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몰락..가난한 중·장년층, 고독사 위험까지

2019. 5. 30. 06:24C.E.O 경영 자료

가장의 몰락..가난한 중·장년층, 고독사 위험까지

대구CBS 류연정 기자 입력 2019.05.30. 04:51 

자료사진.
한 가족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2층 주택. 그리고 그 집 귀퉁이에 자리한 작은 철문.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시 낡디 낡은 작은 나무 문이 나오고 나무 문은 조그마한 방으로 통한다.

'끼익' 소리가 나는 나무 문을 열자 퀘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창문 틀에 있는 회색빛 먼지들이 잠시 떠올랐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휴대용 가스버너와 작은 전기밥솥은 낡은 TV 앞에, 식용유와 몇 가지 조미료는 방문 앞에 놓여져 있었고 부엌 역할을 하는 그 자리에서 몇 센티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이불과 널린 빨래들이 즐비했다.

10평이 채 안 되는 이곳은 A(58)씨가 28년 동안 살아온 공간이자 부엌겸 거실겸 침실.

위생이나 안전 면에서 다소 우려스러운 모습이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A씨 삶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심지어 재래식 화장실이 방과 맞닿아 있는 탓에 방 안 곳곳에 지린내가 진동하기까지 했다.

이곳에서 종일 멍하니 앉아 있거나 TV를 보다가 멀건 국에 밥 한 술 뜨는 게 A씨의 일상이다.

지난 28일 대구 서구청이 실시한 '홀로 사는 1인 장년층 고독사 예방 실태조사' 동행 취재에서 만난 A씨는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해졌다고 했다.

아예 못 걸을 정도는 아니지만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둬야 했고 쌀조차 동사무소에서 얻어먹는 신세가 됐다.

A씨는 "점심은 자주 건너뛰고 전기료도 비싸서 형광등을 켜는 것도 아깝다. 다리가 불편하니 남사스러워서 바깥에는 어쩌다 한 번씩만 나가고 인간관계도 다 끊긴 지 오래"라고 말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A씨처럼 가난과 시름하는 중·장년층은 전체 중·장년층의 과반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중장년층행정통계를 보면 2017년 소득이 없거나 1천만원 미만인 40대 이상 65세 미만 인구는 모두 961만 7천500명으로 전체 중·장년층의 48.9%를 차지했다.

자료 일러스트.
복지 전문가들은 먹고 살기 팍팍한 중·장년층이 많아지는 현상이 각종 사회 문제로 연결된다고 보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고독사 가능성이다.

현장에 함께 갔던 동사무소 직원은 "생계 유지가 힘든 중·장년층이 많고 그중에서도 특히 가족과 연락을 잘 하지 않고 지내거나 가족이 없는 1인 가구가 많아지는 추세여서 이들의 고독사 위험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65세 이상 고령층의 고독사도 문제긴 하지만 고령층의 경우 각종 모니터링과 지원 제도의 범위 안에 있어 오히려 위험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중·장년층 1인 가구는 225만 6405명으로 2년새 17만명 넘게 증가했다.

또 고독사를 가장 많이 하는 연령대가 40, 50대로 전체의 56.8%를 차지한다는 서울시 복지재단의 고독사 통계 자료도 이를 뒷받침한다.

근로 능력이 없거나 의지를 상실한 중·장년층이 늘면서 수입이 없는 노모가 다 큰 자녀를 부양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A씨의 경우에도 80대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는 형편이다. 어머니가 받는 기초생활수급비 중 몇 만원을 식비로 받거나 반찬을 얻어 먹는 식이다.

이날 동행 취재에서 만난 50대 후반의 여성 B씨도 허리 디스크, 뇌종양 등으로 일을 할 수 없어 80대 어머니에게 매월 10만원씩 받고 있다고 했다.

B씨는 "시골에 사는 어머니도 아무 소득이 없다. 그래도 딸이 아프니 젊었을 때 모아둔 돈 조금을 쪼개서 다달이 보내주신다"며 죄송한 마음이 크다고 전했다.

복지 전문가들은 IMF 이후 급격히 진행된 가정 해체와 일자리 감소가 복합적으로 빚어낸 사회문제라고 보고 있다.

나눔과 나눔 박진옥 사무국장은 "실업 장기화와 독거가 결합하면서 사회 관계망을 잃은 중·장년층이 고립돼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아직 고령이 아니란 이유로 각종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박 국장은 "돈을 버는 능력이 곧 사람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회 인식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를 고립하지 않게 돼 무연고 사망이 줄어들고 이들이 삶의 의지도 되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마음을 닫은 사람들에게 계속 노크를 하고 관계망을 만들어주는 등의 지자체 사업을 늘려야 한다. 장기적 과제라고 생각하고 계속 고민하고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조사를 실시했던 서구청은 우려되는 1인 가구 중·장년층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지원 가능한 복지제도를 연계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구CBS 류연정 기자] mostv@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