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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가 200만명이나 들어와 있고,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나라에서 아직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노인들에게 허드렛일 자리 하나 줄 수 없단 말인가? 우리가 이런 나라를 만들려고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왔던가?/ 이상흔 기자
 

‘헬조선’과 ‘흙수저’의 나라
 
자고 나면 새로운 일자리 대책이 나온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이번에는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들에게 2년간 120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동안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 대책이 하도 많아서 뭐가 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청년창업, 인턴고용, 해외취업, 중장년취업, 여성일자리, 경력단절자, 공공근로 지원 같은 직접적인 정책 외에도 두뇌한국21, 산학협동, 사회적기업, 벤처창업, 중소기업인턴지원, 신지식인, 4대강사업, 보육지원, 창조경제 등등 그동안 쏟아낸 유·무형의 일자리 정책은 그 수를 셀 수조차 없다. 이제는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청년들에게 현금까지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판국이다.
 
정부는 매년 오만가지 일자리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 땅의 청년들이 느끼는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88만원 세대, 이태백, 삼포세대에 이어 이제는 ‘헬조선’ ‘흙수저’라는 말이 이 땅 청년들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다.
 
청년뿐만 아니다. 미혼모, 이혼녀 등 많은 취약계층 여성들이 저임금으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숫제 경제활동에 참여조차 해보지 못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유흥업소 종사 여성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노인빈곤층은 OECD 국가 중 최고를 달리고 있고, 정부가 기초생활 수급이나 공공근로 등 현금지원이나 직접 고용형태로 먹여 살리는 인구만 해도 수백만 명에 이른다.
 
일을 하는 사람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일을 할수록 형편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그 반대로 흐르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일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기초수급자들의 처지를 부러워하는 실정이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중소기업과 대기업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는 점점 벌어져 양극화와 상대적 박탈감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가계 빚은 사상 최대로 치닫고 있으며, 10년이 넘도록 ‘자살률 세계 1위 국가’라는 부끄러운 꼬리표를 달고 있다. 이제 노인 자살률까지 세계 1위를 차지했으니 노인지옥이 현실이 되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너도나도 “죽겠다”고 아우성치며 정부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이 모든 것은 청소년 가출과 범죄, 가정파괴, 도덕붕괴, 살인 및 성범죄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내재된 불만과 상대적 박탈감이 언제 어떤 형태로 분출될지 모르는 상태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나?
 
암울한 소식만 들리는 우리의 경제상황을 보고 있자면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과연 우리 경제가 정말 이토록 절망적이고, 희망이 없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2012년 이후 한 번도 경상수지에서 적자를 내 본 적이 없는 수출 흑자국이기 때문이다. 비록 IMF 외환위기를 겪기는 했지만, 세계 12위권의 경제력을 줄곧 유지해 왔다. 지난 20여년간 극심한 수출부진에 시달린 적도 없다. 오히려 이 시기 우리는 조선과 반도체, 자동차, 휴대전화, IT분야에서 사상 최대의 호황기를 누렸다.
 
그렇다고 내전(內戰)으로 나라가 뒤집히거나, 혼란한 것도 아니다. 비록 분단국가이기는 하지만, 지난 몇 십년 동안 이토록 안정된 환경에서 이만큼의 수출호황을 누린 나라도 이 지구 위에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수출만 잘 되면 일자리가 생기고, 소득이 늘어날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어째서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낙수효과’는 타나 나지 않는 것일까? 1인당 국민소득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도 중산층은 왜 급속하게 붕괴하고 있을까? 왜 그렇게 많은 일자리 정책과 경제정책이 하나도 먹히지 않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점점 팍팍해지고 가계 빚은 사상 최대를 달리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엉터리 진단과 엉터리 처방의 악순환
 
경제당국은 그동안 세계경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 경제 불황 속에서 이 정도는 그나마 선방을 한 것이라고 자위한다. 문제는 그동안 세계경제가 좋았던 나빴던 간에 서민들은 2000년 이후 한 번도 형편이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파른 물가상승률에 비해 실질소득이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느끼고 있고, 실제 그렇기도 하다. 
 
뭔가 단단히 잘못된 모습이다. 심지어 2008년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받은 미국조차 실업률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고, 체감경기가 좋아지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더 심한 고령화 국가인데도 기나긴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의 경제가 어려운 것을 무조건 세계경제 침체 탓으로 돌리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다.
 
19대 국회에서 대통령은 “국회가 관련법을 제대로 통과시켜 주지 않아 할 일을 못 했다”며 “제발 도와달라”고 읍소를 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토록 원하고 있는 파견법이나 기타 노동법을 몇 개 개정했다고 상황이 나아졌을까? 법률 몇 개 만들었다고 확 살아날 경제 같았으면, 애당초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경제에 문외한이라도 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경제 당국자들의 현실 인식과 진단능력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이다. 아무리 용한 의사라도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이 잘못되고, 환자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치료시기만 늦어질 뿐이다.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결국 현실 인식과 진단이 잘못되면 그에 대한 대책도 엉터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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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한국어와 중국어로‘정리정돈’이라고 쓰인 입간판이 세워져 있고, 방글라데시어로 ‘진입금지’및‘인화물 조심’을 뜻하는 문구도 쓰여 있다. 건설사들이 저임금 외국인들을 선호하면서 내국인 일용직 및 숙련공들은 건설현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조선DB

우리가 과연 일자리 부족 국가인가?
 
그렇다면 우선 가장 근본적인 질문부터 해보자. 우리가 과연 일자리 부족 국가인가 하는 것이다. 정부와 여야는 눈만 뜨면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한다. 일자리 창출은 일자리가 부족할 때 창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일자리 부족 국가가 맞기는 한 것인가?
 
우리나라에는 2014년 기준으로 18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있고,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친척방문이나 밀입국을 통해 불법노동을 하고 있는 외국인은 얼마나 되는지 사실상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 숫자는 해마다 10% 이상씩 늘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증가율이다. 인구대비 외국인 증가로 봤을 때 유럽 제(諸)국가가 전쟁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도 더 많고, 더 빠른 속도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일자리 천국이고, 외국인 수백만 명이 들어와 있을 정도로 일자리가 차고 넘치는 나라다. 일자리가 없다면 외국인을 이 정도 규모로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작 일자리 창출이 경제정책의 지상과제처럼 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코미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혹자는 말한다. “그런 3D(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자리 말고 양질(良質)의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그렇다면 양질의 일자리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정하는 것인가? 책상에 앉아서 펜대를 굴리면 양질의 일자리이고, 건설현장에서 노동하는 것은 불량 일자리인가? 아니면 모든 근로자가 연봉을 1억씩 받아야 양질의 일자리인가? 200만 명에 가까운 엄청난 숫자의 외국인이 모두 저질 3D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는 말인가?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산업 자본주의를 유지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몸을 움직이는 자리는 모두 천하기 때문에 외국인을 들여다 놓고, 우리는 그저 양반행세나 하며 살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양질과 저질 일자리는 생겨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우리가 지난 20년간 임시방편으로 노동정책을 편 결과가 오늘날 ‘일자리는 널렸는데 일할 곳이 없다’는 웃지 못할 현실을 만든 것이다. 이런 모순부터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없이는 그 어떤 경제정책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모든 일자리가 다 소중하다는 인식전환 필요
 
물론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더없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없는 양질의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보다 기존의 일자리를 양질화하는 게 쉽고, 빠르고, 싸게 먹힌다는 것은 복잡한 경제이론이 아니라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따라서 경제 당국자들은 무턱대고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서는 안 된다. 현재 존재하는 일자리 하나하나가 양질의 일자리가 되도록 하고, 이를 기반으로 내국인들이 좀 더 나은 삶의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우선순위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경제 당국자들의 일자리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당국자들이 먼저 식당서비스업이든, 일용노동직이든, 건물청소원이든, 동네 철공서 잡부든 모든 일자리가 다 우리의 삶의 터전이며 소중하다는 인식부터 가져야 한다.
 
필자는 10년 전 이탈리아를 여행한 적이 있다. 관광버스를 타고 어느 고풍스러운 도시에 들어가는 데 갑자기 현지의 여성 관광 가이드가 필자 일행이 탄 버스에 동승을 하는 것이다. 관광 가이드였지만, 그녀는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이탈리아 정부가 자국민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도심에 들어오는 모든 외국인 관광버스에는 현지 가이드를 동승하게 한 것이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도 이처럼 한명의 자국민을 고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는 1980년대 초반 미국에 이민 간 필자의 누나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의 누나는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술집(bar)과 식당 등을 운영했다. 누나가 고용했거나 고용하고 있는 종업원이 수십 명이지만, 그동안 단 한명의 불법 불법체류자도 고용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멕시코 불법체류자의 경우 현지인보다 3분의 1 정도의 인건비면 고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누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었다. 누나는 어째서 불법체류 고용이라는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누나가 특별히 미국 시민으로서 애국심이 높아서라기보다, 불법체류자 고용 시 받게 될 엄청난 벌금과 영업정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저임금 노동력 바탕위에 서 있는 제조업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지난 20년 동안 불법체류자 무한공급 국가가 되었다. 합법적인 신분으로 들어오고 나서 불법체류 신분으로 전락하는 코스를 정부에서 묵인해 준 결과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는 들어오는 산업연수생은 있어도 나가는 사람은 극소수다. 현재 거의 모든 공단과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가사도우미, 동네분식집, 서비스업, 유흥업소 접대업까지 불법체류자를 고용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이제는 농촌·어촌의 인력까지 불법체류 노동자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무한대로 불법체류자가 공급되자, 이들이 대규모로 장악한 건설 현장직이나, 식당 서빙업, 중소기업 제조업은 점점 내국인 기피 일자리로 변했다. 그 결과 건설현장과 공장의 핵심기술이 내국인에게 전수되지 않고 있으며, 국가가 심혈을 기울여 건설한 공단지역은 거대한 외국인 거주 단지로 바뀌고 있다.
 
문제는 지난 20년간 외국인 근로자에 의해 제조업이 돌아가다 보니 우리의 산업 경쟁력 전반이 빠르게 저임금에 의지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내국인 노동자들의 실질임금도 사실상 정체되었다. 결국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이 내국인들을 산업현장에서 빠르게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노동정책을 펴는 나라에서 미혼모, 이혼녀, 노인, 저학력자 등 사회 취약계층을 외국인 노동자나 불법체류자들과 저임금 일자리 경쟁으로 내모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노동정책은 지난 20년간 정확하게 이 방향으로 진행됐다. 산업현장을 온통 저임금 외국인으로 채워놓고 노동자들의 삶이 개선되고, 내수가 살아나기를 바라고 있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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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손을 높이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날 대법원 판결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들도 합법적으로 노조를 설립하고 활동할 수 있게 됐다. 또 불법 체류 외국인도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게 됐다./조선DB

정당한 인건비 지급과 노동법 지키는 풍토 정착해야
 
경제 당국은 지금부터라도 무한정 이어지는 불법체류자 공급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 경제 살리기의 시작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 어떤 경제정책을 펴도 결국은 ‘언 발에 오줌누기 식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지구 상에 싼 노동력은 끝없이 널렸고, 아무런 통제가 없는 한 고용주는 끊임없이 이런 싼 임금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법체류자 근절은 현재와 같은 단속위주 정책으로는 불가능하며, 그럴만한 인력도 없다. 대신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업주를 강력하게 단속해야 한다. 불법체류자 상습 고용 업주에게는 영업정지 등의 강력한 정책이 따라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불법체류자 고용이 범법(犯法) 행위라는 걸 업주들과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꾸준하게 계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더 이상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와 동시에 합법적인 테두리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엄격한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풍토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미래를 설계할 수 있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경제 당국자와 위정자들이 할 일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당한 인건비를 지급하고 사람을 고용하고, 노동법을 지키는 노동풍토를 갖추는 것이 순서다.
 
아울러 힘든 육체노동자들이 지금보다 더 높은 임금(정당한 대가)을 받아 이들의 생활이 안정되도록 유도하면, 사회 취약계층의 취업이 활발해 질 것이고, 이는 위로 연쇄작용을 일으켜 집에서 쉬고 있는 여성과 노인들까지 산업현장으로 불러들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들 육체노동자와 사회 취약계층들이 먼저 생활고에서 벗어나야만, 중산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아무리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노인들이 길에서 폐지를 주워 연명하고, 한 가정의 미래를 책임진 가정주부들이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치게 해서는 안 된다. 건강한 자본주의는 공정하고 건전한 경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사회적 약자를 궁지로 몰아서 이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도 대졸자 못지않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기술과 능력 있는 사람이 우대받는 세상을 만들 때만이 뿌리 깊은 학벌 풍조와 학력 인플레가 점점 사라질 것이다.
 
저임금 경제구조로는 고부가가치 산업발전 없어
 
일하고 싶은 사람 누구나 일을 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고, 그 속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으면 결혼과 출산기피, 노인문제 등 수많은 사회 문제가 동시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순리대로 풀어가야 할 문제를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려고 하니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한 것은 거창한 경제 이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다지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경제는 유기체와 같다. 시대 상황에 맞춰 변하지 않으면 낙오한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변하면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한 구조로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체질이 개선될 리가 만무하다. 불법체류자들의 노동력에 의존해서 성냥공장, 가발공장까지 언제까지 끌고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 당국자가 일자리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경제발전의 효과가 내국인에게 먼저 돌아가도록 한다’는 것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엄청난 세금을 들여 공단을 만든 것은 일차적으로 우리 국민에게 일자리를 주어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지, 지금처럼 외국인과 불법체류자들에게 일자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선진국은 중소기업이나 식당, 건설업 일용직 노동자도 일을 하는 한 먹고사는 데 큰 문제가 없다. 대만이나 스위스는 오히려 중소기업이 국가의 주요 산업을 떠받친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대기업이나 공무원 외에 나머지 일자리는 그저 불법체류자들이나 하는 희망없는 일자리가 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우리가 이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부모님 세대가 그 고생을 하고,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오진 않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