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서민과 투기꾼만 보는 부동산 사시안(斜視眼)

2018. 3. 2. 21:25부동산 정보 자료실



[데스크칼럼] 서민과 투기꾼만 보는 부동산 사시안(斜視眼)

  • 전태훤 부동산부장



  • 입력 : 2018.03.02 11:00

    [데스크칼럼] 서민과 투기꾼만 보는 부동산 사시안(斜視眼)
    대한민국이 양극화로 몸살을 앓는다는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많이 들었다. 소득과 교육, 문화, 정보 등에 걸쳐 사회∙경제 계층 간 불평등과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데, 들여다보면 부동산만큼 최근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분야도 없는 듯하다.

    한쪽에선 3.3㎡당 1억원을 호가하는 아파트가 나와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고, 다른 한쪽에선 1년에 십수만 가구씩 여러 형태의 공공임대주택이 지어져도 방 한 칸 얻기 버거운 이들이 넘쳐난다.

    ‘미친’ 집값을 잡겠다고 정부가 부동산 부자를 향해 규제의 칼을 빼 들고, 서민 주거 안정을 도모하겠다며 기를 쓰고 임대 공급에 나서지만, 가진 이들의 집값은 규제가 무색할 정도로 치솟고, 없는 이들의 주거난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럼 부자도 서민도 아닌 중산층은 부동산 문제로 걱정이 없는 걸까? 정부가 부자와 서민의 부동산 문제에 파묻힌 사이에 사실 중산층은 부동산 정책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아니, 소외됐다기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고 보는 게 더 맞을 듯싶다.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니 서민 주거 지원에선 늘 제외되기 일쑤고, 적당히 벌어 적당히 가졌다는 이유로 ‘가진 자’ 축에 끼다 보니 규제 대상엔 든다. 정부가 이상하리만큼 부동산 영역에서는 서민 아니면 투기꾼이라는 흑백논리로만 들여다보니 생긴, 그들로선 억울한 처사일 수밖에.

    그동안 역대 정부가 내놓은 주거 안정 대책들은 대부분 “서민∙중산층을 위한다”는 말로 포장됐다. 그럴듯한 내용을 엮어 대책을 내놓지만 사실상 중산층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것들은 그다지 없다. 임대공급을 늘리고 저금리 대출 상품을 만들어 봐야 대부분 소득 기준에 맞지 않거나 내건 조건들은 중산층의 눈높이와 차이가 크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이것도 모자라 정부는 중산층의 주거 사다리마저 보기 좋게 걷어 차버렸다. 정부가 위험수위에 오른 가계부채를 관리하고 부동산 가격을 통제하겠다며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을 올리며 대출 문턱을 높인 것인데, 이런 대출 규제는 뜻하지 않게 중산층의 내 집 마련 기회를 앗아간 결정적인 ‘한방’이 됐다.

    그나마 중산층을 위한 정책적 배려라면 갚을 능력만큼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게 길을 터주는 것인데 이마저도 막혔으니 중산층이야말로 집을 살 수도, 자발적으로 정부가 공급하는 임대주택에 살 수도 없는 처지가 된 셈이다.

    대출 규제가 필요 없다는 주장이 아니다. 소득이 적거나 상환 능력이 부족한 이들에게 대출을 권해 집을 장만하라는 것은 가계부채 폭탄을 만드는 지름길이며, 투기성 다주택자들에게 돈줄을 풀어주는 것은 불붙은 시장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으니 적절한 대출 규제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상당 수준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버는 중산층이 획일적 대출 규제에 막혀 사실상 세입자 신세를 면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으니, 정부가 이들을 보듬는 정책 배려를 했으면 한다.

    지금의 대출 문턱이라면 사실상 집값의 70% 정도는 목돈으로 갖고 있어야 주택 마련이 가능한데, 서울의 웬만한 집값도 10억원이 넘어가는 현실에서 이른바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소득이 꽤 뒷받침되는 중산층이라도 어느 정도의 대출 없이 집을 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돈이 없으면 싼 곳으로 이사하거나, 아파트 대신 연립이나 단독주택을 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누군가가 따져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산층도 원하는 주거 눈높이가 있고, 그것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자유 시장경제 국가라면 적어도 어떤 집을 사고 말지는 규제가 아닌 소비자가 정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세운 틀로만 그들이 사고 싶은 집은 꿈도 꾸지 못하게 차단하는 것은 국민 다수인 중산층의 주거 행복권을 틀어막는 것이다.

    정부가 서민과 투기꾼만 보는 사이에 무너진 중산층의 주거 사다리. 엎어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지만, 쓰러진 주거 사다리는 얼마든지 다시 세울 수 있다. 지금도 정부와 청와대는 다주택자와 강남 재건축 등으로 대표되는 투기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정권의 명운을 걸고 보유세 강화와 같은 추가 규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투기, 바람직하지 않고 잡아야 할 것이지만, 바라건대 중산층에 더는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한다. 그럴 가능성이 작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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