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3배 줄게" 악마의 유혹…4차산업혁명 인재도 中으로

2018. 6. 26. 21:18C.E.O 경영 자료

"연봉 3배 줄게" 악마의 유혹…4차산업혁명 인재도 中으로

가뜩이나 인력 부족한데…AI·게임업계도 초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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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도넘은 첨단인력 빼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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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분야에서 해외에서도 이름이 꽤 알려진 모 국립대 A교수는 올해 초 중국 정부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연봉 3억원 이상의 급여와 연구비 지원 조건에 종신교수직을 보장해 줄 테니 상하이기술대, 선전기술대 등으로 옮겨오라는 얘기였다. 중국 측 초청으로 최근 현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A교수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급여 조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모바일 등 정보기술(IT)이 빠르게 발전하고 연구 환경이 우수한 중국 현지에서 연구하고 싶은 욕심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 전체에서 인공지능 분야에 투자된 자원은 총 273억위안(약 4조5000억원)으로 이 중 상당수가 대학과 기업 부설 연구소 등에 투입되고 있다. 김영란법 등 각종 규제에 묶인 한국 국립대 교수 입장에서는 중국 대학 교수 자리 제안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다.

A교수는 "중국 정부에서 첨단 기술 육성 정책인 `중국 제조2025`와 글로벌 인재 유치를 위한 천인계획 등 장기 플랜을 들고 해외 인재들을 계속 끌어당기고 있다"며 "다른 교수들에게도 비슷한 제의가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신기술이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영역에서 중국이 전 세계 인재를 흡수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그나마 한국에서 싹트려 하고 있는 인재들도 중국이 뽑아간다. 한국 정부 추산에 따르면 인공지능·블록체인 영역에서 2022년까지 인력이 모두 2만5000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인재들을 키울 수 있는 교수들마저 중국이 입도선매해 버리면 인력 수급이 잘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인공지능 영역뿐만 아니라 가상현실(VR)이나 3D그래픽(CG) 업계에서는 `3배 룰`이라는 게 통용된 지 오래다.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엔지니어나 연구자들에게 현재 받고 있는 연봉의 3배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한 CG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국내 CG 회사들이 할리우드 등에서 수주를 받는 등 비교적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며 "하지만 엔지니어들이 대부분 `노가다`에 불과한 일들에 치이고 있고, 중국 쪽에서 연봉을 3배씩 제안하는 경우가 많아 인력 유출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불과 3년 전인 2015년만 해도 국내 VR 시장 규모는 한국 9636억원, 중국 약 2700억원으로 한국이 중국보다 3배 정도 컸다. 그러나 2017년에는 한국 1조9601억원, 중국 약 2조3000억원으로 중국이 한국을 앞질러 버렸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 중국에 비해 VR 콘텐츠 영역에서 0.8년 정도 앞서 있지만, 인력 유출이 가속화하면 기술 격차는 조만간 역전될 것이라는 우려가 업계에 팽배하다.

국내 한 통신사 관계자는 "5G 시대를 맞아 VR 콘텐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중국에만 가도 VR 콘텐츠의 제작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며 "국내 대학의 열악한 VR 콘텐츠 제작 환경과 인력 유출 속도라면 5G 시대의 VR 콘텐츠는 중국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업계 쪽에서도 중국은 한국 인력 채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에 진출한 가상화폐 거래소 기업인 중국계 K사는 국내에 법인을 만들면서 기술인력 20명을 채용했다.

물론 중국 기술기업들이 한국 인력을 채용하는 게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발표하면서 청년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해외 취업 제도를 적극 장려하고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중국 등 해외 기업들이 한국의 청년취업률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기보다는, 수백~수천 명의 고용을 추가로 창출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핵심 인재들을 빼내 가면서 한국의 장기적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대신 자국의 산업 경쟁력을 더욱 높이려 한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게임산업이다. 중국의 한국 게임인력 흡수는 그 역사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2004년 검찰이 발표한 기술 유출 피해 사례에 따르면 당시 중국 게임업체들은 한국 게임 엔지니어 중에서 주로 퇴사한 사람들을 위주로 접촉해 `실력을 보자`며 면접을 실시하는 등 지금으로 치면 `갑질`을 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 대형 온라인게임 유통업체인 `샨다`가 국내 게임회사인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하는 등 중국의 한국 게임 핵심 인재 사냥은 계속됐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 업체들은 더 이상 한국에서 태어난 게임 엔지니어들을 공격적으로 노리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이미 과거 한국 게임 엔지니어들을 통해 상당 부분 개발 및 게임 운영 노하우를 배웠기 때문이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최근 나오는 중국 게임들은 그래픽 면에서 한국 게임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며 "중국은 이미 게임산업의 경쟁력 면에서 한국과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퇴직 인력들이 국내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기업과 연계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제공하고 대학과 정부를 연계해 경험을 살릴 수 있게 한다면 해외로의 인력 유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현규 기자 / 서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