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사업 40대男, 진품·짝퉁 섞어서는…경악

2013. 1. 5. 23:07C.E.O 경영 자료

의류사업 40대男, 진품·짝퉁 섞어서는…경악
[WEEKEND 매경] 지하경제 370조 `지상`으로 얼마나 끌어낼수 있을까
기사입력 2013.01.04 21:59:13 | 최종수정 2013.01.04 22: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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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빌딩 13층에 있는 금융정보분석원(FIU) 심사분석실. 자동화기기(ATM)ㆍ대포통장 등을 통해 자금세탁 의혹이 있는 혐의거래보고(STR)가 하루 평균 1000여 건이 접수되고 있다. 원화로 1000만원 이상, 외화로 5000달러 이상의 수상한 돈거래는 금융사에서 의무적으로 보고된다. 2011년 FIU에 보고된 자금세탁 의심5거래는 32만9436건으로 전년(23만6068건)보다 39.6% 늘었다. 고작 2.3%(7498건)만이 국세청에 제공됐다. 더욱이 하루에 2000만원 이상 현금을 주거나 받아 조세범죄 가능성이 농후한 고액 현금거래보고(CTR)도 1129만5000건에 210조원(2011년 기준)에 이른다. CTR 규모는 2007년 99조원에서 2008년 137조원, 2009년 140조원, 2010년 197조원 등 해마다 늘어나 고액 현금거래자 200만명에 대한 과세 정보가 구축되어 있다. 이같이 방대한 자료를 검찰, 경찰 등 관련 부처에서 파견나온 심사분석실 40여 명의 요원들이 모니터링하고 정밀 분석하기에는 역부족인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FIU에 누적된 금융정보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류사업가 A씨와 B씨는 각각 짝퉁 의류와 정상 의류를 구매한 뒤 이를 섞어 정상 제품으로 위장해 일본으로 수출했다. 이렇게 밀수출된 의류와 액세서리가 약 70만점, 시가로 30억원 상당에 달했다.

A씨와 B씨는 이 과정에서 일본 의류도매상으로부터 받은 고액의 엔화를 여러 사람의 계좌에 즉시 이체하거나 빈번하게 자동화기기(ATM)로 현금을 인출하는 등 의심스러운 금융거래를 반복했다. 이를 의심스럽게 여긴 은행 직원이 FIU에 보고해 들통이 났다.

유사휘발유 2만ℓ를 만들어 판매한 C씨도 타인 명의의 통장을 이용해 2000만원 이상의 현금을 입출금하다 이를 수상히 여긴 은행의 의심거래 보고로 덜미가 잡혔다.

앞서 2011년 4월 전북 김제의 마늘밭에서 무려 110억원이나 되는 5만원짜리 검은 돈이 쏟아져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수익으로 드러났다. 국회의원에게 5만원짜리 현찰 40묶음, 2억원을 쇼핑백에 넣어서 전달하려다가 들통난 공천헌금 사건도 있었다. 유사휘발유 제조 판매, 거짓 세금계산서 수수, 불법 도박자금 등 고액 현금거래는 탈세와 범죄의 온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2년 6월 말 기준 시중에 풀린 5만원권 발행 잔액은 28조7981억원으로 1년 만에 32.7%나 증가했다. 반면 상반기 환수율은 5만원권이 66.4%로 1만원권(115.3%)이나 5000원권(95.4%)에 비해 떨어졌다. 일각에서 세금을 포탈한 검은돈이나 뇌물 등 지하경제로 흘러갔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지하경제 규모 제각각

지하경제는 좁게는 매춘이나 마약, 도박 등 불법 거래부터 넓게는 현금으로만 거래하고 소득은 신고하지 않는 세금탈루, 조세회피까지 공개되지 않은 검은 경제(Black Economy)다.

지하경제는 탈세로 나타나며 그 결과 정직한 누군가가 상대적으로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만든다. 탈세는 국가의 세수 감소는 물론이고 소득분배 악화, 사회적 감시 비용 증가, 근로 의욕 저하, 사회 양극화 심화 등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공식 통계가 없다 보니 어디까지를 지하경제로 잡느냐에 따라 학자들마다 기관마다 지하경제 규모 추정치가 다르다.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린츠대학 교수는 2007년 기준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를 전체 국내총생산(GDP) 대비 27.6%로 추정했다. 미국(7.9%), 일본(8.8%), 영국(10.3%) 프랑스(13.2%) 등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또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26.3%), 이탈리아(23.2%)보다 높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새누리당은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를 국내총생산(GDPㆍ1552조원)의 24% 수준인 372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하경제 비중이 큰 것은 부정부패가 여전하고, 고소득층의 탈세가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탈루율은 40.9%에 달했다. 실제소득이 100만원이라면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은 소득이 40만9000원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소득 파악이 어려운 자영업자 비중(31.3%)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5.8%)보다 높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월급쟁이만 유리알처럼 투명한 소득에 ’원천징수’로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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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경제 양성화 이번에는 해결해야

1992년 출범한 문민정부가 금융실명제를 도입한 이후 역대 정부마다 신용카드 사용을 늘리고, 현금 영수증을 발급하는 등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을 꾸준히 추진했다.

문제는 사업자로부터 실물거래 증빙을 제출받아 비교ㆍ검증하는 현행 과세시스템으로는 제대로 지하경제 흐름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파악하는 실물거래는 연간 4000조원 규모지만, 국내 금융시장의 결제규모는 하루 평균 255조원, 총 6경3200억원에 이른다.

김재진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물거래 중심의 과세인프라 체계로는 자료상, 현금거래 신고 누락 등 전통적 탈세와 진화하는 첨단 탈세를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세금을 늘리지 않고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박 당선인의 대표적인 공약이다. 새누리당은 지하경제의 6% 정도만 양성화해도 매년 1조6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고 계산한다.

FIU의 금융거래정보를 온라인 및 실시간으로 국세청과 공유해 지하경제의 세원을 노출시키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FIU가 국세청에 제공하는 금융정보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범칙사건 조사와 범칙혐의 확인을 위한 일반 조사로 한정되고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000만원 이상 현금 거래하는 사람의 정보를 조세당국이 활용토록 하자는 이른바 ’FIU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국세청이 FIU 금융정보를 공유하면 6조원의 세수는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 원내대표는 "2000만원 이상을 꼭 현금거래로만 하는 사람은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것"이라며 "마약이나 조직폭력배 자금을 사용하는 사람을 보호할 생각이 아니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비밀보호도 소홀할 수 없어

금융위원회와 국회 일각에서는 국세청의 과세정보 남용과 금융비밀주의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실명제의 근간인 비밀보장과 영장주의 원칙, 금융소비자 보호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종교단체 헌금 등 선의의 거액 현금거래도 많기 때문이다. 지하경제는 부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만약 전통시장 신용카드 공제율을 지나치게 높이면 신용카드 활성화로 영세 상인들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염려도 나오고 있다. 이른바 지하경제가 대규모 사회 혼란의 완충작용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지하경제를 축소하려면 금융 거래를 더욱 더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종석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득을 숨기는 사람들은 부동산 거래도 가명으로 하고 대다수 현금 거래만 한다"면서 "거래에 반드시 금융기관이 낄 수 있도록 한다면 정보가 많이 누출돼 자기 이름을 숨길 수 없고 신고금액도 낮출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용어설명>

▷ 금융정보분석원(Financial Intelligence UnitㆍFIU) : 불법자금 세탁을 예방하고 불법외화 유출입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2001년 설립된 금융위원회 소속 기관.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세탁 관련 혐의거래보고 등 금융정보를 수집ㆍ분석해 이를 경찰 등에 제공한다.

▷ 혐의거래보고(Suspicious Transaction ReportㆍSTR) : 금융기관이 불법 재산과 자금세탁이 의심된다고 주관적으로 판단되는 원화 1000만원 이상, 외화 5000달러 이상의 금융거래를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는 자료.

▷ 고액현금거래보고(Currency Transaction ReportㆍCTR) : 금융기관이 하루에 2000만원 이상의 현금을 지급하거나 영수하는 고객들의 현황을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는 자료.

[윤상환 기자 / 이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