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통유리 집 뜬다

2012. 12. 5. 09:27이슈 뉴스스크랩

The Wall Street Journal월스트리트저널

By NANCY KEATES

시애틀주민인 그랜트 리스든이 거실 창밖을 내다볼 때면 자신을 보면서 손을 흔들고 있는 행인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유명인사인 것도 아니다. 특이한 집에 살고 있을 뿐이다. 유리로 둘러싸인 자택 2층은 둥둥 떠다니는 투명상자처럼 보인다.

밖과 연결된 느낌을 주는 집에서 살고 싶었지만 교외지역으로 이사가고 싶지는 않아 유리집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리스든 부부는 밤에도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는다. “프라이버시에 대해 우려하지 않는다. 숨길 게 하나도 없다.”

현대건축에서는 유리벽과 전면유리창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유리를 많이 사용하는 디자인은 도로에서 떨어진 주택이나 고층아파트에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David Hertz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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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에는 도로와 가까운 주택 1층에서도 과감한 유리디자인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활기와 다양성, 편리한 교통 등 도시의 장점을 누리면서도 볕이 잘 안 든다는 1층의 단점을 피하기 위해 유리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건축가들은 전한다. 전면이 유리로 돼있으면 행인들이 집 안을 쳐다보기 쉽지만 집 안에서 밖을 보기도 좋다.

건축가들은 밖에서 안을 들여보기 어려운 유리디자인을 내놓고 있다. 유리높이를 조정해 행인이 도로 한복판에 서있지 않은 이상 집안이 잘 안보이게 하는 디자인이 있는가 하면, 거실 등 공공적인 성격을 띄는 앞쪽에 유리를 많이 쓰고 침실은 뒤쪽에 배치하는 디자인도 있다.

반사유리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안에서 밖을 최대한 볼 수 있으면서 밖에서는 안이 잘 안보이는 유리벽이 만들어지고 있다. 건축가 데이빗 허츠는 분주한 베니스해변에 위치한 3층짜리 유리집에 반사유리를 적용했다. 안에서 보면 유리창이지만 밖에서 보면 거울이다. 행인들이 지나가다 유리창을 보고 화장을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창문을 열지 않고도 날씨를 확인할 수 있는, 외부와 연결된 주택이다”고 데이빗은 말한다.

집주인인 토마스 에니스는 바다 전경을 완전히 즐기기 위해 유리집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요트를 타고 있는 기분이다.” 160만 달러(17억3,500만원)가 투입됐고 3년만에 완공됐다.

시카고에 사는 파텔 부부는 42층 아파트에 살 때 전면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전망이 너무 좋았기에 단독주택으로 이사갈 때도 유리디자인을 물색했다고 한다. 결국 부지에 원래 있던 집을 허물고 3층이 전면유리로 된 4층 단독주택을 건축했다. 부지가 워낙 좁고 양쪽에 이웃집이 있어 채광을 확보하기 위해 양쪽을 트고 유리를 많이 써야 했다고 건축가 존 맥카시는 전한다. 빛이 더 들게 하기 위해 계단에도 채광창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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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접한 거실과 식사공간은 전면유리 디자인이어서 행인들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전면유리로 된 딸방은 책상을 창가에 두고 침대는 뒤쪽에 놓았다. “행인들이 딸이 숙제하는 모습을 봐도 괜찮다”고 말한 부인 모히간은 유리집이라고 해서 보안이나 프라이버시에 대해 특별히 걱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현대적인 느낌의 유리집이 너무 튀지 않게 하기 위해 건축가는 벽돌집처럼 보이는 색조와 자재를 동원했다. 집 앞에 위치한 큰 나무는 여름이면 나뭇잎이 볕을 가리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가 볕을 통과시키면서 자연 냉난방기 역할을 한다. 베란다와 지붕에는 정원을 조성했다. 프라이버시가 확실히 보장되는 4층은 100% 유리로 둘러싸여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한다.

유리가 많을수록 위험노출도가 높아진다는 주장도 있다. 보험 관련 비영리기관 IIBHS의 존 로흐만 CEO는 보호장치가 되어있지 않은 대형 유리창은 빈집털이나 파손, 강풍 등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보험업체들이 주택위험에 대해 서로 다른 평가기준을 적용하기는 하지만 외부에 드러난 대형 유리창은 감점요인이 될 수 밖에 없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저택 2채가 20세기 중반에 지어진 유리집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유리집은 새로운 유행이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도시에 유리집 디자인을 적용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건축가들이 여전히 많다. 건축가 대니얼 피초타는 인적이 드문 지역에서는 유리디자인을 많이 쓰지만 붐비는 도시에서는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날라다니는 나뭇가지나 새와 충돌할 위험, 밤경치를 해칠 수 있는 광공해현상 등 문제가 그러지 않아도 많은데 도시에서는 프라이버시문제까지 더해진다는 것이다.

보고 보이는 것이 도시경험의 일부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다. 건축가 케빈 앙스달트는 “도시에 살 거라면 도시경험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게 낫다”고 말한다. 그는 필라델피아 시내에서 입구와 거실, 식사공간이 전면유리로 된 4층 주택을 설계했다. 워낙 유리가 많이 쓰여 한 방에서 외벽을 거쳐 다른 방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2층에 위치한 식사공간은 행인을 위한 전시장처럼 보이며, 유리상자 모양의 4층 부부침실은 야외욕조와 그릴, 의자가 놓여있는 베란다에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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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공간을 제외하고는 각 방마다 유리창 각도와 굴절을 조절해 안이 잘 보이지 않게 했다. 저택을 건설하는 데 1제곱피트(0.09m²)당 350달러(38만원)가 들었다고 한다.

2008년 배리 요아쿰은 멤피스 도심지역에 위치한 유리집으로 이사했다. 유리상자 모양의 침실에서는 미시시피강이 내려다 보인다. 망원경으로 집을 들여다보는 이웃집 아이가 있었는가 하면(부모에게 말해 그만두도록 했다) 집이 워낙 특이해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려 사진을 찍을 때도 많다고 한다. 배를 타고 강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쌍안경으로 침실을 들여다 보곤 한다.

문제는 사람뿐만이 아니다. 새가 창에 부딪치는 사건에 익숙해질 무렵 집이 떠나갈 것 같은 소리가 나서 봤더니 커다란 매가 유리창 밖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더니 5분 뒤에 날아갔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커텐을 열어놓고 잘 때가 많다. 도심에 사는 덕에 음식점, 영화관 등 편의시설과 직장이 가까우면서도 전면유리 덕에 아침에 일어나면 강 위를 나는 새떼를, 밤에는 달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경보시스템이 작동하면 집 전체에 조명이 들어와 도둑이 집 안에 있건 밖에 있건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보안에 특별히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작은 구멍만이 뚤린 동굴같은 집에 살고 싶지 않다.”

그의 자택에는 단열 및 자외선차단 소재로 코팅된 ‘스마트유리’가 쓰였다. 유리 사이에 가스가 들어있어 단열작용을 하는 다중유리창도 적용했다. 전망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유리창에는 얼룩을 막는 코팅이 되어있다. 집을 짓는 데 소요된 40만 달러(4억3,700만원) 중 유리창 가격이 5만3,000달러(5,800만원)였다고 한다. 일반 유리를 썼다면 4만 달러(4,340만원)가 들었을 것으로 그는 추정한다.

스마트유리가 자연광을 방해하고 외부전망을 왜곡하는 데다 가격도 비싸기 때문에 투명유리를 쓰는 게 낫다고 말하는 건축가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유리집이 일반화됨에 따라 지역주민위원회에서 유리집 건축승인을 받는 것도 쉬워졌다고 전한다. 베리는 전통적인 디자인의 주택이 주를 이루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건축승인을 받는 데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옛날 같았으면 불가능했겠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