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등 200조원 규모 손정의식 투자, 몰락의 길로?

2020. 3. 24. 10:03C.E.O 경영 자료

쿠팡 등 200조원 규모 손정의식 투자, 몰락의 길로?

기사입력 2020.03.24. 오전 7:27 최종수정 2020.03.24. 오전 7:43 기사원문 스크랩

51조원 자산 매각 발표

잇다른 투자 실패에 코로나 겹쳐

‘손정의 식(式) 투자의 몰락이 시작됐나.’

혼자서 전 세계 스타트업 투자 자금의 20~30%를 주무르는 손정의 소프트뱅크(소뱅)그룹 회장의 투자 방식에 빨간 불이 켜졌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손 회장이 투자한 기업들의 가치가 폭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그룹이 보유한 투자 회사의 주식을 매각해 위기를 타개한다는 입장이다. 투자 규모가 워낙 큰 손 회장이 흔들릴 경우, 세계 벤처 투자의 거품론이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방한할 당시의 손정의 회장/조선일보 DB

소프트뱅크그룹, 4.5조엔(약 51조원)어치 자산 매각

소프트뱅크그룹은 23일 4.5조엔(약 51조 7700억원)어치의 자산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통신 자회사인 소프트뱅크와 중국 알리바바의 주식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한국 LG유플러스와 같이, 일본 2~3위의 이동통신업체다. 확보한 현금은 자사주 취득과 부채 상환에 쓰일 예정이다. 손 회장은 투자 모(母) 회사인 소프트뱅크그룹과 그 산하의 소프트뱅크를 축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한달새 소프트뱅크그룹의 주가가 반토막이 난 것이다. 지난 2월까지만 해도 5400엔(약 6만2000원)~5500엔 정도하던 주가가 지난 22일엔 2687엔까지 폭락했다.

주가 급락은 회사채 문제로 이어진다. 소프트뱅크그룹의 회사채는 무려 3조6000억엔대다. 소뱅그룹 시가총액(약 6조엔대)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주가 급락은 소뱅의 투자 리스크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회사채의 정상적인 발행과 상환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소뱅그룹이 (코로나 바이러스발 주가 폭락이 있지만) 자신의 재무 건전성은 타사와 달리 매우 튼실하다는 안심감을 투자자에게 줘야할 상황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손 회장은 엄청난 자산 매각과 현금 확보 계획을 발표하며, “사상 최대 규모의 자사주 취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2조엔, 한화로는 20조원의 넘는 돈이 자사주 매입과 부채상환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손정의식 투자의 몰락 우려

손 회장은 세계 최대 벤처투자펀드인 비전펀드을 운영하고 있다. 비전펀드 1,2호를 합치면 220조~240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국내에선 쿠팡에 조단위의 투자를 했다. 엄청난 금액이다보니 손 회장이 투자한 스타트업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업 가치가 올라가는 기현상이 벌어질 정도다. 예컨대 미국 음식 배달 스타트업인 도어데시는 2018년 3월부터 1년간 비전펀드의 투자를 3차례 받았고 그 사이에 기업가치가 19배나 커졌다. 비전펀드가 투자할때마다 도어데시의 기업 가치를 높여서 투자한 것이다. 비전펀드의 서류상으론, 자신의 앞선 투자금이 엄청난 투자 성공과 이익으로 이어졌다는게 된다. 실제로 비전펀드는 2017년 1호 펀드를 시작한 이후, 작년 상반기까지 714억 달러를 투자해 이익만 202억 달러(누적 기준)에 달했다.

미국 사무실 공유업체인 위워크는 빌딩을 통째로 빌려, 기업에 사무실 공간으로 재임대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위워크가 운영하는 서울스퀘어빌딩./조선일보 DB

하지만 이는 숫자일 뿐이다. 투자 회사를 매각하거나, 주식 시장에 상장해 실제로 비전펀드나 소뱅그룹으로 돈이 들어와야하는데 이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사무실 공유 업체인 위워크다. 손 회장이 위워크에 투자한 금액만 90억~100억 달러(직접 투자와 전환사채 등 모두 포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초 소뱅그룹은 위워크의 가치를 470억 달러로 봤지만, 정작 상장 직전에 월가에선 100억~150억달러로 봤다. 위워크는 상장을 포기했고, 소뱅 스스로 위워크의 기업가치를 80억달러로 낮췄다. 하지만 이후 손 회장은 다시 95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해, 위워크의 기존 주주 주식을 대거 매입하는 한편, 추가 투자도 감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돈을 더 넣어서 위워크의 기업 가치를 올리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확산으로 위워크의 사업 모델은 다시 흔들렸고, 외신에선 “소뱅그룹이 약속했던 위워크 부채 상환과 투자 계획을 이행하지 못할 수 있다”는 보도가 연이어 나왔다.

테크 버블 붕괴의 신호탄 될까

소뱅그룹이 당장 흔들릴까. 대답은 노(NO)이다. 소뱅그룹이 보유한 투자 회사의 주식 가치만 27조엔(약 310조원)에 달한다. 소뱅그룹 기업 가치의 3~4배에 달한다. 소뱅그룹이 저평가됐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4.5조엔 어치의 주식 현금화 카드를 꺼낼 수 있는 저력은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투자 기업의 연이은 도산 가능성이 불거지고 있다. 예컨대 비전펀드에서 2억4000만달러를 투자받은 미국 스타트업 브랜드리스는 10일(현지시각) 파산을 선언했다. 본래 유기농 식품이나 반려동물용 제품, 생활용품을 저가 판매하는, 미국판 노브랜드 업체였다.

손 회장이 운영하는 비전펀드는 세계 벤처캐피털 운영 자산(8030억달러 추정)의 26%(2080억달러)를 주무르는 큰 손이다. ‘세계 테크 혁신의 상징’인 비전펀드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된 것이다.

[성호철 기자 sunghochul@chosun.com]