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도 1장에 수천억원 … 미·프랑스 독점시장 뚫어라

2015. 3. 11. 20:06건축 정보 자료실

설계도 1장에 수천억원 … 미·프랑스 독점시장 뚫어라

 

해외건설 50년, 신성장 50년 <중> 첨단기술로 일군 세계 6위

시공 넘어 고부가 분야가 미래

단순 시공은 중국·인도가 잠식

플랜트 설계기술은 10년 뒤처져

"단가 인하 강요해 기술투자 막는

국내 최저가 낙찰제부터 바꿔야"

 

2013년 8월 미국 건설·엔지니어 전문지 ENR은 세계 해외 건설 시공력 순위를 매기면서 한국을 6위에 올려놨다. 1965년 태국에서 98㎞짜리 ‘빠따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한 지 50년 만에 상전벽해를 이룬 셈이다. 그러나 국내 건설회사는 요즘 안팎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에 등극했지만 ‘시공’ 분야에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단순 시공은 유가 하락이나 인건비 상승 등 외부 요인에 따라 수익성이 널뛰기를 할 위험이 크다. 최근 유가가 급락하면서 중동에서 수주했던 공사가 줄줄이 연기되거나 중단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건설·대림산업·삼성엔지니어링 등 주요 건설회사가 2013년 이후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동에 6개의 사업장을 갖고 있는 A사는 2012년 이후 2년 만에 이 지역 인건비가 98% 뛰는 바람에 가만히 앉아서 손실을 보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자국 인력 의무 고용 등으로 인건비가 급등세”라고 전했다.

건설업계에선 수년 전부터 기본설계(FEED)나 사업관리(PM·Project Management)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로 보폭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플랜트 기본설계는 설계도 한 장만으로 수천억원을 벌 수 있는 대표적 고부가가치 영역이다. 그러나 이 시장은 미국의 벡텔사, 프랑스의 테크닙사 등 세계 5위권 건설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국내에선 SK건설이 2010년 처음으로 플랜트 기본설계를 수주한 적이 있다. 이후 대우건설·삼성물산·대림산업이 플랜트·건축 기본설계에 참여했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은 “국내 건설업체의 고부가가치 분야 기술력은 벡텔 등 상위 5위 업체에 5~10년 정도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후발국의 추격도 거세다. 중국·인도 업체는 싼 인건비를 앞세워 국내 업체보다 평균 30% 싼 가격으로 일감을 빼앗아 가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이들 업체와 가격 경쟁에서 밀려 입찰조차 못한 사업이 지난해에만 줄잡아 30여 건이다. 최중석 해외건설협회 정책기획처 부장은 “초고층이나 난도 높은 토목·플랜트를 제외하곤 이미 후발국에 시장을 내줬다”며 “중국은 최근 정부 차원의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앞세워 국내 업체가 우위를 보여왔던 중동·아시아에서조차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중국·인도 업체의 시공 기술력과 현장 관리 능력이 아직은 국내 업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IB타워만 해도 중국 업체들이 대우건설보다 20~30% 싼 가격을 제시했지만 기술력과 신뢰도에서 밀려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다. 중국 업체들은 자국에서 경험을 쌓으며 시공 기술력을 키우고 있다. 건설업계는 “국내 건설시장을 먼저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건설업체 임원은 “공공·민간, 건축·토목 할 것 없이 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하는데 이런 상황에선 기술력 확보를 위한 투자를 할 수 없다”며 “최저가 폐지나 보완 등 국내 환경을 우선 바꿔야만 앞으로 해외 건설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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