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4. 20:53ㆍ이슈 뉴스스크랩
고가장비 본전 뽑자는 병원..꼬리문 검사에 허리휘는 환자
매일경제 입력 2013.11.04 17:33 수정 2013.11.04 19:09
◆ 병든 의료현장에 메스 대자 ① ◆
허리 통증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들었던 이성철 씨(가명ㆍ53)는 최근 한 관절 치료 전문병원을 찾았다. 깔끔한 시설과 친절한 의사의 설명에 처음에는 신뢰감이 높았지만 계속되는 진료 요구에 의구심은 커져 갔다. 이씨는 '신경성형술'이라는 시술을 받았지만 한 달이 지나 결국 수술까지 받았다. 이 병원에서 든 비용은 모두 650만원.이씨는 "지금 생각해 보면 곧바로 수술을 할 수도 있었는데 의사가 비싸고 불필요한 시술을 계속 권했던 것 같다"며 "환자를 돈벌이로 여기는 병원 운영이 실망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을 하지 않고 척추를 고친다는 광고와 대학병원보다 규모가 작아 진료비가 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며 "사기를 당한 느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병원들 사이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시술과 과잉 진료가 잦아져 환자들의 경제적ㆍ심리적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신의료 혹은 첨단 장비라고 홍보하면서 수익이 많이 나는 비급여 시술ㆍ수술을 권하거나 안 해도 되는 불필요한 의료행위로 돈벌이를 하는 것이다.
환자가 실손보험에 든 경우는 과잉 진료가 특히 심하다. 병원 측이 대놓고 과잉 진료를 제안할 뿐만 아니라 환자들이 먼저 병원에 제안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 디스크 증세를 보여 척추 전문 네트워크병원을 찾은 김성환 씨(가명ㆍ36)는 보험 가입 여부를 먼저 물어보는 병원 측 태도가 이상했다. 접수증에 민간 의료보험, 실비보험 등 가입 여부를 체크하고 진료실에 들어가니 의사는 곧바로 MRI와 신경성형술 등을 권했다. "실비보험이 있기 때문에 본인 부담은 최소화하면서 정밀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병원 측 권유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대학병원에서는 오히려 반대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두통으로 병원에 온 환자에게 MRI를 찍지 않아도 된다고 의사가 얘기해도 "나는 보험에서 '커버'가 되니 MRI를 찍어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종종 나타난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MRI 한 번에 10만원씩만 보장되니까 검사를 나눠서 처방해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도 있다"고 전했다.
과잉 진료는 최근 들어 병원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경영 상태가 좋지 않은 중소 병원들 사이에서 심하다.
일부 병원은 의사들에게 과잉 진료를 부추기기도 한다. 2년간 한 네트워크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박지혜 씨(가명ㆍ31)는 "내가 근무하던 병원은 환자 유치와 비급여 진료 등 세부 항목으로 나눠 의사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인센티브제도가 운영됐다"고 말했다.
과잉 진료 문제는 의료계 내부에서마저 논란거리로 부상했다. 로봇 암수술이 대표적이다. 로봇 암수술은 기존 복강경 수술보다 6배나 비싸고 치료 효과가 높지 않은 데도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지적은 최근 암보험 상품에서 갑상샘암 치료가 제외되면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민간 보험으로 로봇수술비를 해결해왔던 갑상샘암 환자들은 3~4명 중 1명꼴로 로봇수술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에 수술 흉터가 남기를 꺼리는 여성 환자들이 대부분 로봇수술을 선호했다. 그러나 암보험에서 치료비 지원이 제외되자 1000만원을 웃도는 갑상샘암 로봇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어 대부분 절개술을 선택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갑상샘암 △자궁근종 △척추수술 등은 우리나라가 외국에 비해 유독 수술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굳이 수술을 할 필요가 없지만 병원들이 수익을 챙기기 위해 수술을 권한다는 것이다. 척추수술이 2009년 20만417건에서 2012년 23만5688건으로 17.6% 증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5년 생존율이 99%에 달해 이른바 '착한 암'으로 알려진 갑상샘암도 심하지 않더라도 먼저 칼을 대는 경우다.
일본에서는 종양 크기가 1㎝ 이하면 정기적으로 간단한 치료만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갑상샘암에 걸리면 종양의 크기와 전이 여부를 따지지 않고 곧바로 환자를 수술대에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병원이 고가의 의료 장비를 사들이면 수익을 거두기 위해 과잉 진료를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수가가 낮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익을 보전하려는 병원들의 몸부림이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환자는 과잉 진료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의문을 제기해도 의사나 병원이 고압적 태도로 나오면 고개를 숙이고 만다. 약자 처지에서 혹여 치료를 소홀히 받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서울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김소연 씨(가명ㆍ60)는 연일 비슷한 검사가 이어져 의사에게 "꼭 필요한 검사냐"고 물었다가 호통을 들어야만 했다.
김씨는 "검사를 꼭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의사가 화를 내며 간호사에게 '다음 환자 받으라'고 하더라. 어떤 검사인지, 왜 하는 검사인지만이라도 설명을 해 줬으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환자들은 "꼭 필요한 촬영 혹은 검사라면 그게 왜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환자에게 정보를 제공해줘야 한다"고 요구한다.
[김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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