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악한 뉴타운.. 해제 여부 놓고 소송전·폭력 난무

2017. 2. 25. 20:07건축 정보 자료실

험악한 뉴타운.. 해제 여부 놓고 소송전·폭력 난무

장상진 기자 입력 2017.02.25 03:01

 

서울시, 진척 부진하자 출구전략
주민투표로 해제 결정하게 해.. 주민들 찬반 갈려 곳곳 파열음
기권·무효표는 '반대'로 계산
6년째 질질 끄는 정책도 문제

#1. 24일 오전 10시쯤 서울시청 청사 1층 로비. 박원순 서울시장이 행사에서 축사를 마치려는 순간, 청중 속에 섞여 있던 한 70대 남성이 갑자기 흉기를 꺼내 자해했다. 생명엔 지장이 없었지만 일대 소란이 일었다. 장본인은 서울시내 한 뉴타운(재개발·재건축 정비구역) 조합장. 그는 2015년 박 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에 따라 자신의 지역이 뉴타운 구역에서 해제된 뒤, 후속 지원금을 둘러싸고 시와 갈등을 빚어왔다.

24일 서울 성북구 장위14구역 주택가에 뉴타운 해제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타운 해제에 찬성하는 주민들과 반대하는 주민들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곳곳에서 소송 등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장상진 기자

#2. 이날 오후 서울 성북구 장위동 뉴타운 '장위 14구역'. 낡은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골목길 양쪽으로 벽보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한결같이 뉴타운 사업을 반대하고 조합장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악랄한 검은 속셈' '광란의 사기극' '공갈·협박' 등 거친 표현들이 벽보를 장식했다. 빛바랜 벽보 위에 또 벽보를 붙여 이 갈등이 어제오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선 조만간 뉴타운 해제를 위한 주민 투표가 시작된다. 60대 주민은 "동네에 상가를 가진 주민들이 반대해서 재개발이 물 건너갔다"면서 원망했다.

사업 진척이 지지부진한 뉴타운을 구역에서 해제할 수 있도록 한 서울시 '출구전략'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해제되지 않은 지역은 주민끼리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갈등을 빚고, 해제된 지역은 보조금을 두고 민관(民官)이 갈등을 빚는다.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출구전략이 지나치게 장기화한 데 따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폭력 사태에 소송… 뉴타운 해제 갈등

뉴타운 사업이 지지부진한 지역에서 편법과 소송, 폭력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성북구청에는 장위타운 14구역 주민(토지·건물 소유자) 505명 명의의 뉴타운 해제 동의서가 접수됐다. 지역 전체 주민(1493명) 3분의 1을 넘는 33.8%에 해당해, 전체 주민 투표를 열게 됐다.

하지만 조합 측은 반발한다. 뉴타운에 반대하는 주민 52명이 자신의 집 지분을 쪼개 사실상 '1인 2표'를 행사했다는 것이다. 박용수 조합장은 "반대파가 700만원짜리 건물 지분 70분의 1, 다시 말해 10만원짜리 지분을 가진 사람 수십 명을 만들어내 뉴타운 계획을 엎었다"며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1㎞쯤 떨어진 장위 11구역에서는 작년 12월 주민 간 폭력 사태까지 벌어졌다. 뉴타운 해제를 원하는 50대 주민이 길에서 뉴타운 홍보 전단을 돌리던 70대 주민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친 것. 피해자는 코뼈가 부러졌고, 가해자는 경찰에 입건됐다. 이 지역은 그 직후 벌어진 주민 투표에서 뉴타운 구역이 해제됐다. 조합은 곧바로 무효 소송을 냈고, 서울시는 맞소송으로 응수한 상태다.

"거친 정책 오래 끌어 갈등 유발"

뉴타운 해제 갈등은 전임 이명박·오세훈 시장 시절 너무 많이 지정한 게 근본 원인이다. 지정만 하고 사업이 삐걱대자 후임 박원순 시장은 2012년부터 출구전략을 폈다. 전문가들은 출구전략 자체에 대해 큰 이의가 없었지만, 그 '과정'엔 문제를 제기했다.

당초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내 뉴타운 해제 관련 조항은 2016년 1월 만료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조례를 통해 이를 올해 4월까지로 한 차례 연장했고, 지난 21일에는 다시 2018년 4월까지로 재연장하는 법안이 서울시의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구역 해제 요건도 완화했다. '조합원 50%가 사업에 반대하는 경우'이던 요건을 작년 3월 조례 개정을 통해 '토지 등 소유자 3분의 1 이상의 해제 요청에 따라 투표를 시행, 사업 찬성자가 100분의 50 미만으로 나온 경우'로 바뀌었다. 찬성표만 집계하고, 기권이나 무효표를 모두 '뉴타운 반대' 의견으로 집계하도록 한 셈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애초에 사회적 갈등 가능성을 내포한 시한부 법안 조례를 잇달아 연장한 것도 문제고, 해제 요건을 중간에 너무 쉽게 완화한 것도 갈등이 커진 요인"이라고 했다. 이런 와중에 2002년 이후 서울시내에 지정된 312개 뉴타운 중 약 30%에 해당하는 95개 지역이 구역 해제됐다. 해제된 지역에서는 그간 지출한 사업비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놓고 갈등이 빚어진다. 10여년간 개·증축에 제약을 받으면서 슬럼화한 지역을 되살리는 것도 난제(難題)다. 이동현 KEB하나은행 부동산센터장은 "뉴타운 사업이 지지부진한 사이 주택의 노후화 정도는 더욱 심해졌을 것"이라며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 직권해제하더라도 이 지역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