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중소도시..대관령을 넘는 아이들

2013. 10. 28. 20:46이슈 뉴스스크랩

 

이데일리 | 박종오 | 입력 2013.10.28 07: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무너지는 지방 중소도시' 기획기사(본지 10월22일자)는 반향이 컸다. 독자들의 격려도 있었지만 항의성 댓글과 메일, 전화도 적지 않았다. 특히 '주택 100채 중 8채가 빈 집'이라고 보도된 군산 시민들의 반감이 컸던 듯하다. "어쩜 그렇게 잠깐 와서 안 좋은 모습만 기막히게 찾아냈느냐"는 것부터 "다른 중소도시도 사정이 다 마찬가지"라는 지적까지 다양했다.

변명할 생각은 없다. 기사가 문제시되는 모습만을 조명한 건 사실이다. 실제로 군산의 신도시라 불리는 나운동, 수송동 등은 수도권의 여느 도심 못지않았다. 옛 도심이 쇠퇴하고 공·폐가가 늘어나는 것 역시 군산만의 현상이라 보기 어렵다. 성장이 멎은 지방 중소도시 대부분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기사의 취지를 선명히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사실 기자가 방문한 곳 대부분은 군산 시민들이 안내했다. 지역에 대한 이방인의 관심이 갸륵해 기꺼이 도움을 준 게 아니었겠나 싶다. 기사를 메운 위태로운 빈 집과 황량한 거리 사진들은 그런 도움에 보답하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보다 껄끄러웠던 건 '빚 진 마음'이었다. 수도권 독자가 읽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지방의 해묵은 문제를 헤집는 건 아닌가 하는 부담이 컸다. 한 번도 지역을 위한 기사를 써본 적 없는 기자가 수도권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지역의 자부심을 다치게 할까도 겁났다. 기사 마감 뒤에도 이 빚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열악한 지방의 주거환경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균형발전 정책의 산물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박근혜 정부가 도시재생특별법을 들고 나왔지만 지역의 관심이 크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오히려 정부가 투자 활성화를 명목으로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가속화될 거라는 우려만 커진 실정이다. 과거 수도권 과밀화를 막기 위해 최초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지정하고, 행정수도 건설까지 추진했던 이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은 지역에 대한 어떤 부채와 청사진을 갖고 있을까.

"대관령을 넘자." 이 말은 여느 등산모임의 구호가 아니다.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 3학년 학급에서 실제로 사용된 급훈이었다고 한다. 수십 년째 이어진 수도권 집중 현상의 가장 절박한 은유인 셈이다. 역대 정권이 그랬듯 현 정부도 여전히 경제 살리기와 지역균형발전을 양자택일의 갈림길로 인식하는 듯 보인다. 균형발전이라는 불요불급한 대의가 수도권(=국가) 경쟁력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넘어서긴 어렵다. 지방의 빈 집과 대관령을 넘어야 하는 아이들의 천진한 다짐이 도시재생이라는 보기 좋은 '당근' 아래 계속 늘어만 가는 게 아닐지 우려스럽다.

박종오 (pjo22@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