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돌고 잠자는 돈 예금회전율 5년3개월만에 최저

2012. 11. 13. 09:11이슈 뉴스스크랩

안돌고 잠자는 돈 예금회전율 5년3개월만에 최저

한겨레 | 입력 2012.11.12 20:50 | 수정 2012.11.12 21:10

 

[한겨레]요구불예금 회전율도 19개월만에 최악


MMF 잔액 76조…1월 견줘 43% 증가


투자·소비 위축 여윳돈 용처 못찾아

금융권에 들어간 시중 여유자금의 흐름이 느려졌다. 소비나 투자용으로 흘러가지 않고 은행 금고에 묻히거나 금융권에서만 맴도는 돈이 계속 늘고 있다. 실물과 금융이 따로 놀면서 이른바 '돈맥경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가 예상 밖으로 장기화하는데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탓이다.

12일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지표를 보면 올해 하반기 들어 은행의 예금회전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은행의 전체 예금회전율은 7월 4.0에서 9월에는 3.7회까지 떨어져 2007년 5월 이후 5년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예금의 월간 누적지급액을 평균 잔액으로 나눈 값인 예금회전율이 떨어졌다는 것은 은행에 그냥 묵혀두는 돈이 늘었다는 뜻이다.

예금회전율의 하락은 기업이나 가계의 자금사정이 넉넉하거나 예금 이자가 높은 경우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지금의 사정은 완전히 다르다. 마땅한 용처를 찾지 못한 기업과 가계의 여유자금이 그냥 금융권에서 방황하는 현상일 뿐이다. 한은 관계자는 "예금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인데다 계절적으로 자금수요가 많은 시기인데도 회전율이 떨어진 것은 이례적 현상"이라며 "전반적으로 투자와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어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전반적인 경기침체 분위기 탓에 기업들로선 추가로 투자에 나설 엄두를 못 내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들 또한 부동산 시장 불황과, 줄어드는 주머니 사정(가계소득)에 짓눌려 소비를 극도로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예금 가운데서도 수시로 입출금이 이뤄지는 요구불예금의 추이가 더욱 심상치 않다. 9월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30.1회로 지난해 2월(29.5회) 이후 1년7개월 만에 최저치이다. 특히 요구불예금 가운데서도 기업 운전자금 성격인 당좌예금은 9월 회전율이 459.8회로,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로 신용경색이 심각했던 2009년 4월(411회) 이후 처음으로 500회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9월(538.2회)과 견줘서도 가파른 하락세다. 당좌예금 통장으로 오가는 기업 자금의 회전 속도가 1년 사이에 14.7%나 떨어진 셈이다.

돈의 방황은 단기 금융상품의 잔액 추이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금융투자협회 자료를 보면 초단기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 설정액은 지난 8일 현재 76조8000억원으로 1월 초의 53조6000억원보다 43.3%나 증가했다. 또다른 대표적 단기금융상품인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 역시 지난 10월 말 4조3400억원으로 전달 4조100억원보다 약 3300억원 증가했다. 엠엠에프는 만기 30일 이내의 초단기금융상품이고 시엠에이는 고객 예탁금을 어음 등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둘 다 하루만 예치해도 이익금을 받을 수 있지만 장기상품과 비교하면 쥐꼬리 수준이다.

단기금융상품에는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자금이 일단 머물면서 투자처를 물색하는 단계에서 많이 들어온다. 하지만 엠엠에프나 시엠에이 금리 역시 저금리 영향으로 2%대로 떨어지는 등 자금을 묶어두기에는 너무 낮다. 이정걸 국민은행 재테크팀장은 "올 상반기만 해도 금리가 떨어지면 투자자들이 채권이나 이엘에스(ELS) 등 위험중립형 자산으로 움직였는데, 최근에는 그런 모습도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순빈 선임기자, 최현준 기자sb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