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연구원, 국고보조금 연간 100억 사용…언론 감시 당연
국정원, 적폐 혐의로 직원 10~20% '죄인 취급'…50여명 사법처리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이자 '복심'으로 알려진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21일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비밀 회동'하는 현장이 한 언론에 포착되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더 팩트'가 27일 영상과 함께 공개한 '문의 남자' 양정철, 서훈 국정원장 한정식집 '밀담' 보도에 따르면, 두 원장은 21일 오후 6시 20분께부터 10시 45분께까지 4시간 이상 서울 강남구 모처의 한정식 식당에서 만났다.
이에 양정철 원장은 이날 만남 자체를 시인하면서도 "사적인 지인 모임이어서 특별히 민감한 이야기가 오갈 자리도 아니었고 그런 대화도 없었다"고 독대가 아님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제가 고위 공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공익보도 대상도 아닌데 미행과 잠복취재를 통해 일과 이후 삶까지 이토록 주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취재 및 보도 경위에 여러 의문을 갖게 된다"고 보도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양정철, '고위 공직' 아니고 '공익보도 대상' 아니다?
하지만 국정원장과의 '독대'가 아니었고 자신은 '고위 공직(자)'가 아니므로 '공익보도 대상'도 아니라는 그의 해명은 궤변에 가깝다.
우선 서훈 원장과의 비밀 회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훈 원장은 지난해 9·19 평양 3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9월말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나 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서훈 원장은 이때 모든 공직을 사절하고 일본에 체류 중인 '자연인 양정철'을 도쿄 시내의 한 식당에서 만나 위로했다. 이 소식통은 이날 회동의 성격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위로의 뜻을 전한 것 아니겠냐"고 했다.
기자가 두 사람의 회동 소식을 기사로 쓰지 않은 것은 그가 비록 문재인 대통령 집권의 일등공신이라고는 하나 공인이 아닌 '자연인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이 그를 만날 수는 없으니 국정원장이 일본에 간 김에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함께 일했던 '일등공신'에게 위로차 저녁을 산 것으로 이해했다.
대선이 한창 진행중일 때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한 측근들의 지분이 얼마나 될까 따져본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측근들이 밝힌 지분이 집권 뒤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50%, 노영민 전 의원 30%, 정동채 전 문화부 장관 20%'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양정철 전 비서관은 이른바 '광흥창팀'을 함께 이끈 임종석 비서실장에게 일임하고, 새로 출범한 정부에서 어떠한 공직도 맡지 않고 '백의종군' 하는 방향으로 거취 문제를 매듭지었다.
이처럼 그가 '백의종군' 하던 시절에 국정원장을 만난 것과 '총선 기획'을 책임진 민주연구원장 신분으로 국정원장과 회동한 것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 양정철 원장(오른쪽)은 지난 18대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이런 이유로 양 원장은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진은 2011년 당시 '문재인의 운명' 북콘서트 현장에 참석한 문재인 후보와 양정철 부실장. [뉴시스] |
두 사람의 이번 비공개 만남은 야인생활을 하던 양 원장이 2년 만에 집권 여당의 싱크탱크 책임자로 정치권에 복귀한 지 1주일 만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날은 그가 14일 원장으로 취임한 민주연구원이 '사회적 경제, 문재인 정부 2년 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 날이다. 이틀 전에 취임한 양 원장이 처음으로 맞이한 연구원의 공식행사를 불참하고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국정원장을 만났으니 야당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연구원, 국고보조금 연간 100억원 받아…공익보도 대상
그럼에도 그가 "고위 공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공익보도 대상도 아닌데"라며 '더 팩트'의 보도를 '파파라치 황색 저널리즘'으로 치부한 것도 궤변에 가깝다.
우선 민주연구원은 정당법과 정치자금법에 따라 국고보조금을 받는 공당의 정책연구기관이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정당의 정책연구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국고보조금의 30%를 소속당의 싱크탱크에 할당하도록 규정돼 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2018년 정당에 지급된 국고보조금 총액은 884억원인데 이 가운데 제1당인 민주당에 지급된 국고보조금은 297억(33.6%), 제2당인 자유한국당 국고보조금은 274억원(31%)이었다. 두 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과 여의도연구원은 각각 100억원에 가까운 국고보조금, 즉 국민세금을 쓰는 곳이다.
따라서 그의 부적절한 해명과 달리 민주연구원장은 '고위 공직'에 해당하고, 당연히 그의 언행 또한 '공익보도 대상'이다.
서훈 원장이 정당의 총선 기획을 책임진 인사를 몰래 만났다가 언론에 '들킨' 것도 정보기관장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으로 지적된다.
서훈 원장은 원장으로 취임하지 마자 '적폐청산'에 착수해 지난해까지 직원 500여명이 내부 감찰 조사를 받았고, 그중 100여명은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장 4명과 기조실장 등 전·현직 간부와 직원 50여명이 사법처리되었다.
또한 서훈 원장은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할 소지를 원천봉쇄 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500명 규모인 국내정보 수집부서 자체를 폐지했다. 이들은 모두 일정 기간의 재교육을 거쳐 방첩보안, 대북 분야로 재배치되었다.
정치 개입 혐의로 국정원 직원 10~20% '죄인 취급'…50여명 사법처리
감찰 조사를 받은 500명과 타 부서로 재배치된 500명은 각각 국정원 정원의 10%에 달한다. 적어도 국정원 직원 정원의 10~20%가 '죄인 취급'을 받았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기자가 만난 국정원 직원들은 신현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이 지난해 중도사퇴하고 미국에 간 것은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본지는 지난해 10월드루킹 "신현수도 댓글조작에 관련"의혹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신현수 전 기조실장은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장을 맡아 문재인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 대응에 법률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네거티브 공세 대응'에는 통상 '네거티브 공세'도 포함된다는 것이 선거의 관행이다.
서 원장은 지난해 6월 국정원에서 열린 창설 제57주년 기념식에서 "국정원이 존재이유를 상실했다는 국민의 목소리에 지난 1년 정치개입과 적폐를 철폐하는데 최선을 다해왔다"면서 "그 결과로 이제 국정원의 조직·인력·업무방식이 '정보기관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면 재설계됐다"고 강조했다.
서 원장은 이어 "과거와 같은 정치개입은 사라졌다고 확신하지만 근본적인 우리의 업무 DNA를 바꾸는 것이 국민의 엄중한 주문"이라면서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한 안보만을 생각하는 순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자"고 강조했다.
정치권 접촉 등 오해받을 소지를 아예 없애려고 업무에서 배제된 500명의 국내담당 정보관들은 지금 정작 서훈 원장이 내년 총선을 책임진 '文의 남자'를 몰래 만나다가 들킨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로남불'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UPI뉴스 / 김당 기자 dangk@upi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