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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人터뷰] 정의화 '새한국의 비전' 이사장 "바른 정치 실현하는데 옹달샘 역할 하고 싶다"
국민일보 입력 2016.06.14. 17:56
현역 정치인으로 활동할 때보다 외려 바빠 보였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만나러 지난 8일 여의도에 새로 둥지를 튼 ‘새한국의 비전’ 사무실을 찾았을 때 보좌진이 마침 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날 예정된 언론 인터뷰만 세 건이나 됐다. “국회의원은 안 해도 정치는 계속하겠다”고 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가 ‘새한국의 비전 이사장 정의화’라고 적힌 명함을 건넸다. 처음 쓰는 명함이라며 “디자인이 어떠냐”고 묻는다. 새로 일을 시작하는 만큼 신경이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 ‘새한국의 비전’은 그가 국회의장 퇴임 직전 설립한 싱크탱크이고, ‘이사장’은 그의 새로운 직책이다. 그는 “현재는 새누리당 당원”이라면서도 마음은 새누리당을 떠난 지 오래인 듯했다. ‘새한국의 비전’과는 별개로 따뜻한 보수를 지향하는 정당을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다음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또 다른 오해를 부르기 싫다”며 답변을 유보했다. 새한국의 비전은 6월 준비기간을 거쳐 7월 본격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퇴임 이후 어떻게 지냈나.
“마음을 정리했다. 앞으로 ‘새한국의 비전’을 어떻게 이끌지, 국회의원은 안 해도 정치는 한다고 했는데 어떤 양태로 정치를 할 것인지 이런 것들을 고민했다. 등산도 두 번 했다.”
-19대 국회를 ‘사상 최악의 국회’라고 하는 데 동의하나.
“동의할 수 없다. 최악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국민이 바라는 국회가 되지 못한 점에 대한 평가를 최악이라는 단어를 쓴 것으로 본다. 국민의 국회에 대한 신뢰가 5% 이내여서 국회가 끝날 때마다 평가가 좋지 않다.”
-20대 국회가 꼭 해야 할 것을 꼽는다면.
“국회가 제대로 일하고, 예측 가능하도록 국회법 개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중장기적 비전에 대한 어젠다를 깊이 있고, 영속성 있게 연구하는 곳이 없다. 대통령도 단임이고 국회의장도 임기가 2년에 불과해 단절되는 게 많다. 인구, 통일 등 중장기적 어젠다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행정부의 KDI 같은 미래연구원을 국회 안에 만들었으면 한다.”
-‘새한국의 비전’을 설립한 목적은.
“‘새한국의 비전’은 싱크탱크다. 정의화가 대권 노리고 만든 것 아닌가 오해하는 게 안타깝다. 새한국의 비전은 외교·국방, 삶의 질 등 5개 핵심 분야에 대한 우리 나름의 답을 찾아서 새로운 대한한국을 만드는 데 쓰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20년간 정치를 하면서 YS, DJ,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다섯 명의 대통령을 겪었는데 다들 대통령을 하고자 하는 권력욕은 강했는데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준비가 약했다. 퇴임한 국회의장으로서 답을 만들어 나라를 잘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에게 보은하고 싶다.”
-손학규 전 의원과 유승민 의원 등에게 참여를 권했나.
“전혀 그런 것 없다. 의기투합하면 뭔가 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그런 생각 전혀 갖고 있지도 않고, 추진한 것도 없다. 유 의원하고는 19대 마지막 본회의 후 잠깐 차 한잔 한 게 전부다.”
-우리 정치의 당면 과제는.
“대한민국은 1987년 엄청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9년이 흘렀다. ‘87년 체제’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 그대로 가자는 주장은 아주 미미하다. 늘 정치가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다 보니 우리가 꼭 가야 할 길을 놔두고 아닌 길로 갔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 나가는 게 정치인데 그런 점이 약했다.”
-‘87년 체제’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
“권력구조를 이원집정부제로 바꿔야 한다. 바로 의원내각제로 가는 건 상당히 이르다. 대통령 4년 중임제로 하되, 이원집정부제로 가는 게 맞다. 총선과 대선을 동시에 치르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음 대통령은 임기를 2년4개월로 줄여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런 각오로 개헌했으면 좋겠다. 개헌 여부와 관계없이 대선과 총선을 같이 하자는 게 내 지론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분열이다. 통합하려면 선거구제를 바꿔야 한다.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고, 권역별비례대표제도 도입해야 한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싸울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당이 제3당이 된 건 일시적 현상이다. 다음에 또 바뀐다. 제도적으로 다당제가 되도록 ‘중대선거구제+권역별비례대표제’로 가야 한다. 통합이 이 시대 가장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갈기갈기 찢기만 해서는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다. 그다음이 지방분권이다. 현재는 무늬만 분권이다. 중앙정부가 예산과 권한을 틀어쥐고 있는 한 실질적 분권은 어렵다. 87년 헌법을 급하게 만들어서 그런지 지방분권, 교육, 문화 등 세세한 부분이 아주 빈약하다.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
-대통령이 상시청문회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협치가 가능하다고 보나.
“국회의장 되고 나서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처음 뵀을 때 야당 지도부와 자주 만나고, 통화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땐 새누리당이 과반정당이었는데 지금은 제2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야당과의 진정한 대화와 소통에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국정운영이 상당히 힘들다.”
-10월 중 신당 창당 여부를 결심하겠다고 했는데.
“그거는 새한국의 비전과 관계없다. 그러나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치를 계속한다는 게 내가 대통령이 된다거나 하는, 자리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욕심이 있다면 국민으로부터 인정받는 정치를 하고 싶다는 거다. 노자에 청정위천하정(淸靜爲天下正)이란 말이 있다. 맑고 고요하게 나라를 다스리면 세상이 바르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 ‘바른 정치’의 나라를 만들 재주는 없지만 그런 나라를 만드는 데 옹달샘 같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내년 대선과 결부시킨다.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내가 의지를 갖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자가 지불가만(志不可滿·바라는 바를 남김없이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을 얘기한 게 아닌가 싶다.”
-새누리당과 정체성이 안 맞나.
“새누리당은 주류 보수 정당이다. 주류 보수 정당의 지향점은 안정 속 국가발전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후유증과 부작용을 최소화해 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른바 따뜻한 보수다. 가지지 못한 자, 배우지 못한 자, 노약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국가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근자에 와서 ‘안하무민(眼下無民)’해졌다. 높은 데 있어도 마음은 늘 국민의 머리 밑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굉장히 수구적이 됐고, 무능하고 나태해졌다.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보수 정당이 생겨야 한다. 내가 정당을 새로 만든다면 21대, 22대 총선 등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고 묘목을 심는 심정으로 할 거다.”
-새누리당과 차별화된 보수 정당을 만들 결심을 굳힌 듯하다.
“창의적이면서 따뜻한 보수 정당이었으면 한다. 시대 변화에 걸맞은 일을 하면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당이라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의회민주주의는 간접민주의의인데, 그것이 지금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직접민주주의를 가미해야 한다.”
-‘반기문 대망론’을 어떻게 보나.
“오래전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지도자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비범한 사람이면 좋겠다.’ 지금은 지도자 한 사람이 중심이 돼 끌고 가는 시대가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옆에서 도와주는 ‘아이들’이 있어야 하고, 조명 등 여러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이제는 서태지만 바라선 안 된다. 반기문 현상은 안철수 현상과 유사하다. 반 사무총장은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분이다. 오죽하면 유엔 사무총장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그를 대통령으로 모셔야 한다고 하겠나. 안 대표는 영혼이 맑은 사람이다. 반기문·안철수 현상이 왜 나타났느냐. 기존 정치권이 제대로 역할 못 하니까 국민이 유토피아적인 뭔가를 찾는 거다. 두 사람 모두 앞으로 잘 다듬어지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이번 반 총장의 일정이나 발언들을 봤을 때 누가 조언을 잘못한 게 아닌가 싶다. 외교관 출신이 저럴 리가 없다.”
-내년이 대선인데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인가.
“싱크탱크는 빅 텐트다.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함께 모여 나라를 걱정해야 답이 제대로 나온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른 쪽이 반대한다. 보수와 진보가 논의를 통해 정답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빅 텐트론’을 얘기한 거다. 그러나 정당은 다르다. 내가 수용 가능한 진보까지만 함께할 수 있다. 새한국의 비전과 신당은 전혀 별개인데 외부에서 자꾸 결부시키니까 혼동이 생긴다.”
-신당을 창당하면 싱크탱크에 참여한 사람이 배를 갈아탈 가능성이 높고, 대선후보도 내야 할 텐데.
“그 얘길 지금 하는 건 이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지 않으면 신당 창당은 잘 안 된다. 당장은 내년 대선밖에 없으니까 거기에 대해 답을 하면 또 다른 오해가 생길 수 있어 유보하겠다.”
-정 이사장이 꿈꾸는 대한민국, 대한민국 정치는.
“불가능할지 모르나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였으면 한다. 그리고 또 공정해야 한다. 공정사회가 되지 못하면 사회통합은 불가능하다. 갈수록 물질 중심 사회가 돼 가는데 이를 방치하면 공정사회 실현은 어렵다. 이것을 법이나 권력으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소셜 캐피털(사회적 자본)을 선진국 수준, 최소한 85%로 만들려면 법이나 제도가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마음가짐이다.”
만난 사람=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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