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셧다운·디폴트 위기 3개월 뒤 다시 온다

2013. 10. 18. 19:02지구촌 소식

美 셧다운·디폴트 위기 3개월 뒤 다시 온다

경향신문 | 워싱턴|손제민 특파원 | 입력 2013.10.18 17:16

 

미국 수도 워싱턴의 2차 세계대전 기념공원 앞의 바리케이드는 치워졌고, 국립동물원의 판다 관찰 카메라가 다시 켜졌다.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이 다시 문을 열었고, 백악관과 연방정부 청사들 주변에서 잔디 깎고 낙엽 치우는 소리로 소란스럽기까지 했다. 미국 연방정부가 16일 간의 일부 폐쇄를 끝내고 다시 문을 연 17일 워싱턴 시내 거리에는 사람도 더 많아진 것 같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아침 대국민 연설을 통해 "승자는 없다. 지난 몇 주간 우리 경제는 정말 쓸데없이 피해를 봤다"며 "국민들이 워싱턴에 완전히 신물이 났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우리는 갈등에서 이익을 찾는 로비스트, 블로거들, 직업 활동가들의 목소리에 집중할 게 아니라 대다수 미국 국민의 요구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년 1월15일까지 잠정 타결해둔 예산안을 제대로 논의하고, 포괄적 이민개혁법과 농업법 처리를 의회에 요구했다.

공화당이 이번 싸움에서 백기투항했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정국 주도권을 잡으리라는 예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워싱턴 정치는 오바마 대통령의 바람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더 많다. '깡통을 발로 차 길 아래에 치워뒀다(kicking the can down the road)'는 미국 언론들의 표현대로 숙제가 3개월 뒤로 미뤄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공화당 소속 폴 라이언 하원 예산위원회 위원장과 민주당 소속 패티 머레이 상원 예산위원회 위원장은 전날 통과된 합의안에 따라 이날 머리를 맞대고 2014회계연도 예산안의 방향을 논의했지만 근본적 차이를 확인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민주당은 부자 증세로 재원을 마련해 연방정부 예산 자동삭감(시퀘스터)을 끝내자는 입장이지만 공화당은 증세는 있을 수 없으며 건강보험개혁법안인 오바마케어의 혜택을 줄임으로써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맞섰다.

양당이 내년 1월15일까지 근본적인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예산안 타결에 실패할 경우 1월16일부터 또다시 연방정부 폐쇄(셧다운) 사태가 오며, 부채한도 조정 시한인 2월7일 이전에 두 정당은 또다시 초유의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놓고 벼랑끝 대치를 하게 된다. 이번 정부 폐쇄가 16일간 이어졌다면, 다음에는 22일간 계속될 수 있다. 이번 합의 도출 과정에 민주당은 두 날짜 사이의 간격을 아주 많이 벌리려 한 반면 공화당은 좁히려 했다고 한다. 공화당이 또다시 벼랑 끝 싸움을 불사하고 있다는 뜻이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당분간 직을 유지하며 이 싸움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마침 내년 초는 중간선거 열기가 점화되는 시기로, 의원들이 지역구 민심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타협의 정치가 이번보다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워싱턴|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