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둥지둥 정부… 바뀐 게 없다

2014. 5. 14. 20:28이슈 뉴스스크랩

허둥지둥 정부… 바뀐 게 없다

취약시설물 안전 일제점검도 졸속… ‘교훈’ 잊었나

수십만곳 20일 만에 뚝딱총괄 국조실선 ‘깜깜’

세계일보
세월호 참사의 교훈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매뉴얼대로 출항 전 점검, 운항, 사고 후 대응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참혹한 결과는 피할 수 있었다. 진도 해상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한달째, 정부가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만들기 위해 시설물 안전 일제점검에 들어갔지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뤄져 졸속 행정, 전시 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실있는 재난·안전관리체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세월호의 교훈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14일 국무총리실에 따르면 정홍원 총리는 세월호 사고 닷새 후인 지난달 22일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마련키로 하고 국가 전체 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 전수 조사를 지시했다. 부처별로 안전의식 개혁안과 비정상적인 안전 관련 규정과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시설물 관리 주체가 주도한 2주간의 자체점검(4월28일∼5월9일)이 끝났고 현재는 정부합동 안전점검(5∼16일)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전국에 산재해 있는 수십만 곳의 시설물 점검을 20일 만에 뚝딱 끝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현장에서는 시간과 인력 부족으로 부실점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욱이 안전점검을 총괄하고 있는 국무조정실은 합동점검단의 구체적인 규모와 활동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30일 17개 시·도교육청과 전국 대학에 학교에서 관할하는 모든 건물에 대한 안전점검을 벌이도록 했다. ‘전국 학교 건물 전수조사’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걸고 ▲안전수칙 준수 여부 ▲매뉴얼 구비 여부와 실제 활용성 ▲교육 및 훈련 등을 점검토록 했지만 얼마나 꼼꼼한 확인이 이뤄졌는지 알 수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서울의 경우 유·초·중·고교 및 특수학교, 외국인 학교 등 총 2298개 기관에 대해 1∼8일 점검을 벌였지만 근로자의 날부터 석가탄신일로 이어진 6일간의 휴일 탓에 실제 점검은 4일간 진행됐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대전시는 지난 4월21일부터 5월13일까지 관내 17개 분야 1563개소 시설에 대한 일제 안전점검을 했다. 그러나 휴일을 제외하면 점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안전 상태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전문가나 장비를 동원하지도 못했다. 윤종준 대전시 안전총괄과장은 “시설의 정확한 안전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전문인력은 11개 시설당 한명에 불과해 제대로 상황을 확인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이번 주말까지 보고하라는 정부 요구에 따라 일단 결과를 취합하고 있지만 정확한 안전등급을 판단하기도 어려워 직원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도는 일선 시·군·구에 재해취약지구 등 2만6468곳에 대해 9일까지 안전점검을 마치고 보고하라고 했지만 실제 점검한 날은 7, 8일 이틀에 불과했다. 충남도의 한 관계자는 “중앙정부가 안전점검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손볼 생각은 안 하고 ‘빨리 점검해 보고하라’는 명령만 내리고 있다”며 탁상행정을 비판했다.

조원철 연세대 교수 겸 방재안전관리연구센터장은 “정부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점검을 한다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지금부터라도 각 부처가 관리하는 모든 시설물을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1년이고, 2년이고 길게 보고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초·중·고의 경우 붕괴위험이 있는 D·E급이 120개가 넘지만 정부가 예산을 주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며 “정부는 누가 죽고 나야 야단법석을 떠는데,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데 우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지로·박세준·조병욱 기자, 전국종합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