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들의 손으로 피부에 와닿는 정책 만든다

2012. 8. 24. 08:54C.E.O 경영 자료

등록 : 2012.08.23 18:47 수정 : 2012.08.23 18:50

 

2012 싱크카페컨퍼런스에 참여한 시민들이 발표를 들으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더체인지 제공

우리 사회에는 목소리가 사라진 사람들이 참 많다. 비정규직 600만명, 자영업자 700만명의 한숨 소리는 들리는데 이들의 정치적 목소리는 작기만 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겨레가 마음 둘 곳 없는 일반 시민을 정책 제안자로 초대한다. 9월1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열리는 `21세기형 만민공동회’는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토론하며 정책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자리이다. 여기서 제시된 정책은 다음달 중 여야당의 고위 정책담당자가 참여하는 대담에서 검토될 예정이다. 참가신청을 원하면 인터넷 한겨레의 배너를 통해 접속하면 된다.

정책생산과정은 ‘엘리트 독무대’
닫힌 네트워크서 민의 왜곡 잦아
비정규직 등 한숨 소리 높지만
시민들 삶에 발디딘 정책 부족

인터넷 발달이 참여시민 확대
정책소비자서 생산자로 변화
문제 발굴·대안마련 실험까지
“국회보다 훨씬 생산적” 평가도

충청권 행정수도 건설이나 향토예비군 폐지 공약은 과거 대통령 선거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선거 결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비록 이런 큰 공약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에게 절실한 정책은 많다. 주차요금을 10분이나 5분 단위로 끊어서 받는 것이나 자동차 운행거리에 비례해 보험료를 차등화하는 정책은 어떻게 나왔을까?

주차요금을 30분 단위로 받는 주차장에서 허겁지겁 차를 빼다 화가 치밀거나 “내 자동차는 하루종일 지하주차장에 세워져 있는데 왜 보험료는 같이 내나?” 하는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은 작아도 생활에는 의미있는 변화이다.

정책은 국민과 정치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공간이다. 좋은 정책은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정치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여야 모든 정당은 국민을 염두에 두고 정치를 하고 정책을 개발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약속과 공약이 국민의 마음을 얼마나 담아내고 있을까? 국민은 정치에 관심을 끊거나, 거듭해서 제도권 밖의 새인물을 갈망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책 생산이 국민들과 동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지는 탓도 크다. 정책 생산 과정은 정치인, 관료, 학자, 연구원 같은 엘리트들의 독무대다. 선거가 끝나면 이들 소수의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닫힌 네트워크’에 모여 정책을 만든다. 이 과정에 기득권, 정략 및 로비가 끼어들어 민의가 무시되고 비틀릴 때가 많다.

국민경제에 두고두고 영향을 끼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전문성’이란 이름의 장막에 가려져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수 없는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엘리트 네트워크’는 힘의 논리가 득세하는 곳이어서, 인재를 뽑아 연구비를 풍성히 주고 안성맞춤의 ‘정책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집단이 뜻대로 정책을 주무르곤 한다.

이런 정책생산 생태계에 변화가 오고 있다. 정책의 대상이자 수동적 소비자였던 시민이 참여자이자 생산자로 일어서고 있다. 시민들이 스스로, 또는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발굴하고 정책 대안으로까지 발전시켜나가는 실험이 활발하다.

지난 6월 말 시민 200여명이 `더 체인지’ 주최로 모여 한국 사회를 둘러싼 ‘불신, 불안, 불통, 불행’을 해결하는 방법을 놓고 토의한 것이 한 예이다.

6월 중순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대화문화아카데미 주최로 ‘2012 대한민국 민회’가 1박2일로 열렸다. 이 민회에는 사회 각 분야 전문가 50명과 지역대표 50여명이 참가해 헌법, 경제민주화, 교육, 지속가능한 사회, 평화와 통일 등 5대 의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민회에 참여한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모여서 얘기해 보니 “진보나 보수보다는 중도적인 의견들이 부각됐다”며 “국회보다 훨씬 더 생산적인 합의의 가능성이 보였다”고 말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같은 미디어의 발달은 참여하는 시민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일방적인 강연보다 대화를 좋아하고, 주어진 것을 받아들기보다는 게임의 룰을 정하는 데 참여하고 싶어한다. 이들이 새로운 미디어로 연결되어 소통할 때 더이상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구분도 불분명해졌다. 정책제안과 연구를 취미로 시작했지만, 전문가 못지않은 역량을 발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시민이 정책의 주인이 되는 첫걸음은 모여서 ‘떠드는’ 것이다. 이러면 생각이 모아지고 더해지고 발전해 우리 삶을 바꾸는 훌륭한 정책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평범한 이웃처럼 보여도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란 것도 발견하게 된다.

이제 평범한 시민의 아이디어가 정책으로 채택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차례다. 물론 한두 번의 모임으로 많은 것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방법임에 틀림없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