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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에 사는 맞벌이 부부 정모(36)씨는 지난 2∼6일 닷새 동안 남편과 번갈아가며 연차 휴가를 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일제히 휴원에 들어가며 7살·3살 아이를 집에서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끝이 안 보이는 코로나19 확산에 부부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정씨는 “다음 주, 또 그 다음 주 아이들을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며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가정보육’을 권고하면서 긴급보육신청도 받고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아이들을 목숨 걸고 사람이 붐비는 곳에 보내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경기 안산의 직장인 안모(28)씨도 코로나19 걱정에 이번 주 내내 집에 머물며 육아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지난 2일 6살 아이를 유치원에 데리고 가는 길에 ‘유치원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보고 불안한 마음에 즉각 발길을 돌렸다. 안씨는 결국 회사에 전화해 “육아를 위해 일주일간 연차 휴가를 쓰겠다”고 알렸다. 부서장이 업무 공백을 걱정해도 눈 딱 감고 밀어붙였다. 그는 “회사 눈치가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며 “코로나19가 주춤해질 때까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싶지 않다”며 “다만 휴가가 끝나면 친정어머니나 지인들한테 육아를 부탁하고 다녀야 할 판”이라고 근심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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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라 정부가 전국의 유치원 및 초·중·고등학교 개학을 오는 23일까지 추가로 연기했다. 앞서 2일에서 9일로 일주일 연기한 데 이어 총 3주일간 유치원과 학교가 ‘올스톱’되는 초유의 상황이 온 것이다. 자연히 영아를 둔 맞벌이 부부로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육아공백 사태에 직면했다.
19세 미만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300명을 넘어서며 미성년자 감염 우려는 현실이 됐다. 부모들은 개학 연기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그럼 육아는 어떻게?’ 하는 질문 앞에 마땅한 해답을 찾지 못해 시름하는 중이다. 연차 휴가를 장기간 쓰는 것이 어렵거나 업무 특성상 재택근무가 힘든 직종에서 일하는 맞벌이 부부는 부모님이나 지인에게 날마다 육아를 부탁하느라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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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 육아 대안으로 나온 ‘긴급 돌봄’… 실제 이용률은 1%대
교육부는 재택육아가 불가능한 학부모들을 위해 시도교육청과 협의해 학교 휴업 기간 중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긴급 돌봄’ 서비스를 운영하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하지만 상당수 학부모는 코로나19 불안감에 ‘긴급 돌봄’을 꺼리는 게 현실이다.
경기 수원의 한 유치원은 지난 4일 기준 등록 원아 200명 중 15명만 긴급 돌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유치원 원장은 “한 달에 한 번 하던 방역을 매일 하고, 병원에서 사용하는 소독기계도 새로 들여놓았다”며 “이런 사실을 학부모들한테 알려도 다들 불안감이 워낙 큰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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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양에서 7살 아이를 키우는 한모(35)씨는 “전국적으로 외출 자제령이 떨어졌는데 누가 안심하고 학교를 보낼 수 있겠느냐”며 “가정보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실제 교육부가 지난달 24∼26일 긴급 돌봄 수요를 조사한 결과 초등학생 272만1484명 중 4만8656명(1.8%)만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나마 긴급 돌봄을 신청해놓고도 실제로는 이용하지 않은 부모가 많았다. 신청자 가운데 2만3703명(48.7%)만이 실제 긴급 돌봄을 이용해 전체 이용률은 겨우 0.87%에 불과했다.
전국 유치원생도 61만6293명 가운데 7만1353명(11.6%)이 긴급 돌봄을 신청했고, 신청자 중 3만840명(전체 유치원생의 5%)만 실제 긴급 돌봄을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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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연차 사용해 육아 나서지만… “휴가 3주일? 그건 무리”
이렇듯 학부모들이 재택육아를 원하고 있지만 3주간 이어지는 학교 휴업기간 내내 휴가를 사용하는 것은 여의치 않다. 정부는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면서 그 대안으로 ‘유연근무제’와 ‘가족 돌봄 휴가제’를 제시했다. 하지만 상당수 직장인들이 처한 현실과 동떨어진 점이 너무 많아 “그냥 남의 일 같다”는 푸념만 나왔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달 24∼28일 맞벌이 직장인 826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에 따른 육아 공백에 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육아공백을 경험하고 있다”는 응답이 전체 응답자의 76.5%에 달했다. 그중 정부가 장려하는 ‘가족 돌봄 휴가’를 사용했다는 응답은 7.3%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29.6%는 “개인 연차를 사용해 육아에 나서야 했다”고 털어놨다. 유아(4∼7세) 자녀를 둔 직장인 중 무려 90.4%가 “코로나19에 따라 육아공백을 체감한다”고 대답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정부가 그동안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강조하면서 일·가정의 양립을 권장해 온 만큼 기업 등 사업장들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관련 제도들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육아정책연구소 박창현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주 52시간제, 유연근무제 등을 적극적으로 시행했는데 지금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라며 “유연근무제가 정착되지 않은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도 대안을 논의해 맞벌이 부모가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 마음놓고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정부가 권고하는 재택근무나 휴가를 통해 육아를 지원하고 있지만, 일용직 노동자 등은 그런 혜택을 잘 누리지 못하는 만큼 육아휴직의 강제적 실시 등 정부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오는 9일부터 직원의 가족 돌봄 휴가 이용에 불편을 주는 기업을 익명 신고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제도를 적극 사용한 기업은 우수기업 선정에 가점을 주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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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길어진 ‘휴원 권고’에 울상 짓는 사교육업계
사교육업계도 코로나19로 인한 개학 연기에 혼란스럽기는 학부모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이 기간 학원 등의 휴원 조치를 권고했지만 그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보전할 길은 딱히 없는 실정이어서 상당수 학원이 휴원을 망설이는 모습이다.
한국학원총연합회(학원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28일을 기준으로 전국 학원의 약 67%만이 휴원에 돌입했다. 일부 학원은 ‘안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학부모들에게 방역이나 소독 조치 현황을 사진과 영상으로 알리고 나섰다. 그래도 “자녀 건강을 위해 3월 한 달 동안은 학원을 등록하지 않겠다”는 학부모들이 속출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학원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대구의 한 수학학원 강사 A씨는 “우리도 어떻게 보면 자영업자와 사정이 비슷한데 평소에는 사교육비 경감이나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수강료를 통제하던 정부가 이럴 때는 ‘학생 안전을 위해 휴강하라’고 말만 한다”며 “줄어든 수입을 어떻게 보충할지에 대해선 고민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안승진·박유빈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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