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세금 물쓰듯 퍼부어 성장률 2.0075%… 작년 4분기에 무슨 일이
작년 4분기에 중앙정부가 예산 집행률이 낮은 지방자치단체는 불이익을 주겠다고 수차례 엄포를 놓자 각 지역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22일 지난해 성장률이 발표되자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세계적 경기 둔화 속에서 선방했다. 연간 2% 성장은 시장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지켜냈다는 의미"라며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2%대 성장률을 사수하기 위해 나랏돈을 물 쓰듯 쓴 정황이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민간 활력을 높이고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 계획적으로 재정을 푸는 게 아니라, 오직 '2.0' 숫자를 만들어내는 데만 혈안이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작년 경제성장률을 소수점 아랫자리까지 보면 2.0075%로, 우리 경제는 간신히 2%에 턱걸이했다.
◇작년 2% 성장… 그 중 4분의 3이 재정
지난해 11월 중순, 서울 양천구와 도봉구, 금천구, 성동구 등지에서는 한겨울에 나무를 심는 이색적 광경이 펼쳐졌다. 일명 '숨은 땅 찾아 나무 심기' 사업. 이 구들에서는 짧게는 2주 사이에 4000만원에서 많게는 3억원까지 사업비를 썼다. 인천의 일부 자치구는 지난 12월 월급을 평소보다 나흘 앞당겨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월급날은 20일이지만 예산집행률 산정 시점이 16일이어서 여기 맞춘 것이다.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집계하는 한국은행에 '어디에 돈을 쓰면 GDP에 바로 반영되는지' '같은 돈을 써도 어느 지출 항목으로 잡히는 게 GDP 올리는 데 효과가 큰지' 등을 문의했다고 한다. 재정승수가 높은 곳만 골라 돈을 쓰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재정승수는 정부의 재정 지출이 GDP를 얼마나 높이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통상 인건비나 물건비(인건비를 제외한 각종 운영비), 설비·건설투자비 등이 승수가 높은 축에 속한다. 한은 관계자는 "4분기에 정부 투자 중에도 도로 정비나 하천 개보수, 상하수도 정비 같은 생활밀착형 SOC(사회간접자본) 지출이 눈에 띄게 늘었고, 지방교육청의 학교 시설 정비 지출 등도 고루 늘었다"고 밝혔다.
4분기 민간 소비가 1~4분기 중 가장 좋았다고는 해도 0.7% 증가에 그쳐 정부 소비 증가율(2.6%)에는 한참 못 미쳤다. 연간으로도 민간 소비 증가율은 1.9%로 6년 만에 가장 낮았고, 정부 소비 증가율은 6.5%로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6.7%)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그 결과, 작년 2% 성장률을 올리는 데 정부 기여도는 1.5%포인트로 민간(0.5%포인트)의 3배에 달했다. 정부의 성장 기여도가 이렇게 높았던 것은 2009년(2.3%포인트)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지난해는 그야말로 '세금 주도 성장'이었던 셈이다. 이날 발표된 성장률은 12월 통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속보치'로, 미처 집계하지 못한 수치를 제대로 반영한 '잠정치'는 3월 3일 나온다. 이때 성장률이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누구를 위한 '세금 주도 성장'인가
정부는 올해도 막대한 재정 투입 의지를 밝혔다. 홍남기 부총리는 연초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올해 상반기 예산 조기 집행 목표를 역대 최고 수준인 62%로 설정하고, 국민 체감이 큰 일자리 사업은 1분기 안에 37%를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2.4% 달성을 자신하고 있지만, 민간에서는 성장률이 올해와 비슷하거나 소폭 오르는 정도일 것으로 전망한다.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산업은행 산하 KDB미래전략연구소가 기업들의 올해 설비투자 계획을 조사했더니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대기업 위주로 설비투자가 4.5% 늘어날 뿐 중견·중소기업 설비투자는 작년 대비 3.2~5.8%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LG경제연구원은 올해 성장률이 1.8%로 작년보다도 낮을 것으로 전망했고, BoA메릴린치(1.6%), 모건스탠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의 투자 심리가 여전히 위축돼 있는 상태에서 정부는 우리 경제가 의미 있는 반등을 하기 위해 어디에 돈을 써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성장률 숫자 만들기를 위해 재정을 물 쓰듯 하기보다는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해 청사진을 갖고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