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당신도 자기도취적 CEO?

2014. 12. 26. 21:38C.E.O 경영 자료

[Weekly BIZ] [장세진 교수의 ‘전략&인사이트’] 혹시, 당신도 자기도취적 CEO?

  • 장세진 KAIST 경영대 교수
  •  

    조선 입력 : 2014.12.20 03:03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최고 연봉에 바람둥이 불확실한 경영환경에도 언제나 자신 충만한 모습
    이사회도 막지 못한다
    운이 좋아 성공한 경우도 자기 능력 때문이라 생각 꼼꼼한 2인자가 없으면 한순간에 무너질 위험 커

    CEO는 나르시시즘에 빠지기 쉽다. 성공적인 CEO일수록 더욱 그렇다.

    오라클의 전설적인 CEO 래리 엘리슨과 신(神)의 차이는 무엇일까? 미국의 탐사 보도 전문기자 마이크 윌슨은 '신과 래리 엘리슨의 차이'라는 책에서 그 답을 이렇게 썼다. "적어도 신은 자신이 앨리슨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앨리슨은 자신이 신인 줄 안다는 얘기다.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 전 씨이오는 자아도취형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런 씨이오는 과감한 전략으로 성과가 아주 탁월하거나 그 반대일 수 있다.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 전 CEO는 자아도취형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런 CEO는 과감한 전략으로 성과가 아주 탁월하거나 그 반대일 수 있다./블룸버그

    빌 게이츠가 IT 세계의 공부벌레였다면, 래리 엘리슨은 그 세계의 '워런 비티'였다. 바람둥이로 유명했던 배우 비티처럼 그는 요트를 타고, 제트기를 샀고, 아름다운 여성들과 로맨스를 즐겼으며, 지난해 미국 상장기업 CEO 중에서 가장 많은 7900만달러(약 880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자기도취적 CEO가 긍정적인 면도 있다. 긍정의 힘은 주위 사람에 전염되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이들은 남을 설득하여 자신감을 갖게 한다. 나폴레옹 황제와 케네디 대통령은 극히 자기도취적인 지도자였다. 프로이트는 이처럼 타인의 생각에 둔감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스스로 위대하다고 느끼는 심리 유형을 나르시시스트라고 이름 지었다. 이들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참지 못하고,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는 위험이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도널드 햄브릭 교수는 IT 업계 111명 CEO를 분석하여 자기도취 정도가 기업의 전략과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CEO의 자기도취 성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①연차보고서에 실린 CEO사진의 크기 ②언론 보도자료 중 CEO 이름을 언급한 빈도 ③CEO의 연설 중 '나'라는 일인칭 주어나 목적어의 사용 빈도 ④CEO와 다른 중역과의 연봉 격차를 측정했다. 실증 분석 결과, CEO의 자기도취 성향이 높을수록 기업들은 훨씬 더 과감한 전략을 추구하며, 기업 인수·합병(M&A) 건수가 많고, 인수 프리미엄을 더 높게 지불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이런 기업들은 성과가 아주 높든지 또는 아주 낮든지 극단적이 된다.

    최근 연구는 CEO의 자기도취 성향이 개인의 심리적인 성향 외에도 경영자들이 자신의 성공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렸다는 점을 지적한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서 기업의 성과는 경영자의 능력 외에도 운(運)에 좌우되는 부분도 크다. 아무리 완벽한 전략을 수립했더라도 외부 상황이 불리하면 실패할 수도 있고, 어영부영 지내다가도 횡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운이 좋아 성공한 경영자가 성공 요인을 자신의 능력에서 찾는 것이다. 더구나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또는 세 번까지 운이 좋았다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의 앞길을 막을 장애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 이들은 부하나 주변의 충고는 무능한 사람들의 질투로 간주하고 무시한다. 버클리대 찰스 오렐리 교수는 이런 유형의 경영자는 재직 기간이 길어갈수록 자기도취 성향이 더 심해지고 더 많은 보수를 요구한다고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혔다.

    심지어 CEO를 견제해야 하는 이사회도 이들을 막지 못한다.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구올리 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도취적인 CEO는 자신처럼 자기도취적인 인물들만 골라 사외이사로 영입한다고 한다.

    장세진 한국과학기술원 경영대 교수
    장세진 KAIST 경영대 교수

    요즘처럼 CEO가 자신의 성공 과정과 경영 철학을 피력할 강연 기회도 많고, 미디어 역시 표지에 큰 사진과 함께 인터뷰 기사를 싣는 세상에선 CEO가 자신도 모르게 자기도취적이 되어가기 쉽다. 햄브릭 교수의 연구는 자신을 칭송하는 신문 기사가 한 편 더 나올수록 자기도취적인 CEO가 다음번 기업 인수·합병에 지불하는 프리미엄이 14% 높아진다고 전한다.

    자기도취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CEO 스스로 경계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 외에도 운도 좋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고, 앞으로도 항상 운이 좋을 것이란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한두 번의 실패는 현실을 직시하는 좋은 기회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났던 경험이 중요한 교훈이 되었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직언(直言)을 할 수 있는 참모를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오라클이 성공한 원인 중 하나는 사프라 카츠(Catz)라는 꼼꼼하고 보수적인 2인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엘리슨의 긍정적인 사고와 추진력을 살리면서도 자기도취의 함정에 마냥 빠지지 않게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