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사무실 앞에서 자유한국당 정우택(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새해 예산안 관련 합의문을 취재진에게 보이고 있다. /뉴시스 |
정부는 내년 예산에서 경찰, 소방, 복지 등의 분야 공무원을 대폭 증원해 청년실업자를 구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야는 내년 공무원을 9400여 명을 늘리기로 합의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경찰관 2만명 증원 공약이 있었고 실제 증원되었다.
문제는 그렇게 증원된 경찰관들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것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경찰을 증원해왔는데도 일선 파출소, 지구대, 형사, 교통경찰은 늘 인력 부족에 허덕인다. 야간에는 불만 켜있고 경찰관도 없는 치안센터가 많다. 파출소에 가면 정년을 앞둔 경찰관과 갓 경찰학교를 졸업한 새내기 순경이 대부분이다.
도대체 증원된 경찰관들은 어디에 가 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하나씩 따져보자.
우리는 시위가 있거나 없거나 광화문 광장이나 주요 공공기관, 외국 대사관 주변에 경찰관들이 상주 근무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 대사관 밖에는 경찰이 버스를 대놓고 24시간 상주한다.
이들 대부분이 새내기 경찰관들이다. 어렵게 노량진학원에서 평균 3수 이상을 해가며 속칭 사법시험보다 어렵다는 ‘순경고시’를 통과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인력이 부족한 파출소나 민생 치안 현장에 있지 않고 버스에서 속칭 ‘뻗치기’ 근무나 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청과 지방경찰청은 어떨까? 경찰대학을 졸업한 경력이 짧은 경찰관들로 채워진다. 그마저 이들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늘 신설되는 TF팀, 혁신위원회 등으로 차출된다.
소위 2, 3급지 경찰서에 가면 각 과의 서무업무를 순경들이 담당한다. 심지어 지방청에서는 경장, 경사가 문서 기안을 하고, 경위 이상만 되어도 현장은 뛰지 않고 결재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청은 어떨까? 경정 이상은 지시만 하고 보고와 결재만 받는다고 한다. 경무관 이상이 되면 상근 경찰관이 부속실에 배치되어 있고 이들이 전화를 받는 등 비서역할을 수행한다.
현장을 경험해야 할 젊은이들을 현장으로부터 차출
상황이 이렇다 보니 늘 선진국보다 경찰인력이 부족하다고 하고 증원해야 한다고 하면서 항상 현장에는 경찰관이 부족한 것이다.
경찰 인력부족 문제의 해답은 인력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인력 재배치에 있다. 112신고를 받고서 출동하는 파출소 직원에게 “빨리 처리내용을 보고하라”고 재촉하는 그런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문서편집을 잘하는 소위 젊고 유능하다는 경찰관들을 현장에서 본청, 지방청 등으로 차출한다. 경찰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한참 파출소, 지구대에서 현장을 경험해야 할 젊은이들이 현장으로부터 차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경찰대학교를 졸업하고 승진한 고위층 간부 중 파출소, 지구대 경험 3년 이상자가 거의 없다고 하지 않는가.
한참 일을 배울 이들 젊고 유능한 경찰관 스스로도 파출소, 지구대, 조사, 형사업무를 꺼리고 있다. 왜냐하면 주취자 등 민원과 업무에 시달리고 잘못하면 징계도 받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을 피해 본청, 지방청 기획부서와 교육기관으로 가거나 외국유학을 떠나기도 한다. 심지어 로스쿨 진학준비를 위해 휴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승진과 포상도 지방청, 본청 등 기획부서에서 많이 차지한다. 인사권자인 윗사람이 볼 때 자신에게 보고를 자주 많이 하고 기획을 잘하는 사람이 유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선 파출소에서 주취자나 신고사건과 씨름하고 강·절도범죄를 아무리 많이 해결해도 경찰청장 표창한번 받기가 어렵다. 경찰청에 근무하면 흔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 경찰청장 표창인데도 말이다.
또한 경찰청에 근무하고 싶어도 서울에 집이 있어야 근무하니 집이 없거나 돈이 없는 사람은 근무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 보니 경찰청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서울에 집이 있거나 소위 젊고 유능하다는 사람들로 우선 채워진다. 일선에서 사건처리 현장 경험이 많은 노련한 순경출신 경찰관들은 점점 경찰청에 근무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문서 기안 잘하는 인물이 유능한 경찰로 대접
이처럼 현장을 모르는 윗선들이 경찰조직을 움직이다 보니 일선 파출소와 지구대에 내려오는 각종 공문과 지시문서가 현장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파출소, 지구대에 가보면 본청, 지방청, 경찰서에서 내려온 온갖 지시공문서로 가득 차있다. 현장 인력은 부족한데 지방청, 경찰청 조직만 신설하고 보고와 지시 사항만 자꾸 늘어난다.
순찰하고 사건처리하고 주민들 속으로 달려가야 하는 일선 경찰 인력과 자원을 지원해주지 않으면서 본청, 지방청에서 감찰직원들이 파출소 등 현장으로 나와 근무일지에 기재된 대로 근무하지 않는다고 압박식 감찰을 하는 실정이다.
필자는 심지어 경찰청 일부 직원들이 일선 파출소나 지구대 직원들은 문서 기안도 할 줄 모른다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보았다. 과거 기획부서 간부가 파출소장과 지구대장 모인 자리에서 파워포인트도 할 줄 모르는 소장·대장이 많다고 말했다가 파출소·지구대는 파워포인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장순찰·사건처리가 중요한데 현실을 모르는 말을 한다고 해서 망신을 당한 사실이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경찰의 솔직한 모습이다. 말로는 현장에 답이 있다면서 파출소 현장체험, 현장직원과의 소통을 외치지만 현장인력 재배치에는 늘 소극적이다. 아니 오히려 좋은 성과를 내려면 현장 인력을 줄이고 기획부서 인력을 늘려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 우리 경찰의 모습인 것이다.
보고·지시 방식에서 현장 중심의 일 처리로 바꿔야
수사업무도 마찬가지다. 통합하여야 할 수사업무를 여성청소년, 외사(국제범죄수사), 사이버, 보안 등으로 쪼개놓고 그곳에 국, 과를 신설하고 치안감, 경무관, 총경 자리를 늘린다. 그러면 조직의 위상이 높아져서 직원들이 긍지를 가지고 근무할 것이라는 논리를 갖다 붙인다. 문제는 일선에서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청, 지방청으로부터 성과를 독려하는 문서가 경쟁적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현장을 뛰어야 할 일선 경찰들이 문서처리 같은 내근 업무에 매달리게 되고, 거기에 더해 젊고 유능하다는 경찰관들은 파출소·지구대로부터 뽑아내 기획부서를 보강하는 식이다.
본청·지방청 등 상급기관에 있는 직원들을 일선 파출소·지구대 같은 현장에 재배치하려면 어떻게든 서로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그런 곳에 나가면 결재권자 자신이 직접 일을 처리해야 되기 때문에 힘들어지고, 자칫 사고라도 터지면 승진 등 인사고과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경찰 조직의 이런 풍토를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파출소, 지구대, 형사, 교통, 수사 등 현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현장근무인사 가점을 주고 현장 중심으로 승진과 포상을 시켜야 한다. 보고·지시 방식의 문서 시스템을 대폭 감축하고 현장 중심의 일 처리로 바꿔야 한다.
경찰대학, 간부후보생은 무조건 졸업과 동시에 5년 이상 파출소·지구대 등 현장부서에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고, 그 기간에는 승진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일선 순경출신 직원들이 본청, 지방청에 근무할 수 있도록 오피스텔 제공 등 근무환경도 개선해 주어야 한다.
밤거리를 배회하는 가출청소년과 우범자들을 보호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경찰서, 지방청 인력을 밤거리 현장에 재배치하여야 한다. 경찰서, 지방청에서 오직 보고를 위해 당직 근무를 서는 내근직원들도 파출소 등 일선 현장에 배치하여야 한다.
현장을 꺼리는 고위직 공무원
민생 현장 근무를 꺼리는 것은 비단 경찰 조직만의 문제만 아니다. 각 중앙부처,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윗선으로 올라갈수록 집무실·접견실이란 명목으로 사무실 크기만 커지고 결재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위로 올라갈수록 회의만 하고 현장을 소외하는 풍토가 만연하다.
그러다 보니 보조금이나 기금 등의 예산을 집행하고 그 예산이 그대로 집행되는지 현장에 나가 확인하는 고위 공무원은 거의 없다.
공무원 조직이 얼마나 민생과 동떨어지고 자기 중심적인가는 그들의 근무 시간만 봐도 알 수 있다. 실제 민원인들은 평일이나 주간 시간대는 생계에 매달려 관공서를 찾기 어려운데도 야간·주말에는 관공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휴무를 한다. 그러면서 저마다 주민들에게 다가서는 주민친화적 행정을 펼친다고 앞다투어 공치사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낯 간지럽다.
고시에 합격한 젊고 유능하다는 직원들은 지자체근무 등 현장근무와 민원부서 근무를 기피한다. 자기 계발을 위해 국비 유학 준비를 하고 대학원 진학공부를 한다. 그들이 나중에 정책기획·집행자가 되었을 때 현장경험이 없으니 현장에 맞지 않는 기획과 집행을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또한 중앙과 지방, 현장과 기획부서직원 간에 인사교류가 되지 않으니 정책집행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복지담당공무원이 보조금, 기금 등 예산을 횡령해도 감독자들은 결재만 할 뿐 자신은 잘 모른다고 하면 그만이다. 사회적인 이목이 쏠리는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인력과 전담부서가 없다고 하면서 자리부터 만들 생각을 한다.
인력 재배치만 해도 증원 필요없어
조금만 직급이 올라가면 민원인들과의 접촉은 스트레스가 많다고 하여 말단 창구직원들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결재만 하려고 한다. 지금도 공무원이 되려고 노량진 학원가에서 행정법, 행정학 등 시험준비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언제까지 우리의 젊은이들을 쓸데없는 공부를 하면서 인생을 허비하도록 둬야 하는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실제 현실은 공무원 시험과목과 공무원의 업무와는 별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도 바뀌었으니 공무원들이 민생 현장을 방문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면서 어떻게 하면 민원인들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하는 배려와 희생·봉사정신을 갖춘 공무원 조직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공무원 증원이 단순히 OECD 회원국 중 수요에 비해 공무원이 적다는 이유와 실업자구제차원에서 진행된다면 그 부담은 결국 국민이 지게 된다. 지금도 공무원은 많다. 실제 민생 현장을 책임지는 ‘진짜 공무원’이 없을 뿐이다. 현장을 뛰는 공무원보다 보고· 지시하는 공무원이 많다.
특히 경찰, 소방, 복지 분야는 현장이 가장 중요한데 증원된 인력은 현장에 없다. 더 이상 윗사람 자리 늘리기식의 보고·지시부서 인력증원 늘리기는 안 된다. 증원이 아닌 공무원 조직 진단을 통해 현장인력 중심으로 인력 재배치만 선행되어도 지금의 인원으로 몇 배 효율적인 공무원조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