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28. 22:10ㆍC.E.O 경영 자료
[WEEKLY BIZ] 맨땅에서 일군 10조원 대기업…하림 김홍국 회장의 '15도 경영'
입력 : 2017.05.27 08:00
재계 순위 30위 오른 하림 김홍국 회장
김홍국(60) 회장이 1986년 창업한 하림그룹은 우리나라 산업계에서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다. 양계장 등으로 시작해 계열사 58개, 자산 총액 10조원이 넘는 국내 최초의 농업 대기업(공정거래위원회 기준 재계 30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역정도 독특하다. 그는 축산 파동(1982년), 외환 위기(1997년), 2003년 조류독감은 물론이고 3.3만㎡(약 1만평) 규모 도계(屠鷄·닭 도살) 공장이 잿더미로 변했을 때조차도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2015년에는 자산 4조4000억원 규모 해운기업 '팬오션'을 인수해 곡물 유통부터 사료와 축산, 육가공까지 아우르는 수직 계열화의 구도를 완성했다. WEEKLY BIZ는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하림타워 집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계열사 CEO 평균 임기 11.4년
- ▲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9건의 M&A(인수·합병)를 모두 성공시킨 비결에 대해 “기존 하림 사업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업체만 공략한다는 철칙이 있다”고 말했다. / 이진한 기자
―성공 비결이 궁금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일에 몰입해 도전한 결과일 뿐이다. 11세 때 외할머니가 선물로 준 한 마리 7원 하던 병아리를 큰 닭으로 키워 마리당 250원에 팔았다. 당시 쌀 한 가마니가 3000원 하던 시절이었다. 그냥 재미있었다. 남들이 사양산업이라는 농업 분야에서 사업을 키워온 노력을 평가해주는 데 감사하고 자부심도 느낀다."
―임직원에게 '15도(度) 경영'을 강조한다고 들었다.
"15도 경사길을 궁리하며 오르라고 말한다. 15도인 이유는 15도는 쉬지 않고 계속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이라는 것은 어느 한순간 생기고 마는 것이 아니다. 40도, 90도의 길을 한 번 올라갔다가 계속 쉬면 의미가 없다. 15도 경사길을 그냥 걷기만 하면 안 되고 '궁리하면서 걷는' 게 중요하다. 궁리는 창의성을 말한다."
그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일에 '계속 도전'하는 게 중요하다"며 "하림의 경영 철학은 15도 정도 경사길을 꾸준히 걸으면서 '상식'을 바탕으로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함 추구란 무슨 뜻인가.
"단순함이란 군더더기 없는 본질이 핵심이다. 기업에 이를 접목하면 직원 한명 한명을 적성(適性)에 맞게 배치하는 것이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 사람은 모두 천재다. 적성에 맞는 문항을 내주면 모두 IQ 150 이상 나온다. 적성대로 뽑으면 인재를 뽑는 것이다."
―하림은 어떻게 직원을 적성에 맞게 배치하나.
"신입 사원 채용 때 성품 검사와 적성 검사를 거쳐 배치한다. 뚜렷한 노하우나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검사와 면접, 상사(上司)와의 상성(相性), 감(感)을 고려해 결정하면 얼추 맞는다. 하림그룹엔 순환 근무가 없다. 전문성을 고도화하기 위함이다. 전체 직원의 80~90%는 처음 배치받은 부서나 분야에서 근무 중이다."
하림그룹에 장수(長壽) CEO가 유독 많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림의 7개 주력 계열사 CEO의 평균 근속 연수는 11.4년으로, 우리나라 상장 기업 CEO의 평균 근속 연수(3~4년)의 3배에 달한다.
팬오션 등 M&A 9건 모두 성공
- ▲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1988년 하림식품 대표이사 시절 농장 관계자들을 초청해 계열화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계열화 사업은 하림과 같은 기업이 닭·오리 등 개별 농장과 계약해 사육부터 도축·유통·판매까지 일괄 운영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농가 입장에서는 사전 계약으로 안정된 수익을 낼 수 있다. / 하림그룹
―농장과 공장, 시장을 통합한 '삼장(三場) 통합 경영'을 정착시켰는데.
"20세 때 닭, 돼지 값이 폭락했는데도 가격이 그대로인 소시지를 보며 '나도 소시지를 만들어 팔까'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미국곡물학회에서 일했던 고(故) 박영인 박사의 통합 경영 이론을 접하면서 유통 원리를 깨닫고 사업 방향을 잡아나가게 됐다."
'삼장 통합 경영'은 기업이 개별 농장과 제휴하는 계열화 시스템 방식에서 출발, 사업체를 가공업, 사료업, 물류업 등으로 확장해 리스크(위험)를 줄이고 안정 경영을 꾀하는 방식이다. 김 회장은 한국 양계 업계 최초로 병아리 위탁 사육 시스템을 도입해 육계(肉鷄) 사육 농가와 '윈·윈' 구조를 만들었다. 또 사료(천하제일사료), 돈육(선진·팜스코), 해운(팬오션) 등 총 9건의 인수합병(M&A)을 모두 성공시켜 '삼장 통합 경영'을 실현했다. 그는 특히 '팬오션' 인수를 통해 하림그룹 사업의 기반인 곡물 분야에 본격 진출하는 길을 열었다. 하림은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 중 가장 많은 210만t(약 5200억원) 규모 곡물(사료용)을 수입했다.
―팬오션 인수 때 '승자(勝者)의 저주'라는 지적도 나왔다.
"경기가 좋을 때는 곡물 가격의 반 이상이 운임으로 나갈 정도로 곡물 사업에서 해운 비중이 크다. 해운 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했는데 때마침 매물이 나와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제일홀딩스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남아 있는 3300억원 차입금을 올 7월까지 모두 상환할 계획이다. '승자의 저주' 등 얘기가 나왔지만 우리는 '15도 길'을 걷는다."
―제2의 카길(Cargill·세계 1위 곡물 업체)을 목표로 하는 걸로 알고 있다.
"팬오션을 통해 작년부터 곡물 운송업을 시작했고 곡물 사업을 중심으로 향후 50년에 걸쳐 10단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금은 3단계까지 와 있다. 5년 내에 미국이나 브라질에 곡물 엘리베이터 등 곡물 선적 시스템을 갖출 예정인데 이게 6단계쯤 된다. 최종 10단계는 바이오 에탄올 등 바이오 에너지, 제약 사업이다. 모두 곡물을 기반으로 한다."
"시장은 大學보다 훨씬 큰 大大學"
―최근 국내에서 대기업 폐해론과 중소기업 육성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대기업은 악(惡)하고 중소기업은 선(善)하다는 이분법적 사고부터 바꿔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나름대로 역할이 있고 시장에서 생태계를 이루며 공존한다. 규제는 독과점과 사기, 폭력 등 시장 자율을 해치는 행위를 막는 것에 그쳐야 한다. 나는 시장을 대대학(大大學)이라고 부른다. 시장이 대학보다 훨씬 크다는 뜻이다. 시장은 우리에게 훨씬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시장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
―'대대학'이라는 표현이 신선하다.
"한 유명 농대에서 강의했는데 졸업 후 농업을 하겠다는 학생이 80명 중 1명뿐이었다. 모두 점수에 맞춰 들어와서 적성을 찾지 못한 채 관심도 없는 수업을 들은 것이다. 반면 시장은 참여자들이 관심 있는 분야의 지식이 끊임없이 교환되는 곳이다. 시장이 주는 시련을 통해 업그레이드된다."
―존경하는 경영인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다. 그는 경영은 지식이 아니라 성품과 혜안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조선소가 없는데 지폐 하나(거북선이 그려져 있는 500원권)로 선박을 수주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를 행동으로 실천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도 좋아한다."
―2세 상속 등 후계 구상은.
"상속은 경영 철학과 기업가 정신, 두려움과 리스크를 함께 넘겨주는 것이다. 오너가(家) 자녀가 경영자로서 적성에 맞고 훈련을 잘 받아 경영을 이어간다면 기업이나 국가 경제에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다면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게 당연하다. 나는 아들(김준영씨)의 경영 능력이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주식만 넘겨줄 것이다."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26/2017052601981.html?newsstand_r#csidx8e8fe3151139b0abeba35f018e881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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