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7. 21:04ㆍC.E.O 경영 자료
레이건 때 고르비처럼 … 김정은, 트럼프 비전 따를 수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평생을 직업외교관으로 살아왔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분석한 베스트셀러 『결정의 본질』의 저자이자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수제자로, 미국 내 손꼽히는 국제정치학자다. 반 전 총장과 앨리슨 교수가 인연을 맺은 건 반 총장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 연수 온 1970년대 초다. 존 F 케네디(JFK) 대통령의 이름을 따 만든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 입학한 반 전 총장이 앨리슨 교수에게 자신을 JFK (Just From Korea, 갓 한국에서 왔다)로 소개한 일화는 유명하다. 케네디스쿨에 피셔 패밀리 펠로우 (Fisher Family Fellow) 자격으로 방문 중인 반 총장과, 앨리슨 교수가 지난 22일(현지시간) 케네디스쿨에서 만나 미·중 관계의 미래, 북한 비핵화 전망 등에 관해 토론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1990년대 이래 가장 긍정적 대화
북한 합의 쉽게깨는 전례 있어
최선을 바라되 최악을 대비해야
앨리슨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북 핵·ICBM 실험 중단도 큰 성과
김정은 최소한 양보만 하려할 것
검증 없는 조치 대가 지불은 안 돼
미·중, 북한 비핵화에 높은 수준 국익 공유
- 질의 :21세기 미·중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미·중 양자 관계의 틀에서 본 북한 비핵화에 대한 생각은.
- 응답 :▶앨리슨=“나의 신간 『예정된 전쟁』에서 밝혔듯 투키디데스의 함정(Tuchididdes Trap, 기존 패권국가와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이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미·중 관계를 분석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첫째, 중국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둘째, 미국은 현존하는 강대국이다. 특히 아시아에서 우세한 강대국으로서 국제 경제·안보 질서를 통해 아시아의 기적을 도왔다. 아시아 국가들은 이토록 오랜 기간 평화를 유지한 적이 없다. 셋째, 중국이 성장할수록 미국이 70년 동안 유지해온 질서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반=“50년 동안 외교 현장에서 뛰어온 사람으로서 앨리슨 교수의 분석을 인정하지만 미국과 중국은 궁극적으로 서로의 세계적 책임을 인식해 나갈 것으로 본다.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중요한 세계적 이슈가 양국 관계를 이끌어 나갈 것이다. 북한 비핵화 협상은 중국의 지지 없이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
▶앨리슨=“전반적으로 동의한다. 미·중 공동의 이익(critical shared interest)을 위해서는 양국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후변화가 좋은 예다. 한반도 문제의 경우 미·중이 북한 비핵화에 높은 수준의 국익을 공유한다고 본다. 내가 반 총장과 견해를 달리하는 점은 다음과 같다. 투키디데스는 구조적 현실(structural reality)을 강조했다. 중국의 구매력지수 (PPP) 환산 국내총생산(GDP)는 미국을 초월했다. 중국은 과거의 일본·한국처럼 경제적으로 깨어나고 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가난했던 이유는 시장경제를 도입하지 않았고 인민들을 수탈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시장경제를 도입한 이후 미국 경제규모의 1/4까지 따라잡았다. 중국이 미국 GDP의 두 배로 경제 규모가 성장한다면 이는 미국이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현실인 것이다. 구조적 현실은 필연적인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가능성을 높인다.”
- 질의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비핵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혀왔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불신으로 세기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북한의 전형적인 협상 전술에 속고 있는 것인가.
- 응답 :▶앨리슨=“나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근무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고르바초프에게 소련의 전체주의적 정부 운영 방식이 잘못됐으며 올바른 길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라고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전 세계의 모든 핵무기를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견해를 같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정부 구조를 바꾸고자 했다. 개방된 사회를 통해 소련을 통치하고자 했던 고르바초프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의 비전을 따라갔다. 역사적으로 지도자들이 이전의 정책 방향에서 180도 변환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이런 변환이 가능하다면 레이건의 말대로 ‘신뢰하되 검증하라’는 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진정으로 변화를 원하고 그 변화의 매 단계가 우리를 더욱 안전하게 한다면 변화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북한은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중단했으며 한·미를 향한 위협적인 언사를 중단하고 협상에 임하고 있다. 이는 대단한 성취다.”
▶반=“‘최선을 바라되 최악을 대비하라’는 문구를 첨언하고 싶다. 1990년대 이래 북한과 현재와 같은 긍정적인 대화를 해본 기억이 없다. 반년 내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중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만났다. 다만 ‘완전한 비핵화’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다. 1991년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은 명확히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을 금지했다. 이번에는 ‘완전한 비핵화’만을 언급했다. 모든 핵무기를 제거하기 보다는 추가적인 핵·ICBM 실험을 중단하고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김정은, 통합된 한반도 지도자 꿈 꿀수도
▶앨리슨=“전적으로 동의한다. 전략적·역사적 맥락에서 생각해보자. 내가 김정은 위원장이라면, 첫째 우선순위는 협상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핵무기도 여전히 보유하는 것이다. 현명한 전략이다. 북한의 대다수 인민들과 정부 관료들이 이에 동의할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가능하다. 다만 미·중·한·일·러가 동일선상에 서는 것이 훨씬 어렵다. 예측을 하자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점진적으로 철폐될(roll back) 것이다. 60개의 핵탄두가 30개로 줄어들 수도 있다. 남북 통합에 간단한 해결책은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통합된 한반도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꿈꿀 것이다. 북한과의 협상은 조심스레 진행해야 한다. 북한은 현 시점에서 최소한의 양보를 하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검증할 수 없는 양보에 대가를 지불해서는 안 된다. 핵 실험장과 영변 핵시설에 검사관을 파견하는 것이 좋은 시작이다.”
▶반=“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북한과 협상한 경험에 의하면 북한은 관계가 호전될수록 구체적인 협상에서 항상 이견을 보였다. 1991~92년 협상에서 북한은 검증에 동의했지만 검증의 방식을 두고 강제사찰에 완전히 반대했다. 북한은 상호 간 동의된 사찰 방식을 고집했다. 이는 완전한 비핵화를 담보하지 못했다. 지난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비핵화’의 개념이 구체화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2차 회담에서는 구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신뢰 구축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앨리슨=“맞는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북한이 정상국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싱가포르를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도 싱가포르처럼 될 수 있는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준비한 영상은 훌륭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비전을 믿을 수도 있다. 소련을 이끌던 고르바초프도 개혁에는 실패했지만 레이건의 비전을 따랐다. 역사적으로 성공적인 사례로는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북한이 영변에서의 플루토늄 생산을 중단한 것이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북한은 플루토늄 생산을 중단했다.”
▶반=“2005년 9월 6자회담 당시 나는 외교부 장관으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과 함께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할 것에 동의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북한은 최초의 핵실험을 진행했다. 북한은 합의를 쉽게 파기하는 전례를 보였고, 이를 조심해야 한다. 북·미 협상 과정에 있어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비건 특별대표가 구체적인 합의를 이뤄내 북한이 악용할 수 있는 허점을 보여서는 안 된다.”
비핵화, 북·미만의 문제로 취급돼선 안 돼
- 질의 :트럼프·문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외교를 평가해달라. 비핵화 협상 과정에 한·미 동맹 간 잡음이 들리는데, 양국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 응답 :▶반=“한반도의 안보 문제, 특히 북한 비핵화 문제를 접근하는 데 있어 한·미 간 기본 전략에 균열이 있어서는 안 된다. 북한 비핵화가 북·미 양자 간의 문제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북핵은 한국 또한 주도적으로 맡아야 할 문제다. 핵무기는 한반도에 있기 때문이다. 남·북은 화해에 집중하고 비핵화를 북·미가 논의하는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미 간 더욱 긴밀한 공조를 해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는 성급한 제재 완화가 없을 것임을 북한에 명확히 해야 한다. 인도주의적인 목적의 제재 완화는 고려해볼 수 있다. 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유엔 안보리는 인도주의적 목적의 식량 지원을 한 전례가 있다.”
▶앨리슨=“동맹의 관점에서 제재를 유지하되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에 맞게 제재를 조금씩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의 관점에서는 최소한의 양보로 최대한의 제재 해제를 얻어내는 것이 중요한데 김정은 위원장은 제재에 대한 국가 간 입장 차이를 이용하려 할 것이다.”
▶반=“종전선언 이후 북한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북한은 이미 유엔에서 한국 내 유엔사 해체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유엔총회에는 유엔사의 철회를 요구하는, 북한이 제출한 결의안이 있다.”
▶앨리슨=“북한이 유엔사 해체를 요구할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북한의 요구가 큰 의미가 있을까.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선언을 했지만 유럽에 여전히 주둔하고 있다. 종전선언이 이루어지고 북한이 유엔사 해체를 요구하더라도 한·미가 이는 한반도의 안정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는 입장을 밝히면 된다.”
보스턴=김동현 중앙SUNDAY 통신원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구원
Dong-Hyeon_Kim@hks.harva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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