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선, R&D 너무 줄여 아베노믹스 훈풍에도 회복 안돼

2016. 6. 16. 19:55C.E.O 경영 자료

[이코노미조선] 일본 조선, R&D 너무 줄여 아베노믹스 훈풍에도 회복 안돼

  •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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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선 기자
  • 조선비즈 입력 : 2016.06.14 14:07 일본의 조선산업과 전자산업은 구조조정의 실패사례로 꼽힌다. 지나친 구조조정으로 미래 성장잠재력을 훼손하거나 소극적 개선을 추구하다 때를 놓쳤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장기 시장 침체에 따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두 차례(1976년, 1987~1988년)에 걸쳐 단행했고, 이에 따라 5000t 이상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가 61개사에서 26개사로 줄었다. /사진=블룸버그 제공
    일본 정부는 장기 시장 침체에 따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두 차례(1976년, 1987~1988년)에 걸쳐 단행했고, 이에 따라 5000t 이상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가 61개사에서 26개사로 줄었다. /사진=블룸버그 제공

    세계 조선산업엔 선박의 수명(20~30년), 호황기 수요 집중 등으로 변화 폭이 큰 중장기 수요 사이클이 있다. 이런 세계 선박 수요 변화 때문에 조선 시장점유율이 높았던 국가들은 시장이 꺼질 때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었다. 특히 일본 조선업이 그랬다. 1960년대 이후부터 2000년 무렵까지 세계 1위를 차지했던 일본은 1970년대 조선 호황과 그 이후 10년 이상의 긴 침체를 겪었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1970년대 초반 세계 조선 시장점유율이 50%에 가까웠던 일본(유럽 약 40%)은 시황이 악화되면서 선박 건조량이 5년 만에 64%가량, 고용은 약 74%로 대폭 줄었다.


    [이코노미조선] 일본 조선, R&D 너무 줄여 아베노믹스 훈풍에도 회복 안돼

    일본 정부는 장기 시장 침체에 따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두 차례(1976년, 1987~1988년)에 걸쳐 단행했고, 이에 따라 5000GT 이상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가 61개사에서 26개사로 줄었다. 일본 정부가 동원한 정책 수단은 선박 건조설비를 줄일 때 퇴직금 채무보증, 결손금의 이월 공제 지원, 사업 전환이나 제휴 시 기계 등의 특별 상각, 부동산 취득세 경감 등 세제 지원, 생산체제 정비 시 개발은행의 저리 융자와 특별 상각 등이었다.

    구조조정을 완료한 1988년 일본의 선박 건조량은 최고점이었던 1975년 대비 76% 감소했고, 고용은 70% 줄었다. 그러나 일본은 구조조정 시기에도 줄곧 세계 1위를 유지했고, 세계시장 점유율도 50%를 넘나들 만큼 높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높은 세계시장점유율로 인해 일본 조선업은 시장 변화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됐고, 구조조정은 더 혹독하게 추진됐다.

    ◆ 대형·중소 조선소 상생 전략

    특히 일본 정부는 1987~1988년 두 번째 구조조정 시기에서 선박 건조설비와 인력을 줄이도록 하면서 다수 중견·중소 조선소를 대형 조선업체와 그룹화해 과당경쟁을 줄이는데 힘썼다. 동시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 조선업체들이 대형 조선업체라는 ‘우산 속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했다.

    선박 자재 구매 능력, 건조 효율성 등 대기업의 경쟁력을 중소 조선업체들이 흡수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짝짓기 전략’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쓰비시중공업-이마바리조선, 히타치조선-나무라조선, 스미토모중공업-오시마조선이다.

    이후 일본 대형 조선업체는 조선 부문 비중을 줄이고 항공·에너지·기계 등 비조선 부문을 강화했다. 당시 일본 대형 조선업체는 조선 사업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라 에너지·기계 등 중공업 분야를 아우르는 경우가 많았다. 수익성 확보 차원에서 사업 다각화 전략을 펼친 것이다.

    살아남은 중소 조선업체는 조선 시장이 살아나면서 건조 규모를 확대해나갔다. 2000년 이전 일본 전체 조선 시장의 80%가량을 웃돌던 대형 조선업체의 선박 건조 비중은 2000년 이후 중소 조선업체에 따라잡혔고, 2010년 이후 20%대로 떨어졌다. 구조조정 시기에 대형 조선업체라는 우산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던 중소 조선업체들이 현 일본 조선업을 이끌고 있는 중심축이 된 것이다.

    이는 세계 선박 시장의 약 70%가 범용선박(탱커·컨테이너선·벌크선)이고, 그 범용선박을 주로 건조할 중소 조선업체의 기반이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는 한국 조선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인력 부족해 동남아서 양성

    하지만 일본의 조선업 구조조정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 시점에서 세계 조선 시장점유율이 10%대로 떨어졌고 연구개발(R&D)과 설계 인력이 대규모로 줄면서 조선업 발전 핵심 역량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업계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일본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책 권고, 생산 가이드라인, 조업 한도 등을 통해 건조 능력을 조정하면서 연구개발과 설계 인력을 대규모로 감축했다. 이로 인해 일본 내 대학교의 조선업 관련 학과가 조정됐고, 조선 부문 기술 인력 양성 경로가 축소됐다.

    일본은 아베노믹스 이후 엔저(円低)로 가격경쟁력을 회복하면서 선박 수주가 늘었지만 연구개발과 설계 인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일부 조선업체는 인도 등 동남아시아에서 기능 인력은 물론 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충원하고 있다. 기술 인력이 조정되더라도 일정 비율 다시 충원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래야 구조조정 이후 경쟁력을 잃지 않는다.


     일본 전자산업을 상징하는 도시바 등 대표 기업들이 해외에 매각되는 등 몰락하고 있다. /조선일보DB
    일본 전자산업을 상징하는 도시바 등 대표 기업들이 해외에 매각되는 등 몰락하고 있다. /조선일보DB

    ◆ 성공신화에 도취돼 세상 변화 놓쳐

    일본의 전자업계가 몰락하고 있다. 소니는 생존을 걱정하고 있고 샤프와 도시바(백색가전 부문)는 대만·중국 업체에 팔렸다. NEC, 히타치, 미쓰비시가 통합돼 설립된 메모리 반도체 업체 엘피다는 10년을 못 버티고 파산했다. 제때 구조조정을 하지 못한 일본 전자기업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전자산업 발전 과정은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1985년까지는 수출주도의 고도성장기였으며 1985년부터 2000년까지는 내수주도로 전환돼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했다. 소니·파나소닉·산요·아이와 등 수많은 기업들이 워크맨(1979년), 노트북(1985년), DVD플레이어(1996년) 등 혁신적인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개척했다. 반도체 시장도 일본이 석권했다. 1987년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 중 5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그러나 일본 전자산업은 2000년 이후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개혁을 진행했다. 일본의 전자기업들이 택한 방식은 과감한 구조조정보다는 ‘개선을 통한 극복’이었다. 1980년대 세계시장에서 여러 번의 성공신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는 1999년 ‘산업활력재생특별조치법(산업재생법)’을 도입해 민간기업 간 통합 및 사업통합에 대한 세제·금융지원과 독점금지 예외 적용 등을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해 구조조정을 유도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정치상황과 수시로 교체되는 정권에서 제각각의 성장전략을 제시하며 기업의 구조조정 촉진에 성공하지 못했다. 정부 주도의 합병을 통한 구조조정도 순탄하지 못했다.

    일본 전자산업의 구조조정 상황을 보면, 반도체 사업에서는 2000년 이후 급속히 구조개편이 진행됐다. 그러나 D램 세계시장 점유율 80%로 1위를 차지했던 1980년대의 영광을 되돌리지 못하고 후발주자에게 왕좌를 넘겨주게 된다.

    가전 및 AV 사업에서는 공장의 통합, 별도 법인화 그리고 공장 자체의 양도 등 공장 재편이 진행됐다. 액정 패널 분야는 파나소닉으로 통폐합이 단행됐지만 결국은 산업이 없어질 정도로 몰락했다. 파나소닉은 2013년 PDP TV사업에서 철수한 데 이어 최근 TV용 패널 생산에서도 손을 뗐다. PC산업 역시 2010년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 10%를 겨우 유지했지만 최근 6% 아래로 주저앉았다. 일본 전자산업의 국내 생산액은 2000년 약 26조엔에서 2012년 약 12조엔으로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했는데도 업계는 내수시장 나눠먹기에 골몰했고 특히 기술을 중시하는 일본의 강점이 거꾸로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 위기 감지 못해 구조조정 시기 놓쳐

    1980년대 일본 반도체는 세계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으며 전자제품 또한 세계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일본 제품이 높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수한 품질이었다.

    우수한 제품으로 세계시장 확보에 자신감을 얻은 일본의 기업들은 더욱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기존 제품의 개선을 통해 고기능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아 시장을 확대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에게는 불편한 기능이 과다하게 적용돼 사용하기 어렵고 비싼 제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반도체의 경우 PC의 보급으로 인해 D램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당시 일본 반도체업체는 호황기를 맞아 D램의 내구성을 높이고 고기능을 추구해 고가의 제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PC의 교체주기에 비해 필요 이상의 내구성을 갖춘 고기능 제품은 PC 제조업체들에게 외면당하고 저렴한 가격의 제품에 밀리게 된 것이다.

    또 휴대전화의 경우에는 세계 최초로 컬러 액정화면을 탑재했고 다양한 음색의 벨소리 제공, 인터넷 메일 연동 등 최신 기술을 가장 먼저 내놨다. 그러나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보다는 기술자가 개발하고자 하는 기술이었다. 게다가 국제표준을 맞추기보다는 일본 국내 소비자 위주로 개발해 세계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게 된다.

    스마트폰이 출시됐을 때도 이미 일본 휴대전화에는 음악재생, 사진촬영, 인터넷 이용 등 초기 스마트폰의 기능이 대부분 탑재돼 있었다. 이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 전자산업의 구조조정이 늦게 진행된 이유 중 하나로 기술 자체는 우수하지만 소비자의 니즈와 일치하지 않는 기술 보유로 인해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한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전자산업이 쇠퇴기에 접어든 이후 경영실적이 회복되지 못한 것은 대기업 위주로 진행된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원인을 찾기 위해 먼저 구조조정의 시기가 적절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전자산업의 구조조정은 2000년 전·후 쇠퇴기에 접어들어서 비로소 시작된다.

    하지만 일본 전자산업의 무역수지 추이를 살펴보면 1985년을 정점으로 이후 축소되기 시작한다. 이미 세계 시장 점유율이 낮아지고 수출 주도형에서 내수형으로 산업구조가 변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이 감소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당장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 전자산업의 구조개편 과정을 살펴보면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방만한 백화점식 사업 구조를 쉽게 버리지 못했다. 같은 회사 이름의 인수합병이 수차례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시간만 보내게 된 것이다. 기존 성공신화는 쉽게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기존 제품의 개선을 통한 신제품으로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일본 전자기업들은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 가전의 구조조정은 아직 끝났다고 할 수 없다. 지난 1월에는 1915년 창사 이래 일본의 가전을 이끌어온 샤프가 홍하이에 매각됐고 3월에는 도시바의 백색가전 부문이 중국에 부분 매각돼 주목을 끌었다. 오랜 시간에 걸친 구조조정은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그 사이 일본의 전자산업은 더욱 더 어려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