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3만명 시대> ③정착지원체계 문제는 없나

2016. 10. 9. 21:18이슈 뉴스스크랩

<탈북민 3만명 시대> ③정착지원체계 문제는 없나

'이주형' 탈북민 증가세…정착 지원책 재조정 필요

사회적 편견도 큰 걸림돌…"자유민으로 부르자"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곽명일 기자 = 국내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 어느덧 3만 명에 육박하면서 탈북민의 남한 사회 안착을 위한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18일 가족과 함께 탈북한 의사 출신의 40대 남성이 인천의 한 빌딩 유리창을 닦다 추락해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은 정부의 탈북민 지원 정책의 맹점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 남성은 아내의 간 질환과 고혈압 치료를 위해 2006년 탈북해 남한에 정착했으나 치료비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죽기 전까지 공사장에서 건설근로자로 일했다.

연합뉴스

합창 준비하는 탈북청년들
합창 준비하는 탈북청년들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남북한 출신 청년들로 구성된 '하나통일원정대'가 11일 오후 명동성당에서 '광복 71주년 기념 통일기원 합창' 행사를 열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청년들의 모임인 '위드-유'(With-U)는 남북한 출신 청년들로 구성된 하나통일원정대를 결성해 지난달 23일부터 28일까지 독일 베를린을 방문, '한반도 통일기원 합창공연'을 했다. 남북 청년 합창단원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2016.8.11 hama@yna.co.kr


어려운 상황에서도 의사로 재기할 꿈을 잃지 않고 묵묵히 생활했던 고인은 탈북민으로서 직장에서 받는 차별과 불합리한 인사제도를 가장 힘들어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탈북민 3만명 시대에 남북통합의 관점에서 현행 탈북민 정착지원 체계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통일부는 1997년 1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와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남북통합 대비를 목표로 탈북민 지원업무를 주관하고 있다.

법 시행 초기에는 현금지원이 중심이었으나 이런 방식이 이질적인 경제체제에서 살아온 탈북민들에게 적절치 않다고 판명되면서 2005년부터 인센티브를 토대로 하는 자립·자활 방식으로 정책 방향이 전환됐다.

그 결과 2013년 9.7%였던 탈북민 실업률은 지난해 4.8%까지 떨어졌다. 탈북민 생계급여 수급률도 2013년 35.0%에서 작년에 25.3%로 약 10%포인트 가까이 감소했다.

다만,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이주형' 탈북이 증가세인 데다 최근 탈북자일수록 북한에 있을 때 보통·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도 커지고 있다.

통일부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 수료생을 상대로 탈북 동기를 조사한 결과 '자유 동경', '북한체제에 대한 불만' 등으로 탈북했다는 비율은 2010∼2013년 39.6%에서 2014∼2016년 64.9%로 급증했다.

또 북한에 있을 때 자신의 생활 수준에 대해 보통·중산층 이상이라 생각하는 비율은 2001년 이전 탈북자가 23.5%, 2014년 이후 탈북자가 66.8%로 조사됐다.

이런 경향에 맞춰 지원정책도 정교하게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수암 통열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탈북민 정착지원 정책의 본질이 '보호'에서 '자립·자활'로 변하면서 성별, 연령별 특화된 정책이 점차 강화되는 추세"라면서 "탈북 동기, 가족구성, 인구학적 배경 등을 고려해 좀 더 정교한 방향으로 지원정책이 재조정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연구위원은 "전수에 가깝게 북한이탈주민 실태를 조사하는 남북하나재단에서 정착지원정책 재조정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해 탈북민들의 인식과 사고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조사항목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남북하나재단은 "기회, 자립, 통합 등 여러 요소를 가지고 평가한 탈북민 정착지수를 내년까지 개발할 예정"이라며 "탈북민의 일자리 및 교육 기회, 경제적 자립 능력, 대한민국 동화 수준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는 탈북민들의 정서적 고립을 해소하고 일반 주민과의 소통을 돕기 위해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남북통합문화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마곡지구 입주자대표연합회는 호소문과 플래카드를 통해 결사반대에 나섰다.

탈북민 정착 시설을 혐오시설로 받아들이고, 탈북민들을 '나와 다른 국민'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편견은 탈북민들이 남한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가장 걸림돌로 작용한다.

탈북 여성인 이나연(가명·34) 씨는 "탈북민을 배고픈 노숙자처럼 여기는 사회적 시선으로 정착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인식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그간 정책적 노력으로 탈북민의 주요 정착지표는 꾸준히 개선되는 추세이나, 탈북민에 대한 부정적 사회인식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탈북민의 좋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 매체 등을 통해 자꾸 알려야 한다"며 "탈북자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가 많고, 또 그런 점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광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은 "탈북민이 3만명이어도 대한민국 인구 5천100만명 대비 0.06%에도 못 미친다"며 "아직 상당수 국민은 탈북민과 교류, 소통한 경험이 부족하고, 이해는 더욱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탈북민이나 새터민이라는 명칭 자체가 사회적 편견을 유발한다며 '자유민'이라고 부르자고 주장도 나온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탈북민이라는 용어는 낙오자, 도망자, 이탈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면서 "북한에 가서도 환영받을 수 있는 명칭인 '자유민'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redflag@yna.co.kr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연합뉴스

'북한이탈주민, 특별한 웨딩마치'
'북한이탈주민, 특별한 웨딩마치'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한 북한이탈주민 부부가 합동 결혼식에 앞서 촬영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개교 70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합동결혼식은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치르지 못했던 북한이탈주민 부부 7쌍을 초청해 성낙인 총장의 주례로 진행됐다. 2016.8.6 ksuj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