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일왕 축하연 간다. (대일특사 등) 이름이 무엇이건”
●“도쿄 선술집 시민들에게 ‘곤방와’ 인사하고파”
●“아베 총리와 신의 쌓아”
●“아베와 삼청각 만남에서 한국인 한센인 차별 해결”
●“반도체 소재 심각”
●총선·대선 관련 “(남쪽에서) ‘또 올라간다!’ 예언 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피로증상이 있었을까?”
●자신 낮추고 이분법 거부
박영철 동아일보 기자이낙연 국무총리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21.2%)로 올라섰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6월 24~25일 성인 2504명을 조사한 결과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 2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는 1.2%포인트 차이다.
이 총리의 인기 비결로는 안정감과 신뢰감이 꼽히기도 한다. 요즘 덜하기는 하지만, 그의 국회 대정부질의 답변은 ‘품격이 있는 사이다 발언’으로 회자됐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파문이 커지면서, 지일파(知日派)인 이 총리가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총리는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한일의원연맹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이낙연은 ‘편한 자리’에서 어떻게 말할까?
이런 점들을 두루 감안해 ‘신동아’는 이 총리가 최근 모임에서 한 발언을 중심으로 그를 탐구했다. ‘이낙연은 편한 자리에서 어떻게 말할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기자의 기억에 의하면, 그는 막걸리를 즐겼고 겸손했고 유연했다. 겸양과 유연성은 그의 성격을 구성하는 키워드일 수 있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지일(知日)’이다.
이 총리는 6월 29~30일 ‘트위터’에 “장마전선 북상” “부산경남에도 많은 비가 오락가락” “남부지방 호우특보 해제” 등 날씨 관련 글을 연달아 올렸다. 사석에서 “전남도지사를 해서 날씨에 민감한가요? 농·어촌이 많으니까”라고 이 총리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렇게 물어줘서 고마워요. ‘나이 먹어서 날씨에 민감하냐?’고 묻지 않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을 낮추는 이낙연식 유머다.
막걸리를 즐기는 이 총리에게는 수많은 술자리 일화가 있다. 그를 만나면, 구수한 술자리 이야기를 아라비안나이트의 천일야화처럼 들을 수 있다. 딱히 공익적인 주제는 없지만 그리 싱겁진 않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수많은 술자리 일화
동아일보 일본 특파원 시절의 이낙연 총리.“옛날에 DJ(김대중) 대통령이 마지막 대권 도전을 위해 정계 복귀를 준비할 무렵이었어요. 동아일보 출판국과 편집국에서 당신을 이해할 만한 기자 7~8명을 중국집에 불렀죠. 가운데 큰 원탁이 있었는데 부서가 들쭉날쭉하니까 기자들끼리 서열이 정리가 잘 안 돼. 분위기가 쭈뼛쭈뼛했어요.
‘어디에 앉을까’ 서로 그러고 있는데, 민병욱(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선배가, 지금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으로 있죠, 이분이 좀 애교스럽거든. 곰살맞은 데가 있어. 덥석 맞은편에 앉았어요. 그러니 대충 정리가 돼. DJ가 어색한 장면을 빨리 끝내준 민 선배에게 고마웠던 것 같아요. ‘그러게 말이여. 민 기자. 이렇게 마주 앉아 있으면 얼굴도 보고 좋잖여.’ 옆자리에 앉은 제가 DJ에게 ‘얼굴 보는 게 목적이 아닌 기자도 있습니다’라고 했죠. DJ가 ‘이낙연 기자는 경험이 많은 게벼’라고 했죠.
전부 ‘선생님, 선생님’ 하는 분위기인데 갑자기 민 선배가 ‘형님’ 하면서 폭탄주를 돌려요. DJ가 ‘이런 술 잘 안 먹는 것 아시잖아요?’라고 했어요. 그러자 민 선배가 ‘형님, 이거 드시면 대통령 됩니다’라고 해요. 그러니까 DJ가 ‘주세요’라고 했죠.”
국회 대정부질의에 답변하는 것을 보면, 이 총리는 ‘임기응변’이나 ‘라이브’에 강하다. 야당 의원들의 공세성 질의를 점잖게 맞받아친다.
“심재철 의원 압수수색, 이게 공정한 수사고 적폐청산인가? 총리가 관여해야 한다.”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
“검찰이 하는 일에 총리가 관여했다 그러면 칭찬했겠나?” (이 총리)
“사이다 총리라면 청와대 여당에도 쓴소리 할 줄 알아야 한다.” (정양석 한국당 의원)
“비공개로 하고 있다.” (이 총리)
“국민들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정 의원)
“일부러 들리게 하는 것이 총리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총리)
“(총리의 답변 태도가) 긍정적으로 말하면 노회하고, 나쁘게 말하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김태흠 한국당 의원)
“제 방식은 제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정치언어’의 한 부분이다.” (이 총리)
“‘신동아’ 원고 청탁받아”
이 총리는 “나도 국어 공부 좀 했다”고 말한다. 기자 시절 이낙연은 글쓰기와 문체에 많은 관심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진다. 사석에서도 그런 경험을 이야기한다.
“동아일보 기자로 일할 때 ‘신동아’로부터 원고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김종심(동아일보 전 출판국장) 부장 시절인 것 같아요. 일간지 기자가 월간지에 쓰려면 추가 취재를 해서 써야 하는데 그게 안 돼. 내가 내 기사를 봐도 깊이가 없어. 소설가만큼은 아니어도 기자 역시 문장 전개 방식이라든지 글에 맛을 넣는 것이라든지 자신만의 문체를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박보균 중앙일보 기자는 단문으로 유명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 작가도 칼럼이 좋아요. 워낙 자유롭게 써요. 분량이 긴데 무지하게 단문이야. 그냥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듯이 써.
장문이어도 읽기 쉬운 장문이 있어요. 문장이 길지만 쉬워요. 동아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소설가 최일남 선생이 쓴 글이 ‘여성동아’에 실렸는데, ‘그 여자는 커피 잔을 들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해요. 그리고 무려 원고지 36장이 넘어간 뒤에 문장이 ‘커피를 마셨다’입니다. 최일남 씨 글은 관념을 다 빼요. 누굴 호되게 야단치는 게 아니라 ‘그렇지 않겠나?’ 이런 투죠. 따뜻하죠. 논설실 동료가 세상을 떠나자 ‘자네 없이 마시는 소주는 왜 이리 쓴가’라는 추모사를 썼어요. 고(故) 선우휘 조선일보 기자도 만연체였지만 주장이 선명했어요.”
이 총리의 사이다 발언은 문체에 대한 오랜 고민과 글쓰기 연습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총리는 언론사에서 ‘기획’자(字)가 들어간 부서에 두 번 있었다. 맡은 업무는 외부 칼럼을 청탁해 받는 일.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던 당시, 원고는 마감일에 필자의 자택에 직접 가서 받아왔단다. 그는 “이 일이 여론 주도층을 아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필진 중에 노재봉(전 국무총리) 선생이 제일 늦게 썼어요. 댁이 방배동인데, 아침에 댁에 가면 그때부터 원고를 쓰기 시작해요. 오전 10시쯤 ‘됐네’ 하면 그 원고를 들고 택시 타고 회사로 오죠. 당시엔 이홍구(전 국무총리), 노재봉이 명칼럼니스트였어요. ‘한국 정치의 하루는 범부의 생애보다 길다.’ 노재봉 어록이죠. ‘구라’지 뭐. 그렇지만 맛이 있어요.”
“비 내리는 삼청각에서 아베와 소주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월 7일 도쿄 오타구에서 참의원 선거에 출마한 자민당 후보 지지 연설을 마친 후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범석 동아일보 기자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와 관련해 이 총리는 최근 청와대에 쓴소리를 했다. 7월 12일 국회에서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은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이 롱 리스트를 말하며 일본의 보복을 예상했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질의했다. 이에 이 총리는 “꼭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7월 10일에도 이 총리는 “정책실장으로서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자 김 정책실장은 “저를 포함한 모든 정부 관계자가 말씀을 유념하고 잘 따르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의 민관(民官)이 너무 감정적으로 나오고 있어 이 총리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이 총리가 갈등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적지 않다. 총리 산하 국무조정실 업무이기도 하다.
이 총리도 10일 국회에서 “공개하기 어렵지만 외교적 노력이 여러 가지 방면에서 진행되고 있다”면서 ‘대일특사 파견’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여권 일각은 “‘일본통’에다 정부 서열 ‘넘버 2’인 이 총리 본인이 대일특사 적임자”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이 총리는 자신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술자리에서 만나 서로 신의를 쌓고 한국인 차별 문제를 해결한 일화를 들려줬다.
“오래전 그분이 장관을 하고 잠깐 쉬는 사이에 주말에 서울에 왔어요. 비가 내렸는데요. 서울 삼청각에 자리를 잡아 함께 소주를 마셨어요. 그분이 주한 일본대사관에 ‘한국의 차세대 주자들과 자리를 마련해보라’고 주문했나 봐요. 원희룡 현 제주지사, 남경필 전 경기지사, 정병국 현 바른미래당 의원, 그리고 제가 초청됐죠.
그 자리에서 제가 아베 총리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어요. 그때 일본이 한센병 피해자 보상에 차등을 뒀어요. 제가 ‘내외국인을 차별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대만인과 조선인을 차별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어요. 그러자 아베 총리가 ‘몰랐다. 알아보고 시정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시정되는 게 목적이니 언론에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죠. 아베 총리는 1년 뒤 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결국 시정했어요. 후에 관방장관이 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제가 ‘약속을 지켜줘서 고맙다. 나도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습니다.”
2003년 한국인 한센인 124명은 일제강점기 한센인 인권침해에 대해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일본 법원은 한국인 한센인에 대해선 배상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후 일본 국내법 개정을 통해 한국인 한센인 500여 명은 일본정부로부터 1인당 최대 1억5000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이 과정에 이 총리와 아베 총리 간 나눈 밀담의 영향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아키에 여사가 한류 이야기 안 해”
이 총리는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가 한류 팬이고, 아키에 여사와 이서진이 함께 찍은 사진이 도쿄의 한 식당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한일관계가 냉랭해지면서) 아키에 여사가 한류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이 총리에게 일본은 각별한 나라다.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고 싶어서 “국회의원을 시켜주겠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제안도 마다했고 실제로 도쿄 생활을 무척 즐겼다고 한다.
“기자 생활 10년차인 39세 때 DJ 측으로부터 출마를 권유받았어요. 당시 이훈평 비서관과 국창근 비서관이 찾아와 동아일보 근처 서린호텔에서 만났죠. ‘출마 안 할래? 서경원 밀입북사건이 정치 재개를 준비하시는 총재님(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너무 큰 타격이다. 빨리 복구하려면 서경원과 정반대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하필 너다. 과격하지 않고 학교(서울대 법대) 제대로 나왔고 젊고.’ 이훈평 비서관이 말했어요. ‘형님 뜻이냐? 총재님 뜻이냐?’ 물으니 ‘아이 우리 뜻이라 해둬’라고 해요. 실은 DJ 지시였겠죠. 저는 ‘3불가론’을 폈어요. ‘첫째, 붓에 물이 한참 올랐다. 지금 꺾기 아깝다. 둘째, 회사에서 도쿄로 가라고 하는데 원하던 곳이라 거절하기 힘들다. 셋째, DJ에게 당신 뜻에 맞는 국회의원 한 명 늘어나는 것보다 당신을 좋아하는 기자 한 명 더 있는 게 나을 수 있다. 내가 아버지 다음으로 DJ를 좋아한다.’ 그때 의원을 했더라면 지금쯤 ‘물갈이 대상’이 됐을까? 10년 뒤엔 제안을 받아들여 의원이 됐어요.
동아일보 도쿄 지국은 프레스센터 안에 있었고 나중에 아사히신문 본사로 옮겼어요. 신바시 역 뒷골목이 전부 이자카야(선술집)인데, 다른 특파원들과 거기서 삼삼오오 자주 모였어요. 그 시절 동료들과 헛소리하면서 술 마신 게 제일 즐거웠어요. 무책임박람회. 틀려도 상관없고.”
“총리로서 일본에 가게 된다면…”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해 이 총리는 “당연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한국 대법원은 ‘일본 기업들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근로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배상 의무가 해결됐다고 반발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파기한 것도 일본을 자극했다. 정부는 친일 청산을 자주 강조했다. 이런 점들이 쌓여 일본의 무역보복을 촉발했다. 이 총리는 일본에 대해 “3권 분립 체제와 피해자 개개인의 입장에 대해 조금 가볍게 생각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이럴 때 일본을 잘 아는 총리가 역할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문과 관련해, 이 총리는 일본 기자 가족 이야기를 꺼낸다.
“아사히신문의 서울 특파원이 여름휴가 때 일본에 가서 신간센을 탔어요. 서울에서 유치원을 다닌 두 딸이 기차 안을 막 뛰어다니면서 한국말로 시끄럽게 떠들었어요. 그러자 주변 일본 승객들이 ‘한국 애들이 저 모양’이라고 한마디씩 했다고 해요.”
한국과 일본 모두 서로에 대해 오해의 감정을 먼저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한일 정상회담이 안 되는데 총리가 가는 게 순서에 맞는가?”라고 자문하면서 이 총리는 “그런데 총리로서 만약 일본에 가게 된다면 도쿄의 이자카야에 가서 시민들에게 ‘곤방와(안녕하세요)’ 하고 싶다. 이런 한일관계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10월 일왕 즉위 축하연이 있다. 내가 가게 될지…. (‘대일특사?’라는 질문에) 이름이 무엇이건”이라고 했다.
1989년 즉위한 아키히토 일왕은 4월 30일 퇴위했고 나루히토 왕세자는 5월 1일 즉위했다. 일본의 연호는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새 일왕의 즉위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축하연은 10월 22일 진행되며 이 자리엔 수교국 국가원수 등 25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 총리는 자신의 일왕 즉위 축하연 참석이 냉랭한 한일관계를 푸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 중 하나가 될지 모른다고 여긴 듯하다. 그는 특파원 시절 일왕 행사에 참석한 좋은 추억을 떠올렸다.
“예전에 제가 먼발치에서 지금 즉위한 일왕을 봤어요. 아키히토 일왕은 해마다 봄철 벚꽃이 만개할 때 국내 VIP와 외교사절, 특파원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열었어요. 소나무로 만든 네모반듯한 작은 술잔에 일본 술을 따라주고 한잔 들게 하죠. 그 잔은 각자 가져갑니다. 좋은 전통이죠.”
“자유로움 괄호 열고 무책임함”
이낙연 국무총리가 7월 2일 청와대에서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만큼, 이 총리의 총선·대선 출마는 세간의 관심사다. 여권 일각에선 이낙연을 중심에 두는 총선 전략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 의장은 “이낙연 총리가 차기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출마하고 이해찬 대표와 함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여권 인사가 전하는 ‘총선 빅 피처’에 따르면, 같은 총리 출신인 ‘이낙연 대 황교안 대결구도’로 총선을 만들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같은 중량급 인사를 후임 총리에 두면 여권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낙연 종로 출마설’ ‘이낙연 세종 출마설’도 나돈다. 이 총리는 사석에서 말을 아끼면서도 예언을 인용한 메시지를 남겼다.
우선, 이 총리는 “총리공관 모임에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내 책임하에 치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책 현안만 다뤘다. 기사를 쓴 기자에게 ‘그런 일 없어요’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선거와 자신을 분리하는 스탠스였다.
‘총리공관이 종로에 있어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고 종로에 자연스럽게 출마할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총리의 주민등록소재지는 세종시로 돼 있다. 이 총리는 총선에 출마할지 질문받으면 “영업이 잘 안 될 텐데” “욕심을 버리셔”라는 농담으로 비켜섰다.
“종로에 나온다는 상상력에 대해선?”(동석자)
“여전히 재밌지.”(이 총리)
“그렇게 자유롭게 상상?”(동석자)
“자유로움 괄호 열고 무책임함.”(이 총리)
이 총리는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고 있다. ‘뭘 하면 좋겠다’ 전혀 없다. 제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안 그래도 곰팡이 같은 내 인생”
이 총리는 2년 2개월째 재임 중이고 3개월을 더 하면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된다. 제19대 대통령선거 1년 전인 2016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이 전남지사인 그를 찾아와 총리직을 제의했다고 한다. 이낙연 총리후보 지명이 발표된 2017년 5월 10일 청와대 춘추관 앞에서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을 만났다. 문 대통령의 첫마디는 “제가 약속을 지켰죠?”였다.
‘네이버’ 포털 사이트에 나오는 이 총리의 출생연도는 ‘1952년’으로 돼 있고 12월 20일이 생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출생일은 ‘음력 1951년 12월 15일’이다. 이 총리는 음력으로만 생일을 기억했다. 위로 형님 둘이 일찍 세상을 떠나 부친이 첫돌 무렵 이 총리를 호적에 올렸다고 한다. 역술인들은 음력 생년월일시로 사주를 보는데, 이 총리는 용한 역술인에게 우연히 사주를 본 경험을 이야기했다.
“제가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전남지사 후보 경선에 도전할 때 정치권에서 80%는 제가 진다고 했어요. 주승용 의원이 된다는 것이죠. 어찌해선지 저는 질 거라는 생각을 별로 안 했어요. 지사 출마 결심을 하기 전에 역술인 한 분이 ‘국회의원 그만하고 무조건 남쪽으로 가라’고 했어요. 이분은 경선에 승리하는 시각까지 맞혔어요. 당시 돈이 없어서 광주시내 싸구려 원룸에서 지냈어요. 겨울에 곰팡이가 슨 바지를 입으면 그게 피부에 달라붙어요. 안 그래도 곰팡이 같은 내 인생. 여론조사에서 졌고 현장 투표에서도 무지하게 불리했죠. 결국 현장 연설에서 뒤집었어요. ‘여러분. 저는 의원도 사퇴했습니다. 제가 집에 가서 놀 것인가 일을 좀 더 할 것인가.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여러분이 시키는 대로 할랍니다.’ 양승조 선관위원장(현 충남지사)에 따르면, 이 대목에서 선거인단이 움직이더라는 거죠. 이 역술인은 제게 (총선·대선 관련해서) ‘남쪽에 오래 안 있을 거다. 또 올라온다!’고 예언했어요.”
‘또 올라온다’는 말은 총선·대선에 나가서 직업을 구한다는 뜻일까? 이 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따뜻하게 말했다. “박 대통령은 피로증상이 있었을까요? 청와대 재임 중에요. 최순실에게 많이 의지하고 평일에도 침실에 계시고. 뭔가에 기대고 싶었던 게 있었겠죠. 고독감, 피로감, 이런 것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뭔가를 결정해야 하잖아요. 보통 피로가 아니거든요.”
‘이낙연의 문체이자 경쟁력’
이 총리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에 대해 “정치인스럽게 말하면 불평등의 문제, 상생의 중요함을 깨우쳐주는 영화다. 그러나 ‘격차의 문제’로 너무 나가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곰팡이 같은 내 인생’이라고 자신을 낮추고 이분법의 틀로 세상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이낙연의 문체이자 경쟁력’인지 모른다.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도쿄 선술집 시민들에게 ‘곤방와’ 인사하고파”
●“아베 총리와 신의 쌓아”
●“아베와 삼청각 만남에서 한국인 한센인 차별 해결”
●“반도체 소재 심각”
●총선·대선 관련 “(남쪽에서) ‘또 올라간다!’ 예언 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피로증상이 있었을까?”
●자신 낮추고 이분법 거부
박영철 동아일보 기자이낙연 국무총리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21.2%)로 올라섰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6월 24~25일 성인 2504명을 조사한 결과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 2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는 1.2%포인트 차이다.
이 총리의 인기 비결로는 안정감과 신뢰감이 꼽히기도 한다. 요즘 덜하기는 하지만, 그의 국회 대정부질의 답변은 ‘품격이 있는 사이다 발언’으로 회자됐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파문이 커지면서, 지일파(知日派)인 이 총리가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총리는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한일의원연맹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이낙연은 ‘편한 자리’에서 어떻게 말할까?
이런 점들을 두루 감안해 ‘신동아’는 이 총리가 최근 모임에서 한 발언을 중심으로 그를 탐구했다. ‘이낙연은 편한 자리에서 어떻게 말할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기자의 기억에 의하면, 그는 막걸리를 즐겼고 겸손했고 유연했다. 겸양과 유연성은 그의 성격을 구성하는 키워드일 수 있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지일(知日)’이다.
이 총리는 6월 29~30일 ‘트위터’에 “장마전선 북상” “부산경남에도 많은 비가 오락가락” “남부지방 호우특보 해제” 등 날씨 관련 글을 연달아 올렸다. 사석에서 “전남도지사를 해서 날씨에 민감한가요? 농·어촌이 많으니까”라고 이 총리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렇게 물어줘서 고마워요. ‘나이 먹어서 날씨에 민감하냐?’고 묻지 않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을 낮추는 이낙연식 유머다.
막걸리를 즐기는 이 총리에게는 수많은 술자리 일화가 있다. 그를 만나면, 구수한 술자리 이야기를 아라비안나이트의 천일야화처럼 들을 수 있다. 딱히 공익적인 주제는 없지만 그리 싱겁진 않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수많은 술자리 일화
동아일보 일본 특파원 시절의 이낙연 총리.“옛날에 DJ(김대중) 대통령이 마지막 대권 도전을 위해 정계 복귀를 준비할 무렵이었어요. 동아일보 출판국과 편집국에서 당신을 이해할 만한 기자 7~8명을 중국집에 불렀죠. 가운데 큰 원탁이 있었는데 부서가 들쭉날쭉하니까 기자들끼리 서열이 정리가 잘 안 돼. 분위기가 쭈뼛쭈뼛했어요.
‘어디에 앉을까’ 서로 그러고 있는데, 민병욱(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선배가, 지금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으로 있죠, 이분이 좀 애교스럽거든. 곰살맞은 데가 있어. 덥석 맞은편에 앉았어요. 그러니 대충 정리가 돼. DJ가 어색한 장면을 빨리 끝내준 민 선배에게 고마웠던 것 같아요. ‘그러게 말이여. 민 기자. 이렇게 마주 앉아 있으면 얼굴도 보고 좋잖여.’ 옆자리에 앉은 제가 DJ에게 ‘얼굴 보는 게 목적이 아닌 기자도 있습니다’라고 했죠. DJ가 ‘이낙연 기자는 경험이 많은 게벼’라고 했죠.
전부 ‘선생님, 선생님’ 하는 분위기인데 갑자기 민 선배가 ‘형님’ 하면서 폭탄주를 돌려요. DJ가 ‘이런 술 잘 안 먹는 것 아시잖아요?’라고 했어요. 그러자 민 선배가 ‘형님, 이거 드시면 대통령 됩니다’라고 해요. 그러니까 DJ가 ‘주세요’라고 했죠.”
국회 대정부질의에 답변하는 것을 보면, 이 총리는 ‘임기응변’이나 ‘라이브’에 강하다. 야당 의원들의 공세성 질의를 점잖게 맞받아친다.
“심재철 의원 압수수색, 이게 공정한 수사고 적폐청산인가? 총리가 관여해야 한다.”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
“검찰이 하는 일에 총리가 관여했다 그러면 칭찬했겠나?” (이 총리)
“사이다 총리라면 청와대 여당에도 쓴소리 할 줄 알아야 한다.” (정양석 한국당 의원)
“비공개로 하고 있다.” (이 총리)
“국민들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정 의원)
“일부러 들리게 하는 것이 총리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총리)
“(총리의 답변 태도가) 긍정적으로 말하면 노회하고, 나쁘게 말하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김태흠 한국당 의원)
“제 방식은 제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정치언어’의 한 부분이다.” (이 총리)
“‘신동아’ 원고 청탁받아”
이 총리는 “나도 국어 공부 좀 했다”고 말한다. 기자 시절 이낙연은 글쓰기와 문체에 많은 관심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진다. 사석에서도 그런 경험을 이야기한다.
“동아일보 기자로 일할 때 ‘신동아’로부터 원고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김종심(동아일보 전 출판국장) 부장 시절인 것 같아요. 일간지 기자가 월간지에 쓰려면 추가 취재를 해서 써야 하는데 그게 안 돼. 내가 내 기사를 봐도 깊이가 없어. 소설가만큼은 아니어도 기자 역시 문장 전개 방식이라든지 글에 맛을 넣는 것이라든지 자신만의 문체를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박보균 중앙일보 기자는 단문으로 유명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 작가도 칼럼이 좋아요. 워낙 자유롭게 써요. 분량이 긴데 무지하게 단문이야. 그냥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듯이 써.
장문이어도 읽기 쉬운 장문이 있어요. 문장이 길지만 쉬워요. 동아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소설가 최일남 선생이 쓴 글이 ‘여성동아’에 실렸는데, ‘그 여자는 커피 잔을 들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해요. 그리고 무려 원고지 36장이 넘어간 뒤에 문장이 ‘커피를 마셨다’입니다. 최일남 씨 글은 관념을 다 빼요. 누굴 호되게 야단치는 게 아니라 ‘그렇지 않겠나?’ 이런 투죠. 따뜻하죠. 논설실 동료가 세상을 떠나자 ‘자네 없이 마시는 소주는 왜 이리 쓴가’라는 추모사를 썼어요. 고(故) 선우휘 조선일보 기자도 만연체였지만 주장이 선명했어요.”
이 총리의 사이다 발언은 문체에 대한 오랜 고민과 글쓰기 연습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총리는 언론사에서 ‘기획’자(字)가 들어간 부서에 두 번 있었다. 맡은 업무는 외부 칼럼을 청탁해 받는 일.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던 당시, 원고는 마감일에 필자의 자택에 직접 가서 받아왔단다. 그는 “이 일이 여론 주도층을 아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필진 중에 노재봉(전 국무총리) 선생이 제일 늦게 썼어요. 댁이 방배동인데, 아침에 댁에 가면 그때부터 원고를 쓰기 시작해요. 오전 10시쯤 ‘됐네’ 하면 그 원고를 들고 택시 타고 회사로 오죠. 당시엔 이홍구(전 국무총리), 노재봉이 명칼럼니스트였어요. ‘한국 정치의 하루는 범부의 생애보다 길다.’ 노재봉 어록이죠. ‘구라’지 뭐. 그렇지만 맛이 있어요.”
“비 내리는 삼청각에서 아베와 소주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월 7일 도쿄 오타구에서 참의원 선거에 출마한 자민당 후보 지지 연설을 마친 후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범석 동아일보 기자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와 관련해 이 총리는 최근 청와대에 쓴소리를 했다. 7월 12일 국회에서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은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이 롱 리스트를 말하며 일본의 보복을 예상했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질의했다. 이에 이 총리는 “꼭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7월 10일에도 이 총리는 “정책실장으로서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자 김 정책실장은 “저를 포함한 모든 정부 관계자가 말씀을 유념하고 잘 따르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의 민관(民官)이 너무 감정적으로 나오고 있어 이 총리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이 총리가 갈등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적지 않다. 총리 산하 국무조정실 업무이기도 하다.
이 총리도 10일 국회에서 “공개하기 어렵지만 외교적 노력이 여러 가지 방면에서 진행되고 있다”면서 ‘대일특사 파견’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여권 일각은 “‘일본통’에다 정부 서열 ‘넘버 2’인 이 총리 본인이 대일특사 적임자”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이 총리는 자신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술자리에서 만나 서로 신의를 쌓고 한국인 차별 문제를 해결한 일화를 들려줬다.
“오래전 그분이 장관을 하고 잠깐 쉬는 사이에 주말에 서울에 왔어요. 비가 내렸는데요. 서울 삼청각에 자리를 잡아 함께 소주를 마셨어요. 그분이 주한 일본대사관에 ‘한국의 차세대 주자들과 자리를 마련해보라’고 주문했나 봐요. 원희룡 현 제주지사, 남경필 전 경기지사, 정병국 현 바른미래당 의원, 그리고 제가 초청됐죠.
그 자리에서 제가 아베 총리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어요. 그때 일본이 한센병 피해자 보상에 차등을 뒀어요. 제가 ‘내외국인을 차별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대만인과 조선인을 차별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어요. 그러자 아베 총리가 ‘몰랐다. 알아보고 시정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시정되는 게 목적이니 언론에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죠. 아베 총리는 1년 뒤 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결국 시정했어요. 후에 관방장관이 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제가 ‘약속을 지켜줘서 고맙다. 나도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습니다.”
2003년 한국인 한센인 124명은 일제강점기 한센인 인권침해에 대해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일본 법원은 한국인 한센인에 대해선 배상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후 일본 국내법 개정을 통해 한국인 한센인 500여 명은 일본정부로부터 1인당 최대 1억5000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이 과정에 이 총리와 아베 총리 간 나눈 밀담의 영향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아키에 여사가 한류 이야기 안 해”
이 총리는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가 한류 팬이고, 아키에 여사와 이서진이 함께 찍은 사진이 도쿄의 한 식당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한일관계가 냉랭해지면서) 아키에 여사가 한류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이 총리에게 일본은 각별한 나라다.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고 싶어서 “국회의원을 시켜주겠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제안도 마다했고 실제로 도쿄 생활을 무척 즐겼다고 한다.
“기자 생활 10년차인 39세 때 DJ 측으로부터 출마를 권유받았어요. 당시 이훈평 비서관과 국창근 비서관이 찾아와 동아일보 근처 서린호텔에서 만났죠. ‘출마 안 할래? 서경원 밀입북사건이 정치 재개를 준비하시는 총재님(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너무 큰 타격이다. 빨리 복구하려면 서경원과 정반대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하필 너다. 과격하지 않고 학교(서울대 법대) 제대로 나왔고 젊고.’ 이훈평 비서관이 말했어요. ‘형님 뜻이냐? 총재님 뜻이냐?’ 물으니 ‘아이 우리 뜻이라 해둬’라고 해요. 실은 DJ 지시였겠죠. 저는 ‘3불가론’을 폈어요. ‘첫째, 붓에 물이 한참 올랐다. 지금 꺾기 아깝다. 둘째, 회사에서 도쿄로 가라고 하는데 원하던 곳이라 거절하기 힘들다. 셋째, DJ에게 당신 뜻에 맞는 국회의원 한 명 늘어나는 것보다 당신을 좋아하는 기자 한 명 더 있는 게 나을 수 있다. 내가 아버지 다음으로 DJ를 좋아한다.’ 그때 의원을 했더라면 지금쯤 ‘물갈이 대상’이 됐을까? 10년 뒤엔 제안을 받아들여 의원이 됐어요.
동아일보 도쿄 지국은 프레스센터 안에 있었고 나중에 아사히신문 본사로 옮겼어요. 신바시 역 뒷골목이 전부 이자카야(선술집)인데, 다른 특파원들과 거기서 삼삼오오 자주 모였어요. 그 시절 동료들과 헛소리하면서 술 마신 게 제일 즐거웠어요. 무책임박람회. 틀려도 상관없고.”
“총리로서 일본에 가게 된다면…”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해 이 총리는 “당연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한국 대법원은 ‘일본 기업들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근로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배상 의무가 해결됐다고 반발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파기한 것도 일본을 자극했다. 정부는 친일 청산을 자주 강조했다. 이런 점들이 쌓여 일본의 무역보복을 촉발했다. 이 총리는 일본에 대해 “3권 분립 체제와 피해자 개개인의 입장에 대해 조금 가볍게 생각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이럴 때 일본을 잘 아는 총리가 역할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문과 관련해, 이 총리는 일본 기자 가족 이야기를 꺼낸다.
“아사히신문의 서울 특파원이 여름휴가 때 일본에 가서 신간센을 탔어요. 서울에서 유치원을 다닌 두 딸이 기차 안을 막 뛰어다니면서 한국말로 시끄럽게 떠들었어요. 그러자 주변 일본 승객들이 ‘한국 애들이 저 모양’이라고 한마디씩 했다고 해요.”
한국과 일본 모두 서로에 대해 오해의 감정을 먼저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한일 정상회담이 안 되는데 총리가 가는 게 순서에 맞는가?”라고 자문하면서 이 총리는 “그런데 총리로서 만약 일본에 가게 된다면 도쿄의 이자카야에 가서 시민들에게 ‘곤방와(안녕하세요)’ 하고 싶다. 이런 한일관계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10월 일왕 즉위 축하연이 있다. 내가 가게 될지…. (‘대일특사?’라는 질문에) 이름이 무엇이건”이라고 했다.
1989년 즉위한 아키히토 일왕은 4월 30일 퇴위했고 나루히토 왕세자는 5월 1일 즉위했다. 일본의 연호는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새 일왕의 즉위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축하연은 10월 22일 진행되며 이 자리엔 수교국 국가원수 등 25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 총리는 자신의 일왕 즉위 축하연 참석이 냉랭한 한일관계를 푸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 중 하나가 될지 모른다고 여긴 듯하다. 그는 특파원 시절 일왕 행사에 참석한 좋은 추억을 떠올렸다.
“예전에 제가 먼발치에서 지금 즉위한 일왕을 봤어요. 아키히토 일왕은 해마다 봄철 벚꽃이 만개할 때 국내 VIP와 외교사절, 특파원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열었어요. 소나무로 만든 네모반듯한 작은 술잔에 일본 술을 따라주고 한잔 들게 하죠. 그 잔은 각자 가져갑니다. 좋은 전통이죠.”
“자유로움 괄호 열고 무책임함”
이낙연 국무총리가 7월 2일 청와대에서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만큼, 이 총리의 총선·대선 출마는 세간의 관심사다. 여권 일각에선 이낙연을 중심에 두는 총선 전략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 의장은 “이낙연 총리가 차기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출마하고 이해찬 대표와 함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여권 인사가 전하는 ‘총선 빅 피처’에 따르면, 같은 총리 출신인 ‘이낙연 대 황교안 대결구도’로 총선을 만들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같은 중량급 인사를 후임 총리에 두면 여권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낙연 종로 출마설’ ‘이낙연 세종 출마설’도 나돈다. 이 총리는 사석에서 말을 아끼면서도 예언을 인용한 메시지를 남겼다.
우선, 이 총리는 “총리공관 모임에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내 책임하에 치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책 현안만 다뤘다. 기사를 쓴 기자에게 ‘그런 일 없어요’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선거와 자신을 분리하는 스탠스였다.
‘총리공관이 종로에 있어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고 종로에 자연스럽게 출마할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총리의 주민등록소재지는 세종시로 돼 있다. 이 총리는 총선에 출마할지 질문받으면 “영업이 잘 안 될 텐데” “욕심을 버리셔”라는 농담으로 비켜섰다.
“종로에 나온다는 상상력에 대해선?”(동석자)
“여전히 재밌지.”(이 총리)
“그렇게 자유롭게 상상?”(동석자)
“자유로움 괄호 열고 무책임함.”(이 총리)
이 총리는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고 있다. ‘뭘 하면 좋겠다’ 전혀 없다. 제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안 그래도 곰팡이 같은 내 인생”
이 총리는 2년 2개월째 재임 중이고 3개월을 더 하면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된다. 제19대 대통령선거 1년 전인 2016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이 전남지사인 그를 찾아와 총리직을 제의했다고 한다. 이낙연 총리후보 지명이 발표된 2017년 5월 10일 청와대 춘추관 앞에서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을 만났다. 문 대통령의 첫마디는 “제가 약속을 지켰죠?”였다.
‘네이버’ 포털 사이트에 나오는 이 총리의 출생연도는 ‘1952년’으로 돼 있고 12월 20일이 생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출생일은 ‘음력 1951년 12월 15일’이다. 이 총리는 음력으로만 생일을 기억했다. 위로 형님 둘이 일찍 세상을 떠나 부친이 첫돌 무렵 이 총리를 호적에 올렸다고 한다. 역술인들은 음력 생년월일시로 사주를 보는데, 이 총리는 용한 역술인에게 우연히 사주를 본 경험을 이야기했다.
“제가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전남지사 후보 경선에 도전할 때 정치권에서 80%는 제가 진다고 했어요. 주승용 의원이 된다는 것이죠. 어찌해선지 저는 질 거라는 생각을 별로 안 했어요. 지사 출마 결심을 하기 전에 역술인 한 분이 ‘국회의원 그만하고 무조건 남쪽으로 가라’고 했어요. 이분은 경선에 승리하는 시각까지 맞혔어요. 당시 돈이 없어서 광주시내 싸구려 원룸에서 지냈어요. 겨울에 곰팡이가 슨 바지를 입으면 그게 피부에 달라붙어요. 안 그래도 곰팡이 같은 내 인생. 여론조사에서 졌고 현장 투표에서도 무지하게 불리했죠. 결국 현장 연설에서 뒤집었어요. ‘여러분. 저는 의원도 사퇴했습니다. 제가 집에 가서 놀 것인가 일을 좀 더 할 것인가.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여러분이 시키는 대로 할랍니다.’ 양승조 선관위원장(현 충남지사)에 따르면, 이 대목에서 선거인단이 움직이더라는 거죠. 이 역술인은 제게 (총선·대선 관련해서) ‘남쪽에 오래 안 있을 거다. 또 올라온다!’고 예언했어요.”
‘또 올라온다’는 말은 총선·대선에 나가서 직업을 구한다는 뜻일까? 이 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따뜻하게 말했다. “박 대통령은 피로증상이 있었을까요? 청와대 재임 중에요. 최순실에게 많이 의지하고 평일에도 침실에 계시고. 뭔가에 기대고 싶었던 게 있었겠죠. 고독감, 피로감, 이런 것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뭔가를 결정해야 하잖아요. 보통 피로가 아니거든요.”
‘이낙연의 문체이자 경쟁력’
이 총리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에 대해 “정치인스럽게 말하면 불평등의 문제, 상생의 중요함을 깨우쳐주는 영화다. 그러나 ‘격차의 문제’로 너무 나가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곰팡이 같은 내 인생’이라고 자신을 낮추고 이분법의 틀로 세상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이낙연의 문체이자 경쟁력’인지 모른다.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