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를 '악의 축'처럼 몰아세운 대통령..집권 후반 승부수

2015. 6. 25. 20:44C.E.O 경영 자료

국회를 '악의 축'처럼 몰아세운 대통령..집권 후반 승부수

일자리법안 3년째 발묶여..구태 언제까지"국민 중심에 둔 새로운 정치인만 존재해야"

 

매일경제 | 김선걸,채종원 | 입력 2015.06.25. 17:41 | 수정 2015.06.25. 20

 

◆ 朴,국회법 거부권 행사 / 朴대통령, 모두발언 16분중 12분 국회 작심비판 ◆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발언을 시작한 지 14분쯤 지나자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한 국무회의 참석자는 "차분히 원고를 읽던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연설하던 톤으로 목청을 높여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해 달라"는 대목이었다. 이날 박 대통령 발언의 하이라이트였다. 정치권에선 이날 박 대통령이 과연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냐에 관심을 보였지만 박 대통령은 예상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지금까지 경제 살리기와 제대로 된 국정을 펼칠 수 없었던 것이 국회의 구태 때문이라며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외친 것이다.

"어찌하나" … 곤혹스런 與지도부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정국이 요동치는 가운데 25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김무성 대표(왼쪽)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이승환 기자]
"어찌하나" … 곤혹스런 與지도부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정국이 요동치는 가운데 25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김무성 대표(왼쪽)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이승환 기자]

청와대 내부에선 전날부터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확정을 공개하지 말라는 '함구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당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직접 본인 목소리로 국민에게 여의도의 구태 정치 심판을 호소해 극적 효과를 노리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그간 몇 차례 정치권의 문제점을 지적한 적은 있지만 이처럼 여야를 싸잡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이 이제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집권 하반기에 '정치권에 대한 선전포고'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시작은 국회법이었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과 여야를 비판하는 데 약 16분간의 모두발언 중 12분가량을 할애했다.

박 대통령은 일단 앞으로도 행정 수반이자 국가원수로서 역할을 한 치도 침범받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시했다.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 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한 대목에서 그런 뜻이 읽힌다. 또 "한번 경제법안을 살려라도 본 후에 그런 비판을 받고 싶다"거나 "내년 총선까지 가짜 민생법안 껍질을 씌워 끌고갈 것인지 묻고 싶다"면서 반복적으로 향후 2년 반 동안 주요 국정과제를 이뤄내겠다는 염원을 다시 피력했다.

전체적으로 야당의 '정권 흔들기'에 흔들리지 않고 여당을 장악해 끌고 나가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곳곳에 묻어나는 발언이었다. 야당과 협상 주체로 주요 법안들을 처리해야 했으나 기대에 못 미친 유승민 원내대표를 직접 거론하며 비판한 대목은 그 어떤 가치보다 국민을 위한 국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이 정치권을 비판한 발언에선 향후 '일전불사' 결기마저 느껴진다. 박 대통령은 "오로지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 삶을 돌보지 않고 이익을 챙기는 구태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며 야당의 국정 발목 잡기를 겨냥했다.

문제는 향후 국회 움직임이다. 역대 최고 강도인 대통령 질타에 따라 오히려 정국은 얼어붙어 국회는 당분간 휴지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관련 대책을 담은 법안들만 남은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박 대통령의 '발목 잡는 야당' 프레임에 걸려들 수 있다는 판단하에 메르스 법안만 협조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외 정치 일정들은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박 대통령이 강공을 선택하면서 스스로 발목을 잡히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 정국에서 정부·여당이 경제 활성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한 서비스산업발전법, 관광진흥법 등은 장기 표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국회 정상화 여부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국회법 개정안 재의 여부가 1차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 의장이 본회의에 개정안을 상정한다면 새정치연합에는 의사 일정 복귀를 위한 명분이 생긴다. 설령 개정안이 부결되더라도 그 책임을 여당에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정 의장이 개정안 상정을 거부하면 여야 간 냉각기는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 또 국회가 다시 문을 열더라도 8월까지 정부 결산이 예정돼 있고, 9월부터는 국정감사와 내년 예산 심의를 위한 정기국회가 예정돼 있어 입법부와 행정부 간 힘 겨루기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선걸 기자 / 채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