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北 도발에 관성적 대응 반복하는 군…"유사시 어쩌나"

2016. 9. 17. 19:10이슈 뉴스스크랩

[박수찬의 軍] 北 도발에 관성적 대응 반복하는 군…"유사시 어쩌나"

미국이 13일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응해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2대를 한반도 상공에 투입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지 나흘 만에 이루어진 B-1B의 투입은 강력한 파괴력을 갖춘 전략무기를 통해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무력시위를 벌인 것으로 평가된다. B-1B는 B-52, B-2와 함께 미국의 3대 전략폭격기로 폭탄과 미사일 탑재 능력이 뛰어나 한 번의 출격으로 대량의 폭탄을 투하할 수 있다.

미 공군 B-1B 전략폭격기. 13일 한반도로 출격했다. 미 공군

B-1B 한반도 전개 직후 이순진 합참의장은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과 함께 오산 미 공군기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은 핵개발을 진척시킬수록 정권 자멸의 시간이 앞당겨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며 “수차례 경고했듯, 북한이 만약 군사적 도발을 감행한다면 체제가 뿌리째 흔들리도록 강력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북한이 도발할때마다 한미 군 당국이 비슷한 방식으로 대처하면서 효과가 떨어지는 관성적 대응만 반복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미 공군 F-22 스텔스 폭격기. 공군

◆ 틀에 박힌 전략자산 전개와 말폭탄, 대북 억제력 없다

군 안팎에서는 북한이 대형 도발을 감행할 때마다 떠도는 예측이 있다. “군은 강경 대응한다고 북한 상대로 말 한번 세게 하고, 미군 전략자산 불러서 무력시위를 할 것이다.” 

이 말은 상당 부분 사실에 기초한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당시 군 당국은 동원 가능한 전략자산을 모두 한반도로 집결시켰다.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을 필두로 스텔스 전투기 F-22, LA급 핵잠수함이 4개월동안 한반도 일대를 누비며 북한을 압박했다. 같은해 11월 연평도 포격도발 직후에는 핵항모 조지 워싱턴이 우리 해군과 연합훈련에 돌입했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당시에는 미군 전략자산들이 한반도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3개월동안 핵항모와 F-22 전투기, B-52H와 B-2 전략폭격기, 핵잠수함이 한반도에 전개해 우리 군과 합동훈련을 벌였다. 이같은 패턴은 올해 1월과 2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지난 9일 5차 핵실험에서도 반복됐다.

전략자산은 유사시 핵무기를 운영할 수 있어 북한에 대해 전략적 무력시위가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발생할때마다 전략자산이 전개하면서 효과가 예전같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6.25 당시 미 공군의 폭격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된 기억때문에 전략폭격기가 한반도에 뜨면 북한이 꼬리를 내리던 시절은 지났다는 것이다. 전략자산을 아무리 동원해도 추가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막지 못했다는 것도 전략자산 전개의 실효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우리 군 당국의 강경 발언 역시 ‘말폭탄’ 이상의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 직후 출범한 김관진 국방장관 체제에서 군은 “도발 원점을 타격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반복했다. 2014년 5월 우리 군이 국내에서 발견된 무인기에 대해 “북한이 보낸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자 북한이 “날조하지 말라”고 반박한 것을 놓고 김민석 당시 국방부 대변인이 “북한은 나라도 아니다. 없어져야 할 나라”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육군 BMP-3 보병전투차가 표적을 향해 사격하고 있다. 육군

지난해 8월 북한 지뢰도발 직후에는 “북한이 자신들의 도발에 응당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지난 9일 5차 핵실험 이후에는 “대량응징보복을 감행하겠다”며 평양의 일부 지역을 초토화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군 당국의 강경 발언은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때마다 나오는 단골 멘트다. 하지만 대북 억제력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군인들에게는 북한 도발을 우려하는 국민들에게 이성에 기초한 군의 대응책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실제 발언은 정치인과 별 차이가 없다. 

군의 경고를 듣고도 북한이 도발을 멈추지 않으면 군 당국의 경고성 발언은 더욱 강해진다. 새롭고 자극적이며 공포와 충격을 주는 표현을 찾다보니 발언수위도 점점 올라간다. 결국에는 북한 도발을 저지하지 못하면서 경고성 발언에 쓰이는 표현은 북한의 대남 비난과 다를 바 없는 수준에 이른다. 이같은 강경 발언은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대해 적대감만 키우는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 주민들이 “나라가 없어지느니 김정은 정권이라도 있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이성의 언어로 표현되는 북핵 대응책이 필요하다

군의 감성적이면서도 관성적인 북한 도발 대응은 군 자체의 문제로 끝날 일은 아니다. 체계적인 북한 위기대응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정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 당국은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때면 말폭탄과 더불어 새로운 무기를 도입해 대응하려는 관성적 자세를 보여왔다.  

한국형 MLRS가 로켓을 발사하고 있다. 국방부

지난 2월7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자마자 군 당국은 주한미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협의를 발표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한다는 이유였지만, 1개 포대를 경북 성주에 배치하기로 하면서 “수도권은 포기했냐”라는 비판과 함께 추가 도입 요구가 제기됐다. 2014년 북한 무인기가 침투하자 이를 탐지할 레이더를 도입하는 사업을 추진했고,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에는 해상작전헬기, 차기전투기, 전술비행선, 무인정찰기 등을 긴급 도입해야 한다며 수조원을 책정했다. 

영국 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쓰이는 말 중에 ‘패닉 바이’라는 단어가 있다. 리그에서 강등 위기에 빠진 구단은 공포에 빠진 팬들의 분노에 직면한다. 패닉에 빠진 구단은 강등을 피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선수를 데려온다. 선수를 팔려는 팀은 덤터기를 씌우며 이익을 극대화한다. 반면 선수를 사는 팀은 비싼 돈을 주고도 구단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국가안보도 마찬가지다. 체계적인 위기대응전략이 없는 상황에서 당장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할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힌 정부는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불능”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을 압박할 것” 등 분노 섞인 감성적 발언을 쏟아냈다. 그 선봉에는 “평양을 초토화한다”고 말하는 군이 있다.

육군 아파치 공격헬기. 육군

다음 단계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거나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올 차례다.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추가 생산, 특수전용 수송기와 헬기, 무인정찰기에 F-35A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제는 사드를 구입하자는 말도 나올 판이다.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위기 대응 과정에서 냉철하고 이성적인 군사, 외교 전략으로 쿠바에 러시아 미사일이 배치되는 것을 막았다. 국민들은 케네디 대통령처럼 이성에 기초한 정부의 위기대응체계를 보고 싶어한다. 말폭탄과 감성적 대응, 우는 어린애 사탕으로 달래듯 “첨단무기 들여오면 북한은 꼼짝 못해”식의 군사전략을 믿기에는 국민들의 이성이 정부보다 한 수 위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