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의 1/4이 변기로… 화장실을 재발명하라

2012. 8. 28. 08:42세계 아이디어 상품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의 1/4이 변기로… 화장실을 재발명하라
[한겨레신문] 2012년 08월 27일(월) 오후 08:12   가| 이메일| 프린트
[한겨레] 자동물내림 장치…진공 화장실…

절수형 변기 개발 움직임 활기



빌게이츠재단선 `‘화장실 공모전’

22개팀 참가해 기발한 착상 겨뤄

우리나라 가정의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176리터로, 이 가운데 욕실에서 사용된 양이 절반을 조금 넘는다. 또 욕실 사용 물의 절반 이상이 양변기에 쓰인다. 하루에 쓰는 물의 4분의 1, 곧 45리터를 대소변 보는 데 쓰는 셈이다.

현재 가정에서 쓰는 기존 양변기는 한번 사용하는 데 10리터 안팎의 물이 든다. 한 사람이 평균 하루 대변 1번, 소변 4번을 보는 것을 고려하면, 물 소비량을 3분의 1로 줄일 경우 우리나라 연간 물 소비는 4억8천만톤이 줄고 5천억원의 수도요금이 절감된다.

■ ‘사이펀식’ 변기의 한계 현대의 양변기는 19세기 말 영국 수학자 알렉산더 커밍이 에스자형 대나무 파이프에 물을 채우는 장치를 고안한 데서 출발했다. 이를 토대로 미국에서 ‘사이펀식’ 변기를 만들었고, 오수관이나 정화조 악취가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처가와 함께 멀수록 좋다”는 화장실이 가정으로 들어오게 됐다. ‘사이펀’은 액체를 기압차와 중력을 이용해 쉽게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연통형 관을 말한다.

그러나 사이펀식 변기는 물 사용량이 많다는 단점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서기원 대림대 건축설비소방공학과 교수는 “‘흐르는 액체의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 합은 일정하다’는 ‘베르누이의 정리’를 적용해 현재의 사이펀식 변기 물 사용량을 계산해보면 물 소비량을 6리터 이하로 줄이는 데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6리터짜리 제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오물 찌꺼기가 완전히 세척되지 않아 두세번 물을 내리는 부작용을 빚기도 한다.

■ 변기 진화의 키워드는 ‘절수’ 물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세계의 각국에서 사이펀 변기의 200년 독주를 견제할 절수형 변기의 개발 움직임이 활기를 띠고 있다. 서기원 교수 연구팀은 ‘무전원 자동물내림 장치’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몸무게로 감지한 압력과 일정한 시간(약 1분)을 넘지 않고는 대변을 볼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대변과 소변을 구분한다. 10㎏(4살) 이상의 어린이면 모두 가능하다. 전기나 건전지를 쓰지 않고 종이컵 반컵 정도의 물을 구동에너지로 쓴다. 용변을 본 뒤 일어나면 휴지를 변기에 버릴 시간을 기다려준 다음 시트 뚜껑을 자동으로 닫고 변기의 물을 자동으로 배출해준다.

연구팀이 실제 병원 등에서 실험해본 결과 1번 사용에 53%의 물 소비가 절감됐다. 소변을 한번 볼 때 14.8리터가 줄어드는 셈이다. 절수량이 많은 것은 사용자들이 습관적으로 물내림을 두번 이상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토토사는 최근 ‘더블 사이클론 물내림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물을 회전시켜 둥글게 소용돌이 치게 만드는 두개의 분출구를 가진 이 시스템은 기존 사이펀 구조와는 다른 각도와 다른 모양의 경로를 통해 물이 용기를 잘 씻어내도록 설계돼 1회 물 사용량이 채 4리터가 안 된다. 싱가포르의 난양기술대는 배설물 재활용과 절수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비혼합 진공 화장실’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에는 액체 배설물과 고체 배설물을 분리하는 2개의 격실이 있다. 비행기 화장실에서 쓰는 진공흡입기술을 적용해 액체 배설물은 처리하는 데는 0.2리터, 고체는 1리터의 물만 사용한다. 액체 배설물은 후처리시설로 옮겨져 질소·인·칼륨(포타슘) 등 비료 재료로 쓰인다. 고체는 바이오리액터(생물반응장치)로 보내져 메탄 등 바이오가스를 생산해 천연가스를 대체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이달 중순 미국 워싱턴주립대에서 열린 ‘빌앤멀린다게이츠재단’의 ‘화장실 재발명’ 공모전에는 갖가지 기발한 화장실들이 소개됐다. 2011년에 시작한 이번 공모전은 위생적인 화장실이 없어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26억명을 위해 3년 안에 특별한 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돼왔다. 공모 조건은 하수시설이나 외부 에너지 없이 배설물을 처리하거나 재활용하면서도 모든 비용이 한 사람당 하루 5센트 이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22개 참가 대학과 연구기관 가운데 1위를 차지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팀은 물을 재활용하고, 배설물을 저장 가능한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태양열 화장실을 선보였다. 이들은 10만달러의 상금을 받아 1년 동안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영국의 러프버러대팀은 배설물로 생물학적 숯을 만들고 나머지는 미네랄과 깨끗한 물로 바꾸는 화장실로 2위(상금 6만달러)를 차지했다. 3위(4만달러)는 스위스·오스트리아 연합팀에게 돌아갔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