이라고 했다. 윤양처럼 '가출팸'인 강은선(16·가명)양은 집과 팸이 사는 원룸에서 번갈아가며 지낸다. 친구인 윤양이 나와 지내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다고 했다.

같은 시각 인천 부평역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몰려다니는 10대들로 밤거리가 북적였고, 부평역 인근 이른바 '담골(담배 골목)'엔 줄담배를 피우는 10대들로 연기가 자욱했다. 짙은 화장을 한 여학생들이 큰 가방을 메고 나오자, 문신을 한 남학생이 다가와 말을 걸더니 골목 뒤로 사라졌다. 관할인 중앙치안센터 관계자는 "저 친구들 다 인터넷에서 만난 가출팸이다"라며 "10대 사이에서 '담골'이 가출팸들의 접선지로 알려진 이후로 수년간 단속해 왔지만 관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본지가 지난 20일부터 3일 동안 '가출팸'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가출 청소년이 밀집한 서울 동대문, 신림, 인천 부평, 부천 등을 취재한 결과 곳곳에서 가출팸 모습이 확인됐다. 경찰 통계만으로도 가출 청소년이 20만명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가출팸'이 가출 청소년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가출팸'은 가출 청소년이 '보호받을 곳이 없다'고 느끼면서 오는 무서움과 외로움 등의 감정들을 이기기 위해 또래 집단을 찾게 되면서 형성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머무를 곳이 생긴 10대들이 방값과 생활비를 마련해야 해 가출이 성매매·절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경기도 고양에선 가출 여학생 A양(18)이 같이 지내던 '가출팸' 9명에게 집단으로 폭행당한 뒤 암매장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0일 부산에서는 가출한 청소년을 팸으로 유인해 15차례에 걸쳐 성매매를 하도록 강요한 혐의로 황모(18)군 등 3명이 구속됐다. 울산 남부경찰서에선 지난 12일 밤 식당 등에서 금품을 훔친 가출 청소년 B(15)군 등 3명을 상습 절도 혐의로 입건했다.

시민단체인 세계빈곤퇴치회는 '가출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5월부터 두 달 동안 서울·인천·대전·부산 일대에서 가출 청소년 423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하고 보고서를 만들었다.

본지가 입수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출팸'을 구성한 뒤 돈을 훔치거나 빼앗아 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가출 청소년은 155명으로 전체의 36.6%에 달했다. 이성을 성폭행하거나 폭력을 행사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18.6%로 전체의 5분의 1에 달했다. 성매매나 원조교제를 강요당하거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다른 '팸'들이 보내주지 않는다고 말한 응답자는 18명으로 전체의 13.8%에 달했다. 생활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절도 등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30.8%였다.

오갈 데 없는 가출 청소년들을 10년째 돌보고 있는 송정근(51)씨는 "가출 청소년들이 가정을 나와 '가출팸'을 찾는 것은 가족처럼 따뜻한 곳을 원한다는 뜻"이라면서 "하지만 그 속에서도 배신·폭력·무질서를 겪으며 또 한 번 상처받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